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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담출판사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웨하스 의자>가 새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역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 사랑은 이번에도 어딘가 불완전하며 위험해 보인다. 그것은 바로 불륜을 소재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불륜의 소재는 이제 우리는 너무나 익숙해져 있으며 그래서 흥미로운 소재가 되지 못한다. 소설과 드라마 그리고 영화에서 불륜의 이야기를 맛볼 대로 맛본 우리들에게는 "아 또 이런 이야기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시 에쿠니 가오리는 같은 소재를 다루더라도 그녀의 이야기를 색다른 느낌을 받는다. 이번 작품 <웨하스 의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그녀의 정갈하면서도 청아한 문체와 그럴 듯하게 풀어나가는 스토리로 인해 불륜의 식상함을 무마시킨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읽고 있는 내가 몰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불현듯 말이다. 이번 소설은 제목에서 이미 불륜을 암시한다.

조그맣고 예쁜데다가 달콤하기까지 한 웨하스. 그러나 부서지기 쉬운 웨하스로 만든 의자에는 아무도 앉을 수 없다. 그녀는 이 소설에서 사랑을 ‘웨하스 의자’에 비유했다. 그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분명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위험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이번 작품에서 그녀는 불완전하며 위험한 사랑 불륜을 사랑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설사 현실 속에서 불륜이 아름답고 미화될 수 없는 것일지라도 사랑 자체는 아름답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끝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 말하며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주인공은 한 남자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도 그녀를 사랑한다. 그런데 사랑의 말을 속삭이면서 '매일 조금씩 망가진다'고 고백하고 있다. 사랑하는 것 자체는 예쁘고, 달콤하고, 그것이 진실이고 전부인데, 그런데 왜 그런 의식이 작용하는 것일까?

이것은 소설의 제목이 암시(예쁘지만 먹을 수 없는 웨하스 의자)하는 것처럼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어떤 상황에 근본적인 큰 문제(불륜)가 있다는 것을 얘기하며, 그 문제로 인해 언젠가는 끝을 맞게 되는 상황이 오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사랑에 빠졌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눈에 반한 것도 아니고,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이미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어."

웨하스 의자는 내게 행복을 상징했다. 약하고 무르지만 반듯한 네모. 그 길쭉한 네모로 나는 의자를 만들었다. 조그맣고 예쁜, 그러나 아무도 앉을 수 없는 의자를. 눈앞에 있지만……. 그리고 의자는 의자인데, 절대 앉을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웨하스 의자는 내게 행복을 상징한다. <본문 중에서>


위험하지만 그 속에서 행복했던 두 사람, 그러면서도 그 끝은 이미 예견되어 슬프듯 슬프지 않은 모습을 에쿠니는 정제된 언어로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이런 탓에 소설은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식상하지 않고 색다른 감동을 맛 볼 수 있다.

특히 그 안에서 행복한 주인공의 모습에서 최근 드라마 <12월의 열대야>를 떠올리게 한다. 불륜을 넘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그리고 그 결말은 이미 슬플 수 밖에 없다는 전제에서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 비슷하다.

이번 작품도 여전히 에쿠니식의 느낌을 물씬 받을 수 있다. 말로 형언하기 힘든, 그러면서 무언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책은 그녀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주저없이 읽어보는 것은 어떨지.

웨하스 의자

, 소담출판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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