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문제 하나. 아래 열거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광수, 염상섭, 현진건, 심훈(이상 소설가), 이육사, 김동환, 백석, 김기림(이상 시인), 이상재, 조만식, 장지영(이상 민족주의 운동가), 박헌영, 김재봉, 조봉암(이상 사회주의 운동가)….
문학과 역사에 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교과서, 혹은 술자리 풍문으로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름들이다. 해답은 잠시 후에 알려주기로 하고.
DJ정부 이후 맹렬한 비판과 여전한 지지의 목소리를 동시에 듣고 있는 언론계, 아니 한국사회의 '뜨거운 감자' 조선일보. 조선일보사 사료연구실이 9명의 필자를 동원해 집필한 <조선일보 사람들>(랜덤하우스중앙·전2권)은 '인물을 통해 고찰한' 조선일보의 역사다. 1권은 일제시대 인물들의 면면을, 2권은 해방 이후 조선일보에 관여한 인물을 다루고 있다.
조선일보 사료연구실은 이번 책의 출간을 위해 1년6개월에 걸친 자료수집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세상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자신의 신상과 일상에 관해서는 그 흔한 메모 한 장 남기지 않은 '조선일보맨'이 적지 않았다.
<조선일보 사람들>은 '학문적 접근'이나 '엄밀한 평가'보다는 (조선일보에 종사한 사람들의) '인간적 면모'와 '인상적인 일화'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는 이 책을 통해 읽기 편하고 접근하기 쉬운 언론사를 독자들에게 선보이겠다는 필진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1권 4부 '중흥 / 태평로시대를 열다'에서 소개되는 소설가 김동인의 일화가 재밌다.
이광수와 주요한 등 동료문인들이 기자직을 얻었을 때 "비상한 노력 끝에 위선적 탈을 썼다" 혹은 "사회인(기자)이 된다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파멸을 뜻한다"며 힐난을 거듭했던 김동인. 하지만, 그도 1933년 봄 비록 40여일 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조선일보 학예부장으로 일한다.
후에 김동인은 '소설가가 아닌 기자 시절을 어떻게 추억하느냐'는 질문에 계면쩍어하며 이렇게 답했다고. "과부의 서방질이나 마찬가지로 나 스스로도 창피하게 생각하는 바이다."
앞서 질문에 대한 답을 알려줄 때가 됐다. 그들은 모두 조선일보 기자로 일한 사람들이다.
세월도 명문장의 향기를 지울 수 없다
- 김훈·박래부의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
1980년대 중반. 한국문단은 물론, 언론계에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김훈·박래부의 '문학기행'. 신문 1면에 문학기사를 게재하는 파격을 보여준 한국일보의 획기적인 편집과 김훈·박래부 두 젊은 기자의 땀 냄새 배인 미려한 문장은 독자들에게 군부독재의 반문화적 전횡을 견디게 해준 힘이었다.
바로 그 '문학기행'을 뼈대로 한 책이 출간됐다. 이름하여 <제비는 푸른 하늘을 다 구경하고>(따뜻한손). 이번 책에선 그 시절 '문학기행'에서는 빠졌던 벽초 홍명희(임꺽정)와 김지하(절, 그 언저리), 박노해(노동의 새벽) 등을 추가했고, 문화일보 김연수 사진부장의 생생한 문학현장 사진이 추가됐다.
"한국문학의 온전한 지도를 그려내겠다"는 열정으로 전라도 땅 끝에서 광화문 밤거리까지를 샅샅이 훑고 다니던 김훈과 박래부. 덧없어라. 20여 년의 시간은 그들을 이순을 바라보는 중늙은이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명문과 미문(美文)은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빛난다. <제비는 푸른 하늘을 다 구경하고>가 그 증거다. 그 어떤 것으로도 온전히 지울 수 없는 그들 문장의 향취.
문학평론가 박철화(중앙대 교수)는 "김훈과 박래부의 '문학기행'은 엄혹한 80년대를 말(言)의 사랑으로 끌어안으며, 현실 앞에 절망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아름다움은 결국 존재하는 것임을 증명하는 한 편의 서사시였다"는 극찬으로 경의와 함께 축하를 전했다.
당신은 외로움과 괴로움의 절정에서 떠올릴 사람이 있는가?
- 안도현·이순원 등 공저 <내 인생의 한 사람>
시인과 소설가, 화가와 사진작가, 만화가와 사학자 등 유명인사 11명이 자신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단 한 사람'을 선택해 그 이유를 적었다. 은사와 아버지, 첫사랑과 동생, 남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으로 지목됐다.
<내 인생의 한 사람>(한길사)은 이들의 글 묶음이다. 차가운 기계문명의 시대. 미디어와 인터넷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의 온기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런 까닭에 시간을 거슬러올라 오늘의 자신을 있게한 고맙고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는 일은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어 보인다.
화가 김점선은 20대 초반 헝클어진 머리칼에 허름한 입성과는 관계없이 '정신적 귀족'의 삶을 살고자 했던 또래 사내아이의 기억을 섬세한 문체로 그려냈고, 시인 안도현은 문학소년 시절 자신의 습작 원고지에 '붉은 상처'를 내던 고등학교 문예반 지도교사를 추억하며 회상에 젖는다.
시인이자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신현림의 '착하디 착한' 여동생 이야기와 가진 것이라곤 예술에 대한 열정밖에 없던 가난한 남편 손진책을 향한 연극배우 김성녀의 재고 따지지 않는 순수한 애정도 감동적이다. 역시 사람을 울리고, 웃길 존재는 사람 외엔 없는 모양이다.
| | 한줄 이상의 의미로 읽는 신간들 | | | |
| | | | ⓒ이가서 | 엄광용 장편 <꿈의 벽 저쪽>(이가서)
마흔 다섯이라는 아직 창창한 나이에 세상을 떠난 요절화가 최욱경. 15년 전 한 여성지 기자는 그의 죽음을 추적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최 화백의 삶은 기사화 되지 못했고. 안타까움만이 젊은 기자의 가슴에 남았다.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마구 부려놓은 이삿짐 속에서 한 장의 사진이 발견된다. 거기엔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한 우울한 표정의 최욱경이 담겨있었다. 그 표정에 홀린 듯 쓰기 시작한 것이 바로 <꿈의 벽 저쪽>. 그 '젊은 여성지 기자'는 저자인 엄광용이다. 김영태 화백의 삽화는 책의 품격을 높여준다.
조경란 소설집 <국자 이야기>(문학동네)
'관통'하기보다는 '스며드는'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 조경란의 네번째 창작집. 소설가는 어떤 방법을 통해 '내 안의 또 다른 나'에 접근해 가는가.
황지우 등 <낭독의 발견>(샘터)
KBS TV 문화지대 '낭독의 발견'에 소개된 글을 모았다. 피천득, 박동규, 도종환 등 문인은 물론, 양희은과 노영심 등 가수와 작곡가가 전하는 따스한 사연에 잠시잠깐 가슴이 훈훈해진다.
신현림의 <희망 블루스>(휴먼앤북스)
시인 신현림이 밑줄을 치며 읽어간 책들 그리고, 가슴 찡한 감동으로 만난 영화와 음악을 매개로 독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설파한다.
<체 게바라 자서전>(황매)
시인의 품성을 지녔던 혁명가 체 게바라. 전장에서도 책과 노트, 그리고 필기구를 놓지 않던 그는 적지 않은 개인적 기록을 남겼다 한다. 그것들을 재료 삼아 복원한 '완벽한 인간'의 삶과 죽음.
김영태의 <音, 꿈의 전람회>(돋을새김)
시인이자 화가이며, 춤과 음악평론에서도 나름의 일가를 이룬 전방위 예술가 김영태가 선보이는 음악에세이. 음악은 그림처럼 감상하면 안 되나?
에쿠니 가오리의 <웨하스 의자>(소담출판사)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리고, 그 사랑의 대상인 연인을 바라본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건 가슴 떨리는 일.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일본 여성작가의 감미로운 세레나데.
로버트 앨린슨의 <장자 영혼의 변화를 위한 철학>(그린비)
무위자연의 철학자 장자. 그의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어가 '자기변화에의 열망'이라 해석한 저자의 장자 '내편' 분석을 읽는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