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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철 선배가 살았으면 어느덧 마흔 살
그랬다면 우리는 “민주열사 박종철”이라는 묘비명 대신
어떤 명함을 받게 되었을까
긴 머리에 두터운 안경 고집스런 입매 허름한 상의가 아닌
염색한 머리 살 오른 얼굴
유들한 표정에 고급 양복을 입은
“기업인 박종철”이나 “정치인 박종철”로 만났을까

그래, 나이가 들면 타협도 눈치도 능숙해 지니까
연예인 누드 사진 몇 장 다운도 받아 놓고
스키장에서 가족들과 주말도 보내고
친구들 모아 양주 까고 카드로 긋기도 하는
능력 있는 박종철일지도 모른다
난 아직 진보야 근데 박정희도 알고 보니 대단해
노동자들 편이야 근데 노동자들도 좀 바뀌어야지
세상에 할 말 있으면 혁명보다 투표장을 찾는
박종철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어야 우리가 편하다면 그렇게 믿자
투사 박종철 대신 희생자 박종철로 하자
그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살았으면 결국은
결국은 우리랑 똑같았을 거라고
믿는 게 위안이라면 그렇게 믿자

그래야 우리는 “비정규직 철폐하라”는 노동자의 절규가
결국은 밥그릇 싸움이라 말할 수 있다
농산물 개방에 반대하는 늙은 농민이 물대포에 쓰러져도
결국은 세계화가 대안이라고 싸늘히 말하고
썩은 정치를 뒤집겠다는 진보정당의 발버둥에
결국은 저들도 똑같이 썩을 거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하고
동학혁명이 광주항쟁이 6월 항쟁이 있어봤자
결국 똑같은 세상 애쓰지 말라고 핀잔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몇 번이고 박종철을 지워도
박종철은 몇 번이고 다시 살아온다
투쟁하는 양심이 이 땅에 몸부림치는 한
생사의 기로에서 동지와 대의를 선택한
박종철은 황사처럼 도처에 있다

열사 박종철 투사 박종철 때론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안락한 삶을 침범하는 이름
그래서 우리를 일어서게 하고 뭉치게 하고 전진하게 하는 이름

그 이름으로 맞는 새해가 금빛으로 밝다

박종철 열사를 기억하는 촛불추모제가 열립니다
14일(금) 6시 명동성당 입구에서


박종철 열사 18주기 촛불추모제가 "기억에서 현실로"라는 주제로 14일(금) 오후 6시 명동성당 입구에서 열립니다.

박종철 열사 추모위원회가 주최하며 사회당과 사회단체,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 학생들이 참여하는 이번 행사는 '인간해방'이라는 열사정신을 되새기려고 합니다.

열사를 독재정권에 빼앗긴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한 때의 혁명가들"인 저 보수정치인들이 열사를 자기들의 역사로 박제화하는 것입니다. 열사가 투쟁하는 양심과 함께 하도록, 열사가 바라던 따뜻한 세상이 이뤄지도록 우리가 작은 촛불을 켜려고 합니다. 시민 여러분의 많은 참가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학 시절부터 박종철 열사 추모위원회에 함께 해온 30대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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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세월호를 기록하다> 등을 썼다. 20대 대선 기본소득당 후보로 출마했다. 국회 비서관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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