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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고 있는 포항의 골목 거리. 포항은 96년 이후 이런 대설은 처음이다.
눈이 오고 있는 포항의 골목 거리. 포항은 96년 이후 이런 대설은 처음이다. ⓒ 정헌종
잠결에 마누라 목소리가 들린다. 이유인즉 장모님께서 목욕탕을 하시는데 목욕탕 보일러가 언 것 같단다.

“얼 일이 뭐 있어? 장모님한테 보일러실에 난로 피우라고 해.” 그렇게 대꾸한 다음 다시 남아 있는 잠을 다시 청했다.

“헌종씨, 밖에 눈이 엄청 온다. 눈이 많이 와서 목욕탕 보일러가 작동 안되는가 보다.”
“뭐? 눈?”

나는 벌떡 일어 났다. 세상에 이보다 더한 특종이 어디 있는가? 나는 카메라를 챙겼다.

“장모님한테는 보일러실에 난로 피워 놓고 좀 기다리라고 해. 그리고 지금 간다고 전화해.”

눈이 오자 앞의 아파트에 꼬마 하나가 아파트 골목에서 눈을 맞고 있다.
눈이 오자 앞의 아파트에 꼬마 하나가 아파트 골목에서 눈을 맞고 있다. ⓒ 정헌종
방 문을 열어 젖히고 밖으로 나간 나는 입을 열지 못하고 감탄하고 말았다. 정말 눈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온다. 포항에 이런 눈이 온 적이 있었던가?

동작 빠른 동네 아이들은 눈이 온다고 골목마다 눈을 뭉쳐 던져대느라 정신이 없다. 카메라를 들고 아이들 노는 것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한참 정신 없이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뒤에서 마누라 핀잔이 들린다. 어이 없다는 것이다.

“헌종씨, 보일러실 안 가나?”

아, 그때서야 내가 보일러실에 가고 있다는 걸 상기할 수 있었다.

“아뿔싸.”

나는 부리나케 목욕탕으로 달려갔다.

동작 빠른 아이들은 벌써 눈을 굴리면서 눈사람을 만들 조짐이다.
동작 빠른 아이들은 벌써 눈을 굴리면서 눈사람을 만들 조짐이다. ⓒ 정헌종
“장모님, 보일러실에 난로 피웠어요?”
“응, 내가 다 했다. 조금 후에 한번 다시 들어가 봐야지.”

순간 장모님께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난 '오버'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장모에게 아는 척 해댔다.

“날이 추워서 보일러가 금방 작동될 것 같지 않으니까 목욕 손님 오면 오전에는 안된다고 해요. 그래도 빨리 작동되겠네요.”

내 딴에는 걱정하지 말라고 이런 말을 했다.

"아저씨 사진 찍어 줘요." 엄마와 아들이 친구처럼 놀고 있다.
"아저씨 사진 찍어 줘요." 엄마와 아들이 친구처럼 놀고 있다. ⓒ 정헌종
그리 말하니 장모가 알았다며 보일러실을 나선다. “그래도 안되면 보일러 기술자 불러야지요. 근데 아마 난로 좀 피워 놓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눈에 홀려서 보일러 봐드리는 것도 까먹는 사위. 계속 장모님께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모님, 저 이제 갈께요. 계속 안되면 기술자 불러요. 그럼 갈께요”
“응, 가라. 정서방.”

밖에 나오니 눈은 조금 전보다 더 밝고 아름답게 쏟아지고 있었다. 눈! 가장 먼저 이 사실을 <오마이뉴스>에 올리자. 일요일 아침, 나는 밥도 마다하고 기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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