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스코트는 그의 아내 헬렌과 더불어 한 평생 '조화로운 삶' 곧 자연과 조화를 이룬 생태적 삶을 실천하며 살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놀랍게도 이들 부부는 이미 1930년대 초반부터 번잡한 도시생활을 뒤로하고 시골에 귀농하여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꾸려나갔다. 그렇다고 그들이 사회와 격리된 은둔의 삶을 택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파멸해가는 도시문명을 구출해 내기 위한 나름의 대안을 마련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갖은 노력을 다했다고 해야 옳다. 그러면서도 이들 부부가 일반에 널리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백년해로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또렷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존경받을 만한 높은 이상의 가치를 실천하고 사랑과 건강함으로 장수를 누리며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면 누가 그 길을 마다할까? 스코트 자신도 이 책 서문에서 '조화로운 삶'이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류가 꿈꿔왔던 것으로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의 생활을 크게 조화로운 삶과 조화롭지 못한 삶으로 나누고, 조화로운 삶이야말로 인간과 자연에게 좋고 아름다우며 가장 보람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단지 스코트가 세상물정 모르는 이상주의자여서 하는 생각이 아니다. 그의 이런 판단은 유능한 사회과학자로서 세심한 연구와 실천적 검증을 통해 얻어낸 것이다.
스코트는 한때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였으나 어린이 노동을 착취하는 것에 반대하고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다가 두 번이나 강단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또한 전쟁의 원인에 대해 쓴 <거대한 광기The Great Madness >라는 저서 때문에 군 징집과 입대를 가로막았다는 혐의로 연방 법원에 기소되었다가 무죄로 풀려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학계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더 이상 강단에서 가르치고 말하고 글을 쓰고 책을 펴낼 수조차 없게 되었다. 자신의 원칙과 신념을 그대로 지키고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밥벌이를 위해 권력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굴종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생의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이다. 이때 스코트는 신중하게 생각한 끝에 평화와 질서, 공공선과 사회정의를 확립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신념을 구체화하여 현실에서 실험하고자 했다.
생전에 헬렌 니어링은 스코트에 대해 "원칙에 충실하고, 타협하지 않으며, 지적인 변혁가의 면모와 아울러 꾸밈없고 친절하며 현명한 남편"이었노라고 술회한 바 있다. 헬렌의 말처럼 실제로 스코트는 매사에 주도면밀히 원칙과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실행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이 책의 여러 군데에서도 스코트의 그런 흔적을 읽을 수 있다.
그러니 나처럼 되도록이면 헐겁게 살고자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딱딱하고 깐깐하게 비칠 수 있는 면도 없지 않다. 이것은 스코트가 사회과학자로서 갖고 있는 특유의 기질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더 많다. 왜냐하면 스코트가 제시하는 명확한 원칙들은 우리가 조화로운 삶으로 가는데 여러모로 유익을 가져다 줄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몇 가지 원칙들 중 '새 삶을 일구는 데 필요한 기준' 한 가지의 골자만 소개해 보면 이렇다.
첫째, 땅과 집과 연장들을 사는 데 드는 돈이 가장 적어야 한다.
둘째, 한 집안이든 지역 단체든 자급자족하는 작은 경제를 이끌어 나가기 위한 통찰력과 계획과 끈기가 있어야 한다.
셋째, 도시와 도시에서 가까운 번화가에서 벗어나야 한다.
넷째, 스스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려는 개척자들은 광고와 막강한 상술의 압력에 견뎌 낼 준비를 해야 한다.
다섯째, 새 삶을 살려는 개척자에게는 엄청난 자제력이 있어야 한다.
여섯째, 문명이라는 삶의 방식에서 심리, 경제, 사회면으로도 벗어나야 한다.
스코트는 서구사회에서 언제부터 조화로운 삶이 깨어지기 시작했는지를 대략적으로 살펴보고 그 근본 뿌리라 할 수 있는 문명 비판으로 나아간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어떤 사회든지 자연을 보호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쳐서 낫게 하며 구성원들이 큰 책임을 느끼는 한 그 삶은 조화로운 삶이다. 그는 사람을 포함한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조화롭게 사는 것이야말로 '영성의 삶'이라 말한다.
이 영성의 삶은 도시의 슈퍼마켓에서 돈 주고 살 수 없고 자연과 더불어 생명의 전체성 속으로 녹아들 때라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마다 행복, 자유, 생명을 추구한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실업과 전쟁, 환경재앙의 불안은 깊어만 간다. 저자 스코트는 편의 제품, 문명의 이기, 불황, 전쟁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생활수준을 지닌 서구의 삶의 방식에서 태어난 네 형제로 보고 있다. 그래서 그는 문명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하나의 결론에 다다른다.
"지금 서구 사회의 삶의 양식은 경제면으로 낭비가 많고 경제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사실이다. 또한 사회로서도 해롭고 걸림돌이 되며 도덕면에서도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상상력을 펼쳐 본들 그 최종 생산물이 조화로운 삶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어쩌면 근본주의자와 같은 처방을 내리고 있다. 문명을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조화로운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최선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당장에 회의론자나 패배주의자들이 나서서 "인간의 본성상 별 수 없다"는 식의 말로 반대하려 들 것이다.
이를 경계하려는 듯, 스코트는 인간의 욕망은 바뀔 수 있고 우리 눈앞에서 바뀌어 왔음을 담배 피우는 일이나 군인징집 같은 현실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반대의 주장들을 논파한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근본적인 주장이 결코 허황되지 않고 현실에서 실현 가능함을 한평생에 걸친 삶을 통해 입증해 보이기도 했다.
스코트가 줄기차게 말하는 대안인 '조화로운 삶'은 자본주의(개인주의)도 사회주의(집산주의)의 한계도 넘어서자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은 불황, 오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있는 오늘 이 시대에 심각히 곱씹어 볼 만하다.
덧붙이는 글 | *월간 <새가정> 2005년 1월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