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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이 없는 시대는 바로 '야만의 시대'입니다
광장이 없는 시대는 바로 '야만의 시대'입니다 ⓒ 박희우
전쟁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듭니다. 전쟁이 끝나고 스산한 바람이 붑니다. 잿빛 먼지가 흩날립니다. 사람들은 지친 몸을 일으킵니다. 황량한 들판에 몸을 곧추세웁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발견합니다. 낡은 이념의 푯대와 허무하게 펄럭이는 이념의 깃발을 발견합니다.

세월이 가고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문학의 싹이 움틉니다. 그렇습니다. 전쟁만큼 리얼한 소재는 없습니다. 전쟁은 그 자체가 문학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남겼습니다. 스페인 내전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남겼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남겼습니다. 우리의 6·25는 <광장(廣場)>을 남겼습니다.

<광장>은 최인훈의 소설입니다. 전후(戰後) 가장 주목받는 문제작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이명준의 이데올로기와 사랑과 중립국 행이 소설의 근간을 이룹니다. 작가는 작품 내내 '광장'과 '밀실'을 오고갑니다. 최인훈은 <광장>에서 주인공인 이명준의 입을 빌려 '해방공간'의 모순을 고발합니다.

"해방은 되었지만 여전히 지배세력은 그대로다. 형사는 일본 형사 그대로다. 일제는 반공이다. 해방공간의 대한민국도 반공이다. 아버지는 월북했다. 나는 아버지 때문에 고문을 당한다. 그들은 말한다. 너는 빨갱이다. 나는 절규한다. 이곳은 '광장'이 아니다. 밀실이다. 아무리 외쳐도 들리지 않는 그들만의 밀실이다. 형사의 주먹이 날라 온다. 얼굴이 깨지고 발길질에 꼬꾸라진다. 나는 생각한다. 아버지도 이렇게 당했겠지.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몸을 느낀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일찍이 <광장>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이었다."

그렇습니다. 4·19는 모든 것을 '밀실'에서 '광장'으로 끌어냈습니다. 6·25는 중도세력을 도태시켰습니다. 이 땅의 완충지대는 이미 그때 사라진 셈입니다. 반공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끔 되어버렸습니다. 지식인은 이데올로기의 그늘에 묻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명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명준은 자살이라는 극한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광장>의 비극적인 탄생을 보게 됩니다.

전후 반세기가 넘게 흘렀습니다. 우리는 그때를 되돌아봅니다. 그렇습니다. 애초부터 우리에게 균형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남쪽에는 친일과 친미와 반공이, 북쪽에는 반미와 반자본이 존재했을 뿐입니다. 지금도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쏠림 현상은 더 심화될 뿐입니다. 광장은 폐쇄되고 밀실은 성업입니다.

이래서 최인훈의 <광장>에는 진정한 의미의 '광장'이 없었습니다. 어디 최인훈의 <광장>만이 그러했겠습니까. 우리 역시 지금까지 그런 광장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런 광장에서 살아갈지 모릅니다. 광장이 없는 시대, 분명 그것은 야만의 시대에 다름 아닙니다.

광장 / 구운몽

최인훈 지음, 문학과지성사(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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