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지명자는 18일 미 상원 외교위 인준 청문회에서 북한을 ‘폭정의 전진기지’ 라며 북한의 체제 변화를 추진할 의도를 드러냈습니다.
그가 말하는 ‘폭정의 전진기지’는 부시 1기의 ‘악의 축’과 맥을 같이 하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함몰된 인식이 부시 행정부 2기의 대외인식 수준임을 잘 보여줍니다.
라이스 지명자의 발언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촉구하기보다는 국제사회가 북한을 위험하게 보게 함으로써 6자회담의 압박을 강요하려는 전략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물론 북한의 인권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우리는 라이스 지명자처럼 ‘폭정의 전진기지’라고 억지로 사시(邪視)눈만 치켜뜨고 현실에 접근할 수는 없습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북한 주민들은 북한 독재 정권에 잡힌 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자극함으로써 북한의 인권상항이 개선될 전망이 존재한다면 그 방식을 회피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전무한 현실에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의제화 혹은 무기화하자고 하는 접근방식은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북교류를 중단하고 냉전질서로 회귀하자는 저열한 욕망일 뿐입니다.
특히 남한 내의 극우파들 중에는 이런 미국의 이익을 무조건 추종하여 북한의 인권문제에 접근하려는 관점이 팽배해 있습니다. 통일은 주석궁에 탱크를 몰고 들어갈 때만 완성된다고 말한 바 있는 대표적인 극우논객 조갑제씨의 웹 사이트에는 최근 부시 대통령의 취임 연설문에 ‘자유’라는 단어만 보고 만세를 외치는 이들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부시 대통령의 자유가 ‘미국’의 자유지 한국의 자유, 세계인의 자유였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니 극우파들에게 부탁합니다. 북한을 증오하기 전에 먼저 남한이 성공했듯 북한을 성공시킬 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합시다. 북한에 조금만 시간을 줍시다. 북한이 스스로 변할 수 있는 기회, 스스로 변할 수 있는 시간을 주자는 말입니다.
우리가 북한에 시간과 기회를 주지 말아야 이유가 있습니까? 남한의 극우파들은 박정희 덕분에 이만큼 먹고 살게 되었고 그래서 남한이 인권을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당당히 박정희 체제를 옹호합니다.
대강으로만 봐서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 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는 경제 발전 수준과 비례합니다. 우리의 민주화 욕구가 경제발전이 가중될수록 더 강화되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렇다면 북한도 남한이 성공했던 방식, 즉 장기간의 경제발전 기회와 그를 통한 자연스러운 인권의식의 성장으로 자발적으로 민주화 될 방법을 쓰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니 오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적, 민주적으로 이미 북한을 압도한 남한이 북한의 샤프롱(Chaperon)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샤프롱이란 유럽의 사교가에서 처음 데뷔하는 아가씨를 보호하는 보호자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한민족으로서 우리는 북한을 국제사회에 성공적으로 데뷔시킬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 막중한 책임을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최근 지진 해일로 큰 피해를 입은 남아시아에 북한은 15만 달러의 경제지원을 약속했습니다. 경제사정이 어려운데도 북한이 이러한 전향적이고 인도주의적인 태도를 보일 때 우리는 북한의 자세를 칭찬해줘야 합니다. 타자에 대한 아낌없는 봉사의식이 야기하는 자긍심이야말로 인간적인 체제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좀더 자주 외부에 참여하는 기회를 갖고, 다른 국가들과 민간 차원의 접촉을 늘릴 기회가 증대될 때 북한은 스스로 변화할 동인을 가질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남아시아 지진피해 국가의 복구 활동에 북측은 인력을 제공하고 그 인력의 체류 비용 일체는 남측이 제공하는 새로운 형식의 원조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샤프롱으로서 우리가 북한을 국제무대에 데뷔시키는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이는 간절히 도움을 호소하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북한의 ‘인력’으로 직접적인 피해복구 지원해줄 수 있고, 남과 북은 함께 인류의 비극 해결에 동참하는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또 많은 세계인은 분단된 남과 북이 손을 잡고 타인의 불행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폭력적 무장 국가로만 인식하고 있던 북한을 달리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데뷔는 장기적으로 우리 건설업체의 해외진출에 북한 노동자의 참여가 가능한 모델로 발전시킬 수도 있습니다. 최근 삼성 등 국내 주요 건설사의 해외 수주가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탁월한 건설 기술력에 북한 인력이 참여함으로써 한민족의 위상을 높이고 협력의 기회를 증대시키는 것입니다. 또 경제난에 허덕이는 북한에게는 실질적인 수익확대의 기회가 될 것이고 해외를 경험한 많은 북한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북으로 돌아가 체제 변화의 물방울이 될 것입니다. 유신시절 수많은 민주화 운동이 해외에서 일어났듯이.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체제 경쟁입니다.
우리 모두 인정하듯, 남한은 북한체제보다 우월합니다. 그러니 그 우월함을 무엇으로 증명하겠습니까? 남한은 북한의 보호자, 샤프롱이 되어야 합니다. 북한의 소프트 랜딩은 미국 방식이 아니라 한국 방식이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정치컬럼 사이트 서프라이즈에 송고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