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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15년 만에 다시 찾은 선원, 그리고 수련회. 떠나기 전 날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는 제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마침 걸려온 후배의 생일 모임 전화…. 차라리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술을 마셔 버리면 '자연스럽게' 안 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우스꽝스럽게도' 새벽에 번쩍 떠진 눈, 숙취로 꼼짝 못했으면 하는 바람은 말짱 헛일이었습니다. 한번 참석이나 해 보라는 부처님 뜻인가 싶어 피식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긴 한숨을 내쉬고 짐을 챙겼습니다.
수련회 내내 여러 스님들의 좋은 말씀이 있었지만, 15년을 밖에서 '굴러 먹던' 습(習)은 첫날, 모든 사물과 형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큰 장애가 됐습니다. 그런 '돼먹지 못한' 버릇은 함께 참석한 도반(道伴)들의 해맑게 웃는 모습마저도 낯설게 느껴지게 했습니다.
식사한 그릇에 붙어 있는 찌꺼기에 물을 부어 깨끗이 닦은 후, 그 물을 마시는 발우공양(鉢盂供養)을 하며 '젠장, 음식만 안 남기면 됐지. 내가 무슨 원효대사람'하고 툴툴거렸습니다. 또 힘든 가부좌 자세의 입정(入定) 시간엔 돌아가기만 하면 시원한 막걸리 한잔을 들이키겠노라고 화두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루가 지나고 나니 조금은 달라진 자신을 느끼게 됐습니다. 당연히 크게 깨달은 바도 없을 터이고 새벽 예불까지 치르고 난 터라 졸음이 쏟아지는 머리였지만, 전날보다는 차분해진 스스로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여전히 조금의 짬만 주어져도 쪼르르 사찰 밖으로 달려가 담배를 피워 물곤 "피곤하다"를 연방 외쳤지만, 어느 순간 문득 자신을 들여다보는 나를 발견하곤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자꾸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만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밤, 눈 구경하기 힘든 지역인 진주에 하얀 눈송이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사찰을 덮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새 내 마음에도 내리고 있었습니다.
문득 서글퍼졌습니다. 울고 싶어졌습니다. 그렇지만 눈물 흘리진 않았습니다. 어른이니까, 세상을 살아가며 울지 말아야 할 이유를 너무도 많이 배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속으로 울었습니다. 처연한 울음이 가슴속을 스치고 있었습니다.
멀고 먼 길을 향해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 스님들이 계실진데, 감히 탁세(濁世) 있는 어리석은 중생이 그 짧은 기간 동안 무엇을 알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내딛는 걸음에 조금의 가속을 붙일 수 있었다는 것, 작은 걸음이라도 재촉할 용기를 얻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소중하기 그지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창 밖으로 가뭇없이 사라진 눈의 자취를 쫓다 문득 "눈 녹는 듯하다"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저 눈처럼 내 안에 쌓인 모든 감정들이 편안하게 녹을 수 있다면 하는 조심스런 과욕도 따라왔습니다.
마음 하나 바꾸면 사라질 모든 일들에 들끓던 지난날을 돌이켜 봤습니다. 폭풍의 바다 같던 분노의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곤 그 격랑이 지난 후 찾아 올 맑은 바다를 생각했습니다. 그곳에서 비늘을 반짝이며 자유롭게 떠다닐 푸른 물고기가 되고 싶다는 꿈을 하염없이 그리고 있었습니다. 어둠이 내리고 서울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