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앞으로 십이시진 동안 죽지도 못하고 염옥을 경험할 것이다. 네놈이 약속을 어겨 우리가 느꼈던 고통의 만분지일도 되지 않겠지만....”
회의무복의 사내.
강명은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성화령의 눈이라는 적멸안이다. 그는 목갑에 조심스레 넣고는 품속에 갈무리했다.
“차...차라리 죽여 주시오.”
그는 악을 쓰듯 말했지만 그 소리는 중얼거림에 지나지 않았다. 이미 심맥이 산산히 끊어지고 중요 대혈이 파열되었다. 근육이 파열되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신이 뒤틀리고 있었다. 그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의 몸 어느 곳도 없었다.
“그것은 약속을 어긴 너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이다. 하지만 혹시 살길이 있을지 아나? 네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누군가 발견하고 네놈을 살려 줄지?”
강명은 그 말과 함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저 정도의 고통을 주는 것만 해도 많이 봐 준 것이다. 팔개월간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그를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주어야 했다.
“나....나...쁜 놈....!”
제대로 발음도 안되는 목소리가 그의 뒤로 들렸지만 그는 씨익 웃고는 신형을 날렸다. 운중학은 지금 상태에서는 대라신선(大羅神仙)이 와도 살아날 수가 없다. 그가 기대할 수 있는 일은 누군가 그를 빨리 죽여주는 것 뿐이다.
툭....!
제멋대로 뒤틀린 근육 탓으로 그의 몸은 의자를 벗어나 바닥에 머리를 처박게 했다. 죽고 싶었다. 온몸이 불에 지져지는 느낌은 고통 이상이었다. 마치 개미가 혈관 속을 누비며 헤집고 있는 것 같았다. 머리 속까지 새하얗게 타버리는 것 같았다. 아득해지는 그의 의식 속으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늦었다.”
말과 함께 그 방안으로 두 인물이 들어섰다. 바로 통천신복과 도영이란 사내였다. 이미 방안의 상황은 그 결과가 어떤지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억지로 시선을 돌려 나타난 인물들을 바라 본 운중학의 얼굴에 간절한 기색이 떠올랐다.
“노...노부...를... 제...제발....죽여...주...시...오....”
그가 할 수 있는 부탁은 오직 그것이었다. 얼굴근육마저 뒤틀려 있어 이미 비뚤어진 입술 사이로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웅얼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 본 구효기가 혀를 찼다.
“참혹하군. 새는 모이 때문에 죽고, 인간은 보물에 눈멀어 화를 입는다더니....”
통천신복 구효기는 고통스러워하는 운중학에게 다가가 빠르게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파--파파팍---
중요 대혈을 건들면서 운중학의 비틀린 몸이 서서히 정상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운중학의 눈에 놀람의 빛이 흘러 나왔다. 이런 신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인(眞人)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더니.... 구거사야 말로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절정고수였구려!”
“단지 당신의 생명을 단축시켰을 뿐이오.”
“어차피 죽을 것이었소. 이리 고통 없이 죽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오.”
조금전 고통을 생각하면 당장 죽고 싶었다. 그만큼 그 고통은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자신의 몸은 단 한수에 의해 철저하게 망가졌고, 살아날 길은 없었다. 구효기는 단지 역류하는 혈행을 막고 고통만을 느끼지 못하게 한 것 뿐이었다. 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그러한 처치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거사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가 이것이구려. 죄송하게 되었소.”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오. 당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대명(大明)과 황실(皇室)에 어떠한 위해가 올 것이라 생각이나 해 보았소?”
그 말에 운중학은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얼굴에 언뜻 후회와 미안한 기색이 흘렀다. 고통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있었다.
“그 물건이 무언지 서장군가에서 훔쳐낸 이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소. 그래서 그들에게 넘기지 않았던 것이오. 노부 평생 그 한번의 실수로 죽을지 누가 알았겠소.”
“실수라 느꼈다면 그 물건을 가지고 아예 새외로 가던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은거해 있던지 할 것이지 오룡번에 욕심을 내어 이 지경을 당한단 말이오!”
“당신이 대명황실과 관계가 있다면 죄송하게 되었소. 아니라면 무슨 상관이오. 도둑이나 점장이인 우리 같은 것들이 주(朱)씨가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가던, 다른 씨가 이끌어 나가던 상관없는 일 아니오. 이 시궁창 같은 곳에 있는 여인네들에게 물어 보시오. 현 황제가 누구냐고 물어도 모를 것이오.”
운중학은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드시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밑바닥 인생들에게 누가 권력을 잡던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저 밑바닥 인생들까지 등쳐먹는 관리(官吏)들 만이라도 임용하지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이런 딱한 사람 같으니... 성화령(聖火令)이 세상에 나오면 그로 인해 죽어 갈 죄없는 사람들의 생명은 생각지 않는단 말이오?”
그렇다. 아무런 관련은 없어도 권력을 잡기 위한 그들의 싸움에 애꿎은 백성들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군역(軍役)에 나간 자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보내놓고 마음 졸이는 부모는 또 어떠할까?
“노부 같은 인생은 오룡번의 유혹을 절대 뿌리치지 못하오. 아마 다시 한번 그런 기로에 서도 노부는 똑같은 실수를 할 것이오.”
말을 하던 그의 얼굴에 잠시 붉으레한 기운이 퍼져 올랐다. 회광반조(廻光反照)의 현상이다. 그것을 모를 운중학이 아니다. 그는 숨을 길게 들이 쉬면서 말을 이었다.
“어차피 피붙이 하나 없는 인생이었지만 후회는 없소. 후사를 부탁할 일도 없지만...”
운중악은 품속에서 낡은 비급 한권을 꺼냈다. 해서체로 쓰여진 겉표지엔 “무영(無影)”이라 적혀 있었다.
“무영보(無影步)와 탄신무영(彈身無影), 그리고 회선무영지(回旋無影指)의 비결이 들어 있는 비급이오. 노부는 우연히 그것을 얻는 덕에 그래도 업신여김을 받지 않을 수 있었소.”
그가 말을 하며 구효기에게 건네자 구효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럼 노부더러 당신과 같은 도둑놈을 다시 만들라는 것이오?”
“그건 구거사가 하기 나름 일거요. 노부의 투술(偸術)은 거기에 없소. 그리고...”
쿨--럭--
말을 하던 운중학이 갑자기 한덩이의 피를 토하며 기침을 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얼굴에도 핏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태운 불꽃은 금새 꺼졌다.
“고통을 덜어주어....정말 고마웠소.”
그 말을 끝으로 운중학은 고개를 꺽으며 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천하제일의 대도였던 그가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사라진 것이다. 구효기는 그의 눈을 감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으로 그들의 행보가 빨라지겠구나.....!”
그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덮고 있었다.
(제27장 완)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