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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로 보아 거의 다 익어 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는데, 마침 출출한 점심시간 무렵에 화원을 찾았으니 그 냄새가 먹음직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반갑게 맞아주는 이남식(37·포항에서 화원 운영)씨와 악수를 하고 일회용 티백으로 우려낸 녹차를 한 잔 마시며 덕담을 나누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화원 안은 따뜻했고 적당히 습도가 조절되어 있어 포근함마저 느낄 수 있었는데 평범한 사람을 인터뷰하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터부시될 것만 같은 생각에 젖어 드는 건 왜일까?
“저번에 포항에 온 눈을 이 안에서 보고 있노라면 정말 멋있었겠어요? 전망도 좋고 포근하고 따뜻해서.”
“전 비닐하우스가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일반 농가의 비닐하우스와는 좀 다르지만 눈이 한참 올 때는 지붕의 눈을 치워야 했지요.”
이남식씨는 평범한 남자인 듯 보인다. 조금 평범하지 않다면 남들 다하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만 그는 결코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포항에 온 지 만 3년이 되어 간다고 한다. “포항 생활이 외롭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는 한참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문을 열었다.
“심심하고 외롭죠. 처음엔 너무 심심해서 일을 마치고 차를 타고 저녁에 시내를 돌아 다니는 것이 유일한 재미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드니 그것도 싫어지고, 놀러 오는 친구나 놀러 오라는 사람이 제일 좋습니다.”
보안법 폐지 문제와 사람 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꽃 피우고 있는데 손님들이 들어 닥쳤다. 개업 집에 들고 갈 화분을 찾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 화원 내부와 꽃들을 찍으면서 손님들이 볼 일을 다 볼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남식씨는 자타가 인정하는, 개혁적인 세상을 바라는 사람이다. 대학생 시절에는 민중운동에 뛰어들어 시위 현장에도 항시 있었다는 그는 얼마 전 국보법 폐지 단식 농성에도 참여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는 국보법 문제가 심히 유감스럽고 실망스럽다며 정치권을 성토하기도 하였다.
“장사가 잘되는 것 보니 올 해는 장가도 가고 돈도 많이 벌겠네요?” 기분 좋으라고 한 말에 그리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오늘 공치는 줄 알았는데….”
여기 저기 뒤적이던 그가 전화번호를 찾아 무얼 먹겠냐며 나에게 묻는다.
“중국집 밖에 안돼요. 여긴 중국집 밖에 없거든요.”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다는 걸 잊고 있었다. “그래요? 그럼 볶음밥 하나.” 나는 사진을 더 찍어야겠다며 자리를 일어섰다.
“잠은 어디서 자요?”
“잠요? 잠은 저기 비닐하우스에 잠자는 방이 있어요. 밤에는 컴퓨터도 하고 테레비도 보고 연탄도 갈아야 하고 할 일은 많아요.” 내가 그에게 사진 한 장 찍자니 손사래를 치며 카메라를 피해 얼굴을 돌려 댔다.
“화원은 어떻게 하게 됐어요?”라고 물었다.
“누나가 포항에 살아요. 취직도 못하고 빈둥대는 내가 보기에 안 좋았던지 포항에 올라와 일을 해보라 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돈은 못 벌어도 속은 편합니다.”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물으니 그는 씩 웃었다.
“돈이 있어야 결혼하죠. 애인도 없고 아직 생각이 없습니다. 나만 좋다는 마음 착한 사람이 있다면 결혼을 생각해 봐야겠지요. 굶어 죽이지는 않지만 넉넉하기 살기는 힘든데 솔직히 누가 결혼하려 해요? 그냥 이렇게 살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가 나에게 되레 묻는다.
나는 꽃을 주제로 이야기를 돌렸다. 이것저것 물어보니 어려운 꽃 이름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꽃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전화해서 물어보라는 그는 이름하여 “꽃을 든 남자”가 분명하였다.
세상과 첨예하게 싸워 보고 싶었다는 그는 투사가 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동경했다고 말하였다.
그는 앞으로 더 진지하게 세상과 투쟁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삶이 세상에 대한 투쟁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볶음밥이 도착했다. 나는 지갑을 더듬더듬 찾았다. 지갑을 찾으며 계산하겠다는 나보다 빨리 그가 먼저 계산한다. “손님인데 그럴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