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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붕당이 아니라면 어찌 이리 사나운 말로 서로를 헐뜯을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게다가 김상헌은 체직을 당한 후에도 이 상소를 올린 유백증에게 죄를 주라하니 경은 어찌 생각하는가?”

인조가 지목한 사람은 판윤(정2품 한성부의 으뜸벼슬) 최명길이었다. 최명길은 평소 청나라와의 관계를 두고 척화(화의(和議)를 배척함)를 주장하는 다른 대신들과는 달리 주화론을 펼쳤고 김상헌이 가까이 지내는 대신들과도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상헌은 기개가 강직하나 도량이 편협해서 잘못 판단한 일에도 뜻을 굽혀 고칠 생각이 없으니, 식견이 모자라서인 듯합니다.”

이 말에 평소 김상헌과 가까이 지내는 대신들의 낯빛이 바뀌었으나 인조는 최명길의 말이 옳다고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평소 강하게 척화를 주장한 김상헌도 없었기에 최명길은 기회가 왔다고 여겼고, 청나라와 화의를 맺을 것을 바라며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지금 조정에서 오랑캐들에게 사람을 보내는 일을 지연시키니 민망한 일이옵니다. 속히 사람을 보내는 한편, 간첩을 보내어 저들의 속셈을 파악하는 일이 사급하옵니다.”

인조는 그 얘기라면 머리가 아프다는 듯, 그런 말을 할 자리가 아니라고 답했지만 최명길의 말은 주제를 바꾸어 계속되었다.

“들으니, 상께서 여름 경연 석상에서 청국 한(汗 : '칸'을 뜻함)이라고 쓰는 것이 타당하다는 분부를 내렸다고 들었사옵니다. 시행이 되지 않아 참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들이 이미 국호를 청으로 고쳤으니 그 고친 호칭을 따라서 쓰는 것이 타당합니다.”

인조는 그 말이라면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내 생각에도 그리 쓰는 것이 무방한데 주위 대신들은 이를 반대하니 그 이유를 모르겠도다.”

최명길이 또다시 무엇인가를 아뢰려는 찰나 끝자리에 앉아 있던 경연의 검토관이자 수찬(정육품 홍문관의 벼슬)인 오달제가 나서 말을 가로채었다.

“지금 양사(사간원, 사헌부)가 이 일로 인해 지금 집요하게 논쟁하고 있는데 명길이 기필코 중론을 배척하고 화의하는 뜻으로 사람을 보내려고 하니, 이것이 무슨 도리입니까?”

오달제는 김상헌의 사람이기도 했다. 최명길에 비해서 나이가 어리고 관직이 낮은 사람이었지만 그는 이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달제의 말에도 일리가 있으니 신이 굽히겠사옵니다.”

그럼에도 젊은 혈기에 넘치는 오달제는 그치지 않았다.

“삼사(三司 :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가 한참 이를 다루어 얘기하고 있는데 명길이 감히 사사로이 이처럼 경연에서 아뢰올 수 있습니까?”

마침내 최명길로 격한 소리로 오달제를 탓하듯 인조에게 말했다.

“제대로 논의가 되었다면, 삼사의 대신들 중 누구라도 전하 앞에 바로 고하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이겠습니까? 간첩을 쓰는 일 또한 그렇습니다. 이리저리 논쟁만 벌이다가 결국 조정안에 이 일이 다 알려지게 되었으니 성상께서는 이 일을 하려면 은밀히 진행하셔야 합니다.”

오달제 역시 물러서지 않고 직접 최명길에게 말했다.

“삼사를 욕되이 거론하시다니, 이제 벼슬을 내놓고 물러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비록 오달제의 벼슬이 낮긴 했으나 삼사의 발언권은 아주 무거운 것이었다. 오달제의 말은 나쁘게 들어서 협박이나 다름없었기에 최명길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조용히 물러났다. 경연이 끝나자 다른 삼사의 관원들도 술렁이며 임금 앞에서 자신들을 은근히 질책한 최명길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며 술렁였다.

“최명길 그자가 우리를 우습게 만들었소. 이번의 일을 들어 최명길의 관직을 삭탈하라는 상소를 올릴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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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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