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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시절의 필자
군 복무시절의 필자 ⓒ 박성필
유난히 땀이 많은 나는 해마다 여름이면 더위와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그래서 별도의 하복이 없는 군대에서 여름을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지옥훈련과 다름없었다.

군대에서 보낸 첫 번째 여름의 유격훈련은 죽음의 문턱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힘겹기만 했다.

이듬해 봄, 무슨 일이 있어도 더위는 '휴가'로 피해보겠다는 나름대로의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 병장 진급과 동시에 얻는 9박 10일의 병장 정기휴가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가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막상 휴가를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더위가 심해진 것 같고, 휴가를 다녀오면 한 해 더위는 끄떡없을 것만 같았다.

98년 6월초 병장 진급과 함께 휴가를 가겠다는 나의 계획은 업무 공백으로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지휘관의 판단으로 6월 20일 이후로 미뤄졌다.

6월 21일, 드디어 연기됐던 병장휴가의 시작이었다. 6월초보다 한층 더 심해진 더위 때문에 휴가가 수십일 미뤄진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휴가 기간 내내 꼼짝 않고 에어컨 바람이나 쐬고 오겠다는 생각으로 고향으로 출발했다. 혹시나 싶어 후임병에게 업무 인수인계도 빠짐없이 했다.

꼼짝 않고 찬바람이나 쐬고 오겠다는 계획은 잊고 친구들과 거나하게 술을 마시는데 하루를 보냈다. 나를 괴롭히던 부대 안의 무더위는 없고 마냥 즐겁기만 한 시간들이었다.

동해에 북한 잠수정이 침몰하여 온 나라가 긴장상태에 있다는 것을 안 것은 강릉 일대에서 사건이 발생한 지 몇 시간이 흐른 후였다.

'나는 경기도에서 복무하는데 설마 부대로 복귀하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을 때였다. 집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여보세요'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어디선가 많이 들리던 목소리가 수화기로 들려온다.

내가 근무하고 있던 부서의 한 장교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뉴스 봤지? 지금 난리가 났는데 휴가복귀해야지."
"예, 알겠습니다."
"내일 오후 4시까지 들어와."
"(한층 작아진 목소리로) 예, 알겠습니다."

군 복무시절의 필자
군 복무시절의 필자 ⓒ 박성필
순간 '정기휴가가 이렇게 끝나는구나' 생각이 든다. 순간 군대의 '복귀명령'에 불응하면 엄청난 처벌이 뒤따라온다는 생각에 부대복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군대가 난리가 났다는데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가자'는 생각으로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했고 부대 근처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 무렵이었다.

당시 근무하고 있던 부대에 들어가려면 다른 부대의 위병소를 거쳐야했다. 그래서 그 위병소에서 항상 우리 부대원들의 휴가증을 검사했다. 9박 10일의 휴가를 중간에 돌아온 나를 본 위병소의 근무자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무슨 일로 이렇게 빨리 복귀하십니까?"
"(무슨 일로?) 부대에서 조기 복귀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혹시 잠수정 사건 때문입니까?"
"예, 그런 것 같습니다만…."
"…."

위병소 근무자가 휴가에서 조기 복귀하는 나를 보고 안타까운 표정과 더불어 갸우뚱거릴 때까지 나는 부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했다. 발걸음을 재촉해 근무하고 있던 부대에 들어섰다.

그런데 전화로 들은 '난리가 났다는 부대'는 없고 평상시에 비해 아주 조금(!) 더 바쁜 것일 뿐 일상의 업무들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TV 뉴스를 통해 본 강릉 인근의 군부대 표정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듯했다.

"야, 박성필! 일거리 많다. 빨리 시작하자."

전화를 걸었던 그 장교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전화통화 할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목소리에 웃음이 조금 섞여 있었다는 것이었다. "너가 없으니까 보고 싶잖아" 농담까지 하는 것이었다.

실상은 이랬다. 북한 잠수정 사건과는 아무 상관없이 나의 후임으로 온 이등병이 업무를 익숙하지 못한 상황에서 다량의 업무가 밀려들었고 그 업무들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지휘관의 판단에 의해 전화로 '조기복귀 명령'이 내려졌던 것이었다.

휴가 복귀와 동시에 시작된 업무는 며칠간 제대로 취침도 하지 못한 채 계속되었다. TV에서 본 장병들의 힘겨운 장면들을 부대로 복귀하던 내내 떠올리며 왔기에 많은 업무를 보다 수월하게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위병소 근무자의 "혹시 잠수정 사건 때문입니까?"라는 말은 계속 잊히지 않는다.

지금도 여름휴가로 동해안을 찾을 때면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잠수정 침투 때문에 휴가에서도 조기복귀한 놈'이라고 농담을 던지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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