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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칼럼니스트 표정훈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책벌레!' 라는 책 뒤표지의 문구가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그렇다면 나도 책벌레?' 물론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주말이면 새로 나온 책을 소개하거나 눈여겨볼 만한 책을 추천해주던 신문의 지면에서 처음 그의 이름을 보았다.

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망라하여 묶어놓은 매력적인 이 책에서 저자는 우선 책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책 한 권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 정보를 다른 수단을 통해 얻고자 한다면, 책값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 책을 읽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 책을 읽는 데 들이는 노력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 때문에 책값을 아까워하지 말라는 말은 불변의 진리이며, 책값은 아직까지도 그리고 언제까지라도 싸다고 할 수 있다."

친한 친구 하나도 책을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자신의 옷이며 화장품 사는 데는 몇 번이고 망설이다 결국 사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면서도 책을 구입할 때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 친구는 간혹 책을 구입한 후 실망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책을 보는 안목을 넓혀가기 위한 통과의례쯤으로 생각하라며 조언을 해주기도 했는데, 그렇게 모은 친구의 책은 벌써 어마어마한 양이 되어 있었다.

"한 권의 책은 결국 자연과 인간, 우주와 자아가 만나는 자리인 셈이다."

참으로 멋진 말이다. 일찍이 키케로는 "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방. 그것은 영혼이 없는 육신"이라고 말한바 있다. 어쩌면 이런 명문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기실 독서는 영혼의 양식이었다. 한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바보가 되어 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하고, 문자 중독증이라고 해야 하나 무언가를 읽어야만 불안하지 않은 증세도 나타나곤 한다면 영혼의 양식이 틀림없는 것 같다.

독서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는 말들을 책 도처에서 볼 수 있었는데, 진부하지만 말마다 뼈가 있는 진언들이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저자가 책장을 한약방의 약장에 비유한 것이었다.

"책은 약장의 약이 된다. 체질과 증상에 따라 어떤 약을 얼마만큼 써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으면, 비록 당장은 필요 없다 해도, 언젠가는 그 약효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약 말이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우수한 품질의 약재를 고르고 갖추어놓는 감식안이라 하겠다. …서가에서 먼지의 무게를 견디며 기다림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책이라 할지라도, 그 기다림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날이 오리라는 믿음을 나는 버릴 수 없다. "

한 번 읽었던 책이라고 해서 그 책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하기 힘든 책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간 지난 후 읽어보면 처음 읽었을 때와 그 느낌이 사뭇 다른 경험도 더러 있을 터이고, 그 때는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는 선명하게 각인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좋은 약재임이 분명하다 하겠다.

또한 저자는 사람들이 신상명세서의 '취미란'에 마땅히 적을 것이 없어 '독서'라고 적는 것에 대해 일침을 놓았다. 그런 의미의 취미가 아님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진정 독서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짚어주고 있었다.

"이른바 '시간을 죽이기 위한 독서', '남는 시간을 활용하는 독서', '어쩌다가 책을 펼쳐보는 독서', '남들이 다 사본다기에 오랜만에 나도 한번' 사 보는 독서…. 이런 독서는 취미로서의 독서가 아니다. 없는 시간을 일부러 마련해서라도 하는 독서, 시간을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가장 충일한 시간을 위한 독서, 남들이 무슨 책을 보건 자기만의 관심과 취향대로 꾸준히 책을 찾아 읽는 독서, 진정한 취미로서의 독서는 이런 독서가 아닐까 한다."

세계의 많은 석학들이나 성공한 기업가들이 독서광이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이 필연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울지언정 개연성은 높다고 본다. 어린이나 청소년에게는 물론이고 어른에게도 평생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독서인 것 같다. 이 책은 독서에 대한 나름의 시각을 가지는데 도움이 될 좋은 책이었다.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

표정훈 지음, 궁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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