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제주도를 일컬어 ‘삼다의 고향’이라 부른다. 제주를 의미하는 ‘삼다’란 바람, 여자, 돌로 바람 많고 여자 많고 돌이 많은 고장을 의미한다.
어느 곳에 가든지 발길에 부딪히는 것이 돌이다. 그리고 그 돌은 어느 곳에 있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다. 주춧돌에서부터 돌담, 그리고 세상에 아무 쓸모없이 버려져 있는 돌까지, 돌의 의미는 천태만상이다.
제주여행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느끼겠지만, 제주에는 가는 곳마다 돌과 마주친다. 제주 돌담에서부터 돌문화공원, 그리고 돌탑 등 언뜻 보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돌이지만, 돌 만큼 아주 쓸모 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즉, 쓰임새에 따라 아주 높은 진가를 발휘하기도 한다.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12번 도로를 타고 50분정도 가다 보면 세화 해안도로로 통하는 길이 있다. 이 세화해안도로는 해안선 주변의 아름다움이 진국이다. 계절마다 색깔을 달리하는 요술쟁이바다를 보기위해 사람들은 더디 가는 길을 택한다.
그 해안도로를 달리노라면 행여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심심해할까 봐, 철새들이 먼저와 바다를 지키고 있다. 띄엄띄엄 바다와 조화를 이루는 조형물들이 인간이 억지로 만든 예술이라면 수평선 너머에서 몰고 온 하얀 파도를 실어 나르는 돌탑공원은 누군가가 만든 작품 같다.
세화해안도로 돌탑공원이라야 공원지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입장료를 받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바다를 배경으로 돌탑공원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사진 한 장 찍고 가는 사람, 바다 구경을 나가는 사람, 심호흡을 하는 사람, 그리고 바닷가에 내려가 무수히 많은 돌중에 하나를 골라 돌무덤을 쌓고 가는 사람들이 전부다.
어찌 보면 무명의 휴게소라고나 할까? 돌탑공원 서면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해방되는 기분이다. 꺼이꺼이 울러대는 겨울철새소리와 세파에 시달려도 말이 없이 돌의 조화. 누가 이 공간을 돌탑공원이라고 이름 지었는지 모르겠다.
여행길에서 들떠있기 쉬운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 것일까? 돌탑공원에 서 있는 돌 하나하나에는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
하늘을 치솟듯 머리를 틀고 부처님처럼 앉아 있는 돌의 형상 앞에 서면 저절로 합장을 하게 된다 또한 다정하게 서 있는 노 부부 앞에 서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돌의 형상에 따라 내 마음도 변하는 변덕스러움, 이것이 바로 사람 사는 모습이 아닐는지.
마치 부처님의 좌대인양 모습을 하고 있는 돌, 그 위에 살며시 손을 들이댄다. 그리고 구멍이 숭숭 뚫린 얼굴모습의 돌에는 마음대로 눈과 코, 입을 그린다.
돌에 무슨 색깔이 있겠냐마는, 비취색의 청자 모습을 한 돌도 있다. 고려청자 같은 청자모양을 한 돌의 형상은 고고함을 준다. 자연그대로를 간직한 문양에 그 의미를 붙이는 자유 그리고 청자에 나름대로 이름을 지어 보는 것까지.
묵묵히 서 있는 노파를 보니 ‘노인과 바다’를 연상했다. 그리고 그 노파의 머리위에 누군가 올려놓은 아주 작은 돌멩이를 보며 뭔가 의미를 부여한다. 왜 이렇게 세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면 좋을 것은 나름대로 생각하고 평가하고 자신의 잣대로 상상하는 것일까?
발길을 돌려 바닷가로 내려가면 행인들이 쌓아놓은 돌무덤과 만날 수 있다. 이름 모를 사람들의 소망, 정성, 메시지가 웅성거리는 돌무덤을 파도가 어디론가 실어 나른다. 이 돌탑공원에서는 못난이는 못난이대로, 잘난 이는 잘난 대로, 동글동글한 돌은 동글동글 한 대로, 모가 난 돌은 모난 대로 다 쓸모가 있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는 어떤가? 못난이는 기가 죽고, 목소리 작은 사람은 희생당하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잠시 삶의 의미를 던져 주는 세화해안도로 돌탑공원. 수호신처럼 바다를 지키는 돌탑공원에서 잠시 여정을 풀어보면 산행 중에 초콜릿을 한 잎 깨물어 보는 것처럼 에너지가 솟는다. 이곳에서는 돌의 형상을 모두 가슴속에 담아 가는 것보다는, 각양각색의 돌을 바라보며 반성문을 써 보고, 돌 하나에 소망을 담아 해와 별과 달, 그리고 바다를 향해 돌무덤을 쌓아 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제주시- 동쪽 12번도로- 조천- 함덕- 세화- 세화해안도로- 돌탑공원으로 50분 정도가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