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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루 내원에서 발견된 시체는 적령추살(狄靈錘殺) 도삼득(淘三鍀)이었다. 금과추 한쌍으로 적수가 없다던 그는 기이하게도 통천신복 구효기가 말한 사흘 뒤에 죽어 있었다. 그의 시체는 옆으로 뉘어져 있었는데 머리와 무릎이 닿을 정도로 웅크린 상태였다. 그의 시신 옆에는 그가 자랑하던 금과추 한쌍이 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은연 중 두려움이 솟아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금과추는 놀랍게도 두부처럼 으깨어져 있었다. 공기와 한번도 접촉하지 않았던 금속 면이 노출되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으로 쇳덩이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지 알기 힘들었다.

“권(拳)이요.”

일행은 천년의 고도 장안의 명승지 중 가장 유명한 자은사(慈恩寺)의 대응탑(大雁塔)을 유람하고 오는 길이었다. 오후 늦게 발견되었다는 도삼득의 시체가 보존되어 있는 현장을 둘러보고는 즉시 객방으로 들어오면서 팽악이 한 말이었다.

“상대가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무서운 권을 가지고 있소.”

팽악이 장난기를 걷어 버리고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는 일은 드문 경우였다. 하지만 그도 권을 익혔고, 두 주먹만으로 이년전 천력을 가지고 태어났다던 거산독두(巨山禿頭) 철응(鐵鷹)을 굴복시킨 일은 그를 고수의 대열에 이르게 했다. 하지만 자신의 공력을 십이성까지 끌어 올린다 하더라도 적령추살 도삼득의 금과추를 밀가루로 반죽한 것처럼 만들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권(拳)은 권이되 일종의 반탄진기와 같은 거요. 그는 두번의 주먹질만으로 도삼득을 절명시켰소.”

별로 일행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던 혜청이 말을 받았다. 뜻밖의 설명에 일행은 의아스러웠지만 혜청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미미하나마 의혹스런 기색이 떠올라 있는지라 아무말 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의혹스런 표정은 더욱 짙어지며 말이 이어졌다.

“본사(本寺)의 칠십이종절예 중 탄자권(彈子拳)이라는 무공이 있소. 무리(武理)를 깨닫고 반야신공(般若神功)의 성취가 구성(九成) 이상이 되어야만 익힐 수 있는 무공이오. 강맹한 위력은 말할 나위도 없으려니와 상대방의 진기 흐름과 공력을 이용해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소승도 접해 본 적이 없었던 무공이오.”

소림의 칠십이종(七十二種)의 절예는 아무나 익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소림제자라 해도 그 절예 중 익힐 수 있는 것은 다섯 손가락을 넘지 못했다. 그것은 익히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절예이든 익히는 데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금과추를 두부처럼 으깰 수 있는 권법은 무림에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분명 아니오. 하지만 한순간에 상대의 뼈를 남김없이 바스라 뜨릴 수 있는 무공은 오직 탄자권뿐이오. 도삼득은 전신의 뼈가 산산조각나며 절명했소.”

혜청의 말에 일행은 더욱 의아스런 표정을 지었다. 도삼득의 시신이 구부러져 있고, 팔이나 다리, 그리고 전신이 약간 흐물거리는 것 같이 느꼈지만 뼈가 산산조각이 나서 죽었다는 혜청의 말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강맹한 권이라도 맞은 부위가 산산조각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신에 있는 뼈 모두가 바스러진다는 것은 이해가 안되는 일이었다.

“탄자권이 무서운 것은 바로 그 점이오. 아마 적령추살은 상대가 만만치 않음을 느끼고 자신의 공력을 최대한 끌어 올려 단숨에 상대를 제압하려 들었을 거요. 상대가 탄자권을 익힌 인물이었다면 오히려 바라던 바였소.”

“무슨 의미야? 당연히 상대가 강하게 느껴졌으니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야?”

“탄자권은 상대의 공력도 이용하는 권법으로 상대의 공력을 받아들여 자신의 공력과 함께 실어서 상대에게 충격을 가할 수 있는 무공이오. 상대는 적령추살의 금과추를 권으로 으깨버림과 동시에 그의 가슴을 가격했소. 처음 권과 마주친 금과추는 엄청난 충격에 두부처럼 으깨어졌고 그 충격으로 적령추살은 즉사했을거요. 그의 가슴을 가격한 것은 단지 확인 절차에 불과했소.”

팽악은 혜청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듯 재차 물었다.

“그럼 직접적인 사인이 따로 있다는 거야?”

“그렇소. 적령추살의 양 손과 전신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그의 양 손과 전신은 검게 물들어 심하게 부어 있었소. 그것은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그의 손은 완전히 뭉개져 손안에 출혈이 심했다는 증거요. 결국 처음 상대가 금과추를 으깨어 버리는 그 순간 적령추살의 양손은 모든 뼈마디가 바스라졌을거요. 그 바스라진 충격과 진동은 곧 바로 팔뚝의 뼈를 진동시켜 산산조각을 내고, 그 팔목 뼈의 충격과 진동은 다시 어깨뼈를 진동시켜 박살낸 것이오. 어께뼈는 가슴과 목으로... 그렇게 전신의 뼈를 산산조각 낸 것이오. 사체가 전체적으로 부어 있고, 검게 변한 것은 뼈가 부셔지면서 내부의 출혈이 심했기 때문이오.”

“듣기만 해도 끔찍한 무공이군. 소림에 그런 끔찍한 무공이 있다는 거야? 아니... 그건 중요한게 아니지. 결국 소림에서 적령추살을 죽였다는 거야?”

팽악이 놀란 듯 다그치자 혜청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알 수 없소. 빈승이 말한 것은 적령추살은 분명 탄자권에 의해 죽었다는 것이오.”

혜청의 얼굴은 침울했다. 그는 적령추살의 시신을 처음 보는 순간 누구보다도 놀랐다. 잘못 본 것이 아닐까 자세히 살폈으나 그것은 오히려 그의 확신만 심어주었다. 자신이 아는 한 소림에 탄자권을 익힌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가 산문을 나섰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녕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침묵을 깬 것은 남궁산산이었다.

“헌데 적령추살은 왜 떠나지 않고 이곳에서 죽음을 당한 걸까요? 더구나 그는 전독마조(電毒魔爪) 척응(慽膺)과 같이 있었는데 그는 어디로 간 걸까요?”

그것도 기이한 일이었다. 그들의 성격이나 행적으로 보아 그들은 오룡번을 쫒아 다녀야 당연했다. 사흘씩이나 장안루에서 숨죽이고 있을 인물들이 아니었다. 더구나 일행인 적령추살이 죽은 이 때에 전독마조 척응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의문이었다.

“척응은 비상한 머리를 가진 자야. 그의 기형적인 조공(爪功)도 그렇지만 임기응변이 뛰어난 두뇌도 그를 상대하기 어려운 인물로 만들었어.”

구양휘는 짧은 턱수염을 버릇처럼 쓰다듬었다.

“확신이 없는 가운데 움직이는 것은 오히려 움직이지 않는 것만 못하지. 더구나 그에 못지 않은 인물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시점에서 그가 움직일 리가 있겠어? 그 점에서는 우리와 같다고 보아야 할꺼야. 헌데...”

그는 말을 끊고는 모용수와 남궁산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파악은 하고 있어?”

사실 구양휘 일행의 눈과 귀는 모용수와 남궁산산이었다. 그 두 사람은 그들대로의 정보망을 가지고 있었고, 한가로운 듯했지만 중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아직 정확한 소식은 없소. 우리뿐 아니라 모두들 사흘 전부터 장안을 떠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지만 두개의 마차를 제외하고는 수상한 점이 없었소.”

모용수의 말에 부언이라도 하듯 남궁산산이 입을 열었다.

“그 두개의 마차를 장안루에 있었던 인물들 중 일부가 쫒고 있지만 아닐꺼예요. 수많은 인물들.... 그것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고수들의 눈앞에서 무공도 폐지된 금적수사 부부를 빼내갈 정도의 인물이 그리 호락호락 모습을 보일리 만무죠.”

그녀는 말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담천의를 바라 보았다. 그러자 담천의가 입을 열었다.

“조사는 해 보았지?”

갑작스럽게 담천의가 뜬금없는 말을 하자 일행은 담천의와 남궁산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하지만 정작 그 질문을 받은 남궁산산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다섯군데예요. 하지만 어느 곳인지 확신할 수는 없어요.”
“다섯군데 모두일 수도 있어.”

알 수 없는 두 사람의 대화에 팽악이 끼어 들었다.

“형님. 무슨 말이오?”

일행의 시선이 담천의에게로 쏠렸다. 두 사람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냐는 눈빛이었다. 그는 일행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양부호의 장원에서 흑의인을 쫒아 관왕묘로 갔을 때 성하검 섭노선배와 오독공자 부부가 있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소. 헌데 그곳에는 그 외에도 여러 인물들이 있었소.”

담천의는 그 안에 있던 인물들의 모습과 특징들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견하기에도 절정고수로 보이는 오십대 인물 두명이 있었소. 한명은 바싹 마른 데다가 자줏빛 안색을 띠고 있었고, 또 한명은 청의(靑衣)를 입고 특이하게도 두 눈이 푸른빛을 띠고 있었소. 그의 피부나 머리카락도 은은하게 푸른 빛을 띠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가 화를 내는 순간 그의 양 손은 푸른색으로 변하며 금속처럼 광택이 흘러 마치 금속으로 만든 의수(義手)를 보는 것 같았소. 아... 섭노 선배가 그를 호광(湖廣)이라고 부른 것 같소.”

그 말에 모용수가 신음처럼 한마디를 내밷았다.

“청마수(靑魔手) 호광이로군. 그렇다면 또 한명은 흑마조(黑魔爪) 형가위(邢苛尉)가 분명하오. 담형이 들어갔다 나온 관왕묘는 호굴보다 더 위험한 곳이었구려.”

“그들이 그렇게 무서운 자요?”

“이미 무림인들 뇌리 속에서는 잊혀져가고 있지만 한때 푸른 손이 보이면 십리를 도망가고, 악마의 손톱이 나타나면 백리를 도망가라는 말이 있었소. 그들은 이십여년 전 무림에서 모습을 감췄소. 그들의 살행(殺行)에 구파일방이 나섰다는 말이 있지만 확인된 것은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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