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영화 <그때 그사람들> 포스터.
영화 <그때 그사람들> 포스터. ⓒ 영화 홈페이지
법원이 10·26 사건을 다룬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 대해 다큐멘터리 세 장면을 삭제하지 않으면 상영될 수 없다고 결정하자 문화계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

특히 <그때 그사람들> 제작사인 MK픽처스는 31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이번 법원의 결정에 대하여 저희 회사는 참혹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면서 가처분 이의신청을 제기할 것이라 밝혔다. MK픽처스는 "예정대로 영화는 상영하되 문제가 되고 있는 세 장면은 무지화면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지화면'은 해당 장면이 스크린에 비춰질 때 화면을 검게 만드는 것을 지칭한다.

문화계 인사들은 이번 결정을 '창작물에 대한 월권행위'라면서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침해했다고 반발하고 있어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재판장 이태운 부장판사)는 31일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47)씨가 영화 <그때 그사람들>의 제작사를 상대로 낸 영화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일부 인용하고, 다음과 같은 다큐멘터리 세 장면을 삭제하지 않고서 상영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S#1 '타이틀(부마항쟁 다큐)' 전체('타이틀- 그때 그사람들' 제외).
▲S#119 '무지 화면'(김수환 추기경이 추모하는 장면) 전체.
▲S#120 '박정희 대통령 장례식 다큐멘터리' 전체(삽입곡 제외).


법원 "세 장면 삭제하지 않고선 상영 금지"

재판부는 이와 같은 결정에 대한 보증금으로 지만씨 측에게 3억원을 공탁하거나 보증금액으로 하는 지급보증위탁계약 체결문서를 제출하는 조건을 달았다.

또 제작사 측에서 이 장면을 삭제하지 않고 극장 또는 텔레비전을 통해 상영하거나 DVD, 비디오테이프, CD 등으로 제작·판매·배포·방영 할 경우 1회당 3000만원을 지급토록 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영화에서 갈등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살해 장면(S#62-김 부장으로 하여금 고인의 머리채를 과격하게 낚아챈 후 고인의 일본 창씨명을 외치게 하는 장면)과 병원 장면(S#109-발가벗겨진 시신의 음부를 모자로 덮는 장면)을 예로 들면서 박 전 대통령 및 지만씨의 인격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제작자들이) 이 같은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악의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인에 대한 명예 및 추모감정을 상당히 자극하고 있다"며 "10·26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관객들에게는 공적 인물인 고인에 관한 왜곡된 인상을 갖게 해 고인 및 신청인의 인격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재판부는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허구에 기초한 블랙코미디로서 상업영화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영화 자체의 상영금지는 지나치다는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영화의 시작 부분과 끝부분에 있는 시위장면, 고인의 장례식 장면 등 다큐멘터리 장면이 별다른 설명없이 비교적 장시간 삽입돼 있다"며 "(영화 상영시) 관객들은 영화 속의 인물이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것임을 알게 될 경우 양자를 동일시하게 되고 영화가 허구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돼 실제라는 인식을 심어줄 여지가 충분하다"고 지적하면서 앞서 밝힌 삽입장면의 삭제 후 상영토록 결정했다.

MK픽처스 "가처분 이의신청 제기...하지만 문제의 장면은 '무지화면'으로 상영"

법원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제작사인 MK픽처스뿐만 아니라 문화계 인사들도 강력 반발하고 있다.

MK픽처스는 31일 법원의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이번 결정은 그간 한국사회가 힘겹게 이룩한 표현의 자유는 물론 한국영화의 발전을 심각하게 되돌리는 결정이 될 수 있음을 심각하게 우려한다"면서 가처분 이의신청을 제기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MK픽처스는 "2월 3일 개봉을 목표로 상영관과의 계약 및 예매 그리고 모든 광고와 홍보 등을 정상적으로 진행하던 저희 회사로서는 관객과의 약속 및 투자자들에 대한 보호, 그리고 주주들의 이해 등을 고려하여 이러한 곤혹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숙고 끝에 예정대로 2월 3일 개봉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MK픽처스는 "(문제가 된) 3 장면에 대하여는 무지화면으로 처리해 상영시간은 동일하나 총 102분의 상영시간 중 3분 50초 분량은 본래의 임상수 감독에 의하여 연출된 작품과 다른 상태로 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정치적 잣대로 창작물 판단하나" "표현의 자유 침해"

한편 이날 법원 판결에 대해 김 완 문화연대 정책실 활동가는 “영화등급위원회를 통과한 영화에 대해 법원이 그렇게 판결을 한 것은 정치적 잣대로 창작물을 판단한 월권행위”라며 “법원의 판결에 대해 가처분 이의신청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판결은 패러디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도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강경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과 관련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최영재 차장은 “스크린쿼터 문화연대의 공식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명백한 검열행위이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라 생각한다”며 “영화계가 대응하면 스크린쿼터 문화연대도 보조를 맞추며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계 관계자인 K모씨는 “전체적으로 픽션을 다룬 영화인데 왜 그런 판결이 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용산 대통령실 마감하고, 서울을 떠나 세종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진실 너머 저편으로...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