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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서 위원장은 "이름뿐인 '학생의 날'을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명칭을 바꾸고, 학생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분단극복을 위한 토양으로 활용하자"고 말했다.
박경서 위원장은 "이름뿐인 '학생의 날'을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명칭을 바꾸고, 학생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분단극복을 위한 토양으로 활용하자"고 말했다. ⓒ 이민우
“‘학생의 날’이란 이름은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시작하여 1931년 5월말까지 전국으로 퍼져나갔던 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11월 3일 ‘학생의 날’의 명칭을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바꾸어야 한다는 학술회의가 열려 관심을 끌고 있다.

‘학생독립운동기념일 제정 추진위원회’(아래 추진위·위원장 박경서)는 지난 1월 31일 오후 2시 한국언론재단 19층에서 ‘학생독립운동과 지식인의 지성적 사명’이란 주제의 학술회의를 열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학생의 날’을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날 학술회의에서 박경서 위원장(인권대사)은 기조연설을 통해 “‘학생의 날’이란 명칭은 항일독립운동의 역사적 성격을 왜곡하고 있다”며 “한반도 전역에서 1년 7개월에 걸쳐 전개된 역사적 사건에 걸맞은 이름을 되찾아 그 위상을 회복시켜야 할 것”이라며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하자고 제안했다.

박 위원장은 “학생독립운동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민족의 자긍심을 드높이고 세계사의 일원으로 한민족의 몫을 확실히 수행하도록 인도하고 있다”며 “`학생의 날'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바꿔 민족의 대동단결과 국민대통합의 계기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 위원장은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린 4월 혁명과 군사독재 반대운동, 1980년 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 민주항쟁 등은 11·3학생독립운동의 계승, 발전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진행된 발제에서 권희영 교수(한국사·한국학중앙연구원)는 “계층적 이해관계를 보편적인 대의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학생들뿐이었으며 이 점에서 학생들만이 민족운동의 전위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지적한 뒤 한국 학생독립운동의 지성사적 의미는 “사회의 각성과 발전을 위한 동력을 제공한 것”이라 설명했다.

1929년 학생독립운동의 의의에 대해 이영일 교수(호남대 사회과학대)는 “3·1운동이후 일제의 간특한 문화통치에 휘말려 독립의지가 쇠잔해진 절박한 시기에 독립운동의 불씨를 재점화하고, 이를 전국화함으로써 민족독립에 대한 국제사회의 호응과 민족적 각성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했다.

한편 ‘학생의 날’은 1953년에 국회에서 제정됐다. 1929년 광주에서 시작돼 1931년 5월말까지 전국을 뒤흔든 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그나마 기념식 등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학생의 날’은 영구집권을 노리던 박정희 유신정권에 의해 폐지됐다. 학생들이 11월 3일을 기념하며,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계기로 삼자 없애버린 것이다.

이후 전두환 정권 때인 1984년에 제헌 동지회를 비롯한 15개 사회단체들의 건의로 ‘학생의 날’이 다시 시행되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인터넷 신문 [참말로](www.chammalo.com)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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