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교육청에서 발표한 보도자료 제목이 '서울 학생 학력 신장, 이제 학교가 책임집니다'로 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서울학생 학력 신장 방안'이 '지식 기반 사회의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 능력을 갖춘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수업의 질과 학습의 질을 향상시켜 학교 교육의 질적 비약을 이루기 위한 전략이며, 사고력, 문제 해결력, 창의력 등 고등정신능력 신장 교육으로서의 대전환이라고 전제'한 뒤, 해결 방법으로 7대 추진 과제를 내놓고 있습니다.
현장에 있는 교사로서 발표 내용을 자세하게 뜯어보니, 어떻게 이런 방법으로 '서울학생 학력 신장'을 '학교가 책임진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는지 먼저 의심이 갑니다.
발표를 하자마자 모든 언론들이 메인 톱뉴스로 호들갑스럽게 보도를 했지만, 이런 발표를 위한 발표는 20여 년 동안 교단에 있으면서 수없이 들어왔던 터라, 이제 더 이상 놀라운 뉴스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나 서울시 교육청에서 낸 보도 자료를 인쇄해 자세히 읽어보며 여러 가지 답답한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 중에서 뚜렷하게 드는 생각을 몇 가지 말해볼까 합니다.
보도 자료를 보자마자 드는 생각은 보도 자료가 한글로 써 있긴 한데, 저 같은 교사가 몇 번을 읽어봐도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잘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어려운 한자말로 되어 있고, 한 문장이 매우 길고 어려워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바른 우리 말을 먼저 살려 쓰고 이끌어야 할 교육청에서 우리 말법에 어긋나는 말을 그대로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초학습 부진 학생, 제로 운동 전개'의 '제로 운동'같은 말은 써서는 안되는 말입니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발표한 내용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않습니다. '학력 신장 방안'이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 능력을 갖춘 인재 육성'과 '사고력, 문제 해결력, 창의력 등 고등정신능력 신장 교육으로의 대 전환'을 목적으로 한다면서 내세운 계획을 보면 오히려 그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학교 자율에 맡기겠다고 했지만, 초등학교에서 오히려 간단한 지식을 물을 수밖에 없는 일제고사를 부추기는 것이 그렇고, 말만 슬쩍 바꾼 수우미양가식의 단계별 성적 통지 방법이 그렇습니다.
또, 초등학교에서는 오히려 단편지식 위주의 일제고사를 부추기면서, 반대로 중등에서는 '창의력과 문제 해결력 신장을 위한 서술형, 논술형 평가를 연차적으로 확대한다'고 하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그리고 '기초학력 부진학생, 제로 운동 전개'에서 '읽기, 쓰기, 셈하기 능력'을 기초 학력으로 못박고 있는데, 이는 '학력'을 단지 '국어'와 '수학' 주지 교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진단평가 실시'는 '교수 학습 방법 개선 및 학습 부진학생 지도를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한다'고 했는데, 그렇잖아도 지금 초등학생들은 중학교 입학을 준비하기 위한 학원 공부를 빠르면 5학년부터 하고 있습니다.
이미 신입생에 대한 진단 평가를 여러 가지 까닭으로 실시해 온 중학교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초등학교 졸업을 앞우고 있는 많은 6학년 아이들이 진단 평가 대비와 중학교 과정 선행학습을 하면서 대부분의 겨울방학을 학원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진단 평가를 획일적으로 계획에 넣은 것은 교육청이 현재의 교육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정확한 증거라고 봅니다.
또, '소외 계층을 배려한 수월성 교육의 확대' 계획에서는 '영재 교육 대상자의 25%는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소외 계층 자녀 중에서 선발하여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영재 교육'과 '소외 계층을 배려한 교육'의 근본 목적과 취지와는 상관없는 전시 행정의 표본이라는 생각입니다. 솔직히 소외 계층 자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영재 교육'이 아니라, 평상시 교육으로서 처해 있는 자리에서 차별 없이 평등한 교육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일률적으로 못박은 '영재 교육 대상자의 25%'라는 숫자는 오히려 역차별을 불러올 수 있어서 위험합니다.
그리고 기자와 일문일답에서 한, '학교별로 같은 시간에, 똑같은 문제를 시험보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는 일제고사만은 안된다. 과목별 몇 점 된다는 것을 통지하는 것도 안된다'는 말은, 곧 '일제고사는 보되, 일제고사는 안된다'는 말이 안되는 말일 뿐입니다.
일제고사란 원래 교사가 의도하지 않아도 아이들을 점수로 한 줄로 세우는 평가일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일제 고사를 볼 때 보면, 교사는 정작 모르고 있는데, 평가가 있는 날 벌써 동네에서는 아이들과 부모님들 사이에 전교 1등에서 10등이 그대로 매겨지는 모습을 봤습니다.
'과목별 몇 점 된다는 것을 통지하는 것도 안된다'는 말도 시험 본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 것은, 수요자 중심교육을 강조하는 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교사 편의의 생각입니다. 평가를 했다면, 평가 결과를 궁금해 하는 수요자에게 반드시 알려 주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보도 자료 마지막에는 '이번 학력 신장 방안의 성공적인 추진을 통하여 학교 교육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나아가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하여 사교육비 경감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방안이 오히려 학생의 근본적인 학력을 신장시키지도 못할 뿐더러, 공교육의 신뢰를 더욱 무너뜨리고, 사교육비를 경감하기는커녕 사교육을 더욱 부채질하는 방안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저만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요?
덧붙이는 글 | 이부영 기자는 서울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