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계화

19.

계화는 최명길이 준 두루마리를 다시 한번 펼쳐보았다. 지금은 여진족들조차도 거의 잘 모르는 여진 문자를 계화가 알게 된 것은 어렸을 때의 일이었다.

계화의 머릿속에서는 어렸을 때의 일이나 부모의 얼굴조차 잘 떠오르지 않았다. 계화가 부모와 헤어진 건 10살 때쯤인데 그때의 일과 자초지종을 억지로 떠올리려고 하면 할수록 기억은 더욱 어두워져만 갔다. 계화는 끝없는 어둠을 걷다가 지쳐 쓰러졌고 어린 마음에도 이젠 죽는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런 계화를 데려와 살린 이는 산에서 살며 약초를 캐는 심마니였다. 심마니라고는 하지만 뒤에 생각해 보아도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다. 진짜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은 그는 그저 가까운 마을에서 ‘뫼영감’이라고만 불렸다. 분명 행색과 말은 조선 사람인데 여진어를 능통하게 구사할 줄 알며 인근 여진부락에서 존경받는 이었다. 그는 틈만 나면 계화에게 천자문과 언문(한글), 여진어를 가르쳤다.

“사람들은 말이야. 계집이 글 따위를 배워 어디에 쓰겠냐고 말들을 하지. 그래도 안 배우는 것보단 났지 않겠어?”

심마니치고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아는 것이 많았지만 뫼영감은 마을에서는 전혀 그러한 티를 내보이지 않았다. 계화 역시 배움에 열심이라 뫼영감이 가르치는 것은 금방 이해를 했다.

“이 비석을 읽을 수 있겠느냐?”

계화가 여진어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무렵 뫼노인은 나무 사이에 가려져 있는 커다란 비석을 가리켰다. 계화가 보니 한문은 아닌지라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것은 여진족의 문자이니라. 이젠 여진족들도 이 문자를 잊어 가고 있다.”

뫼노인은 비석에 있는 이끼를 걷어내며 천천히 여진어로 이를 읽어 내려갔다. 비문에 적힌 얘기는 여진족에 대한 얘기였다.

“......체격이 괴상한 한 남자아기를 낳았다. 선녀는 붉은 과일에 깃든 사연을 알려주고 성씨를 아신제로라 하고 이름을 부구리옹순이라 지어주고는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아신제로는 배를 얻어 타고 강을 따라 하류의 나루터에 도착하였고 언덕에 올라가서 버들나무와 갈대로 의자를 엮어 앉았다. 3성(三姓) 지역의 사람들은 아신제로를 보고 이상히 여기여 많은 사람들을 불러왔다. 아신제로는 천지신께서 나를 여기에 보내여 3성(三姓) 지역의 전란을 평정하라고 하였다고 말했고 전란을 평정하였다......”

비석을 읽기를 그친 뫼노인은 얼굴에 웃음을 뗬다. 계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비석을 올려다보았다.

“내 이 비석을 호기심에 읽어 보려 부단히 애를 썼던 일이 기억나는구나. 내가 죽으면 그런 일도 잊힐 것이니 네게 가르쳐 주마.”

뫼노인의 여진 문자 해독은 어딘가 불완전하긴 했지만 계화가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봄, 뫼노인은 귀한 약초를 바랑에 짊어지고서는 계화를 데리고 한양으로 향했다.

“이곳은 내가 있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다. 넌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잡인 하나가 여기를 주시하고 있으니 내 마음이 불안하구나. 허나 다행히 한양이 궁인 중에 나와 인연이 닿는 이가 있으니 널 거두어 줄 것이니라. 어린 너를 혼자 보낼 수는 없으니 사대문밖까지는 내가 데려다 주마.”

“할아버지, 저랑 살면 안 됩니까? 제가 있어서 힘든 것이옵니까?”

계화는 기억이 나지 않는 어둠 속을 걸어 살아온 후, 기껏 정을 붙여 살아온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뫼영감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더딘 걸음으로 석 달 뒤 도착한 사대문 밖에서 꼬깃꼬깃 접은 글을 계화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 길로 궁말이라는 곳에 가서 김아지라는 사람을 찾아 이것을 보여주거라. 네가 살 방도를 알려 주실게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