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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심조심 길을 오릅니다. 이제 능선에 닿았습니다. 아이들은 벌써 배가 고프다며 아우성입니다. 우리는 양지 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김밥과 따뜻한 물로 요기를 합니다. 처제가 보온병에 넣어온 뜨끈한 유자차를 마시니 식었던 몸이 후끈 달아오릅니다. 우리는 주변에 흩어진 쓰레기를 함께 주워서 같이 갈무리를 하고 다시 출발합니다.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이제 내리막길입니다. 이길은 양지여서, 눈이 녹아 질퍽거립니다. 미끄럽기도 하거니와 신발에 흙이 잔뜩 엉겨 붙어, 아이들은 눈길보다도 오히려 못하다고 야단입니다. 이제 갈래길이 나옵니다. 오른쪽으로 1㎞ 가면 비음산 정상이고 아래는 약수터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상 쪽으로 향하자, 아래서 올라오던 등산객들이 "아이들 데리고 정상을 오르는 것은 너무 미끄러워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다음 기회에 비음산을 찾기로 하고 약수터 쪽으로 향합니다. 길가에서 나는 구름버섯을 발견하고 셔터를 누릅니다.
등산로 주변에는 간벌을 해서 나온 나무를 차곡차곡 쌓아 두었는데, 많이 삭은 모습입니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간혹 소나무를 한짐 해오기도 했는데, 그 때는 경찰관이나 산림청직원이 종종 솔을 추러 오기도 했단다."
"솔 추는 것이 뭔데요."
"그때는 대부분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했단다. 그러니 온 산이 벌거숭이가 되지 않았겠느냐? 그래서 정부에서 소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단속을 한 거지."
"그러면 다른 나무를 베는 것은 괜찮았어요?"
"그래, 다른 나무는 잡목이라 해서 베어도 괜찮았단다. 아마 소나무를 특별히 보호한 것은 푸른 산을 가꾸기엔 상록수인 소나무가 제격이었겠지. 그러나 소나무가 과연 경제림으로서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구나. 저렇게 쌓아둔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는 농가에 가져다 주거나 다른 용도에 사용한다면 좋을 텐데."
그러고 보니 등산로 주변에 서있는 소나무는, 그 동안 잘 가꾼 탓인지 곧게 쭉 뻗은 것이 제법 그럴 듯해 보입니다. 얼마 전에 봉림산에 오를 때 간벌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산은 가꾸면 저리 효과가 나는가 봅니다.
아마 우리도 아이들에게 정성을 기울이다 보면, 저 나무처럼 곧고 바르게 자라겠지요.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격언이 있으나 나는 선산을 못 지켜도 좋으니, 우리 아이들이 이 사회의 서까래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잘 정돈된 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를 한모금 마시니 힘이 솟습니다. 태양열로 이 약수터를 밝힌다고 하니, 참 세상이 좋아진 모양입니다. 우리는 다시 작은 고개를 넘어서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옵니다. 다락 밭이나 집 울타리로 심은 매화나무의 꽃망울이 잔뜩 힘을 주고 있습니다.
주자창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우리는 선 채로 어묵 몇 점을 먹습니다. 우리는 집으로 향하는 길에 어시장에 들러 오징어와 숭어를 닮은 밀치회를 샀습니다. 날씨가 이리 찬데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어시장은, 언제와도 사람 내음이 묻어 있어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