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부재의 군대'라는 걸 군이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인식 못하고 있습니다. '군대는 시키면 무조건 하는 곳이다' '군대에 무슨 인권이 있나'란 식의 군대문화를 고쳐야만 합니다."
각계 시민들을 공분에 떨게 했던 '육군훈련소 인분 가혹행위 사건'과 관련, 지난 1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사병인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예비역 준장 표명렬(군사평론가)씨가 강조한 말이다.
이날 토론회는 성공회대 평화인권센터와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의 공동주최로 열렸으며, 유난히 추운 탓인지 2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이대훈 실행위원장은 "이번 토론회는 군대 내 사병인권 문제를 통해 군인은 어디까지 인간으로서 권리를 누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자리"라며 "사병인권의 향상을 위해 현실진단과 방향을 모색해 보자"고 말했다.
이대훈 실행위원장은 "군인이 보장받아야 할 구체적인 인권이 무엇인지, 벌률적으로 권리적으로 군인은 어디까지 인간인지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며 "군대를 어떻게 민주주의적으로 관리할 것인가는 우리 사회와 민간, 정부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이 실행위원장은 또 "지난 해 국가인권위가 발행한 인권백서를 보면 사병 인권에 관한 기록은 불과 4쪽밖에 안 된다"며 "이른바 군대의 전통과 구조 속에서 사병인권은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는 셈"이라고 군 인권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호소했다.
"국방개혁의 핵심 대상은 군사문화가 되어야"
표명렬씨는 "군대 내에 권위주의가 만연해 정보화시대의 바탕인 창의력이 군대에 갔다오면 다 버려지는 상황"이라며 "인권이 부재한 군대문화는 결국 군의 사기와 단결, 신념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라 지적한 뒤, 인권무시의 군대문화 정착의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반민족 친일세력, 일제 앞잡이들에 의해 군대가 만들어졌고, 군 구성이 장악된 태생적 한계가 있습니다. 이는 21대까지 육군참모총장은 일본군, 만주군관학교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증명합니다. 민족반역자들이 도피처이자 세력 확대의 근거지로 삼았던 군대엔 무조건적인 절대복종의 군기만이 있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이어 표명렬씨는 "군부독재 세력의 존립기반이었던 군대는 민주의식을 차단하는 도구였으며 지금도 반민족 반민주 수구세력의 아성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는 "국민을 위한 군대가 아니라 상관, 장군을 위한 군대라는 개념의 교육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표 씨는 "국방개혁의 핵심 대상은 군사문화가 되어야 한다"며 인권중시의 군대문화 정착을 위해 ▲간부급에 대한 대대적인 의식개혁 ▲'사병인권법(가칭) 제정 ▲평화사랑 재향군인회(가칭) 구성 등을 제안했다.
"현행 병역제도는 열악한 군내 인권현실의 주된 요인"
한홍구(성공회대 인권평화센터 소장) 교수는 "최근에 사병들의 자살이 크게 부각된 건 사고가 갑자기 집중해 발생했기 때문이 아니다"면서 "사회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면서 이제 군도 더 이상 시민사회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성역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기에 드러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한 교수는 "사병 상호간의 구타나 가혹행위뿐 아니라, 간부와 사병간에, 나아가 간부 상호 간에 구타나 가혹행위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며 "군대 내 가혹행위는 과도하게 많은 병력이 별다른 권리를 갖지 못한 채 불만에 찬 상태에서 24시간 영내생활을 하는 현행 병역제도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대 내에서 사병들이 겪는 열악한 인권 현실은 대부분 현행 징병제의 문제점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기에 징병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는 한 사병인권 개선 노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한 교수는 "현행 군형법 등의 항명죄, 명령위반죄는 '적법·정당한 명령'에 국한되지만 군인복무규율엔 명령에 대한 복종만을 강조하고 있다"며 "적법하고 정당한 명령이 아닐 경우엔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이 복무규율에 포함되어야 할 것"임을 역설했다.
"당장 인분사건 피해자에 대한 정신과 상담·진료 필요"
군경의문사진상규명 및 폭력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 서석원 간사는 "군대 내 상습적인 구타와 가혹행위에 대한 상담 전화를 받으면 상당한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며 이는 "문제해결을 위한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서 간사는 "현행 소원수리는 비밀보장이 되지 않는 난점이 있어 결국 피해자는 가해자의 보복이나 집단 따돌림 등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꼬집은 뒤, "이번 기회에 국방부는 소원수리제도 전반에 대한 운영 실태를 점검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서 간사는 "인분 사건에 대해 군 당국의 사과와 전면적 진상조사에 비해 피해자들을 위한 조치는 사실상 찾아볼 수 없었다"며 "당장 피해자 192명에 대한 정신과적인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서 간사는 "군 당국 및 국가는 당장 피해자 192명에 대한 정신과적 상담과 진료를 실시하고 그에 합당한 행정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한 뒤, "만약 군 당국 및 국가가 이를 외면한다면 피해자들은 개인적으로라도 정신과적인 상담과 진료를 받아두고, 이를 근거로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방법까지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분 가혹행위는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에 버금가는 행위"
군사평론가인 김삼석(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씨는 "전시도 아닌 평시에 신병훈련소에서 자행된 인분 가혹행위는 육군의 대국민적 폭거"로 "2003년 말, 전시상태의 이라크 아부그레이브 교도소에서 미군이 자행한 이라크 포로 학대에 버금가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김삼석씨는 "군 당국은 인분사건을 사병인권 강화의 계기로 삼기보다는 중대장 개인의 실수로 몰아가고 있다"며 "192명에게 인분을 먹게 한 '단체기합'은 저급한 군사문화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는 대표적인 일제잔재의 악습"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인분 가혹행위를 비롯한 군의 인권침해 원인은 장교, 부사관들의 왜곡된 권위의식의 결과입니다. 사관학교와 육군대학 등 군의 교육기관은 물론 신병훈련소 등의 양성기관의 장·사·병 교육에서부터 일제 잔재를 걷어내고 대적관 확립교육을 시대 변화에 맞게끔 변화시키는 민족, 인권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김씨는 또 "군 개혁의 주체는 자식을 군에 둔 부모와 사병, 군 의문사 유가족, 평화통일·시민단체, 군 인권 향상에 관심 있는 예비역들"이라며 "'사병인권보호법'을 제정하는 건 군 인권 개선에 조그마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인권위-조사 결과 정리중, 빠른 시일안에 후속조치 마련할 것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국가인권위 최재경 인권침해조사 2과장은 "인분 사건은 직권조사가 진행 중이라 상세한 건 말하기 힘들다"고 전제한 뒤, "진상조사를 위해 가해자와 분대장은 물론 상급지휘관을 조사했고, 기무부대와 헌병대가 과연 모르고 있었는지 군 수사기록을 입수해 조사했다"고 말했다.
최 과장은 이번 직권조사의 목적은 비록 조사권한과 기간의 한계 등이 있긴 하지만, 다른 유사 사례가 없었는지 여부와 육군본부의 조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여부 등에 대해 조사해 인권침해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최 과장은 "부당한 명령이나 지시로 발생한 일을 외부에 알리면 군인복무규율에 저촉되는 현실"이라며 "사실 이번 사안을 편지를 통해 외부에 알려 달라고 했던 훈련병도 엄격히 따지면 군인복무규율에 따른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복무규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어 최 과장은 "오는 14일 열리는 전원위원회에 권고안을 보고해 빠른 시일 안에 후속조치할 예정"이라며 "오늘 토론회에서 나온 사병인권법 등 여러 가지 제안을 권고안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은 '사병인권법'(또는 사병인권보호법)의 제정을 구체화하기 위해 조만간 별도의 모임을 갖기로 했다. 아울러 표명렬 씨가 제안한 평화사랑 재향군인회(가칭) 구성도 그 시행 방안 등을 적극 모색해 보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신문 [참말로](www.chammalo.com)에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