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책의 첫 인상인 표지는 많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병역거부운동이, 군사력 대결의 우위와 체제의 우위를 통해서 평화를 이루고자 했던 기존 한국사회의 평화의 의미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평화운동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을 때, 마치 80년대 평화의 상징인 ‘철책선 넘어가는 비둘기의 날개짓’이 표지 디자인이라는 것은 책의 내용이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일까?
어쨌든 표지 덕분에 사람들은 큰 기대 없이 책을 보고, 오히려 기대 이상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꿈보다 좋은 해몽으로 책의 첫인상을 정리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첫 장에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정리가 되어있다. 병역거부를 인권의 관점과 평화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외국의 사례와 비교하면서 병역거부의 양태나 주장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약간은 도식적인 틀에 다양한 양심을 끼워 맞추는 듯 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난잡하게 흩어져 있던 병역거부에 대한 개념을 정리해 준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
둘째 장은 병역거부자들이-비단 병역거부자들 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서 정상인과 비정상인들이 어떻게 구분되고 국가와 사회는 분류된 정상인들이 어떻게 비정상인들을 차별하고 스스로 분류 짓게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비정상인으로 분류되고 차별받게 되는 원인, 그리고 다수결의 원리가 소수자들을 어떻게 배제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이 장에서는 이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소수자들을 배제시켜가고, 그 원리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병역거부자들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병역거부가 어떻게 시민불복종이 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시민불복종이라는 아직은 한국에서 생소한 개념의 실천이 병역거부와 만나면서 어떻게 비폭력 평화운동으로서의 병역거부가 세상을 바꾸어가는 실천이 되는지를 고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남석 교수는 결국 병역거부자를 차별받는 소수자로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가 소수자들을 어떻게 양산해내고 차별하는지, 병역거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소수자들에 대한 ‘시혜가 아닌 그들의 권리에 대한 관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확실히 드는 생각은 소수자를 만들어 내고 구분짓는 행위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이다. 권력과 국가는 그 구분짓기를 좋아하고 선동할 수는 있어도 그러한 차별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바로 시민들이 구분짓고 차별하는 행위의 주체가 될 때만이다.
그런 측면에서 병역거부의 문제는 사회 소수자 문제로 연결되고, 차별받는 소수라는 점에서 그 문제의 해결 정도는 그 사회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했는지의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이론은 현실의 운동을 바탕으로 성립된다. 병역거부자들의 실천이 있었기에, 병역거부를 사회정치학적으로 바라본 이 책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병역거부에 대한 이론적인 정리가 앞으로 병역거부를 준비하는 사람과 병역거부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을 확신한다.
스스로 소수자가 되려는 사람들, 그들을 지켜보는 우리들은 아마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아가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누가 그들을 소수자로 만들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자신의 원죄를 속죄하고 그들과 함께 살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신이시여, 저들을 용서 하소서, 저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나이다.”(본문 19쪽에서)
덧붙이는 글 | ::저자소개 _이남석
이남석 1966년 전남 곡성 출생. 한양대 제 3 Sector 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박사학위 논문인 「기술, 지배, 이데올로기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 유연생산시대에 기술이 어떻게 지배의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지를 연구했다. 최근에는 소수자 문제에 천착하고 있으며 소수자 문제 해결을 위한 저술 및 번역에도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차이의 정치-이제 소수자를 위하여』, 『NGO리포트 2004』(공저), 『정치과정에서의 NGO』(공저)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행정의 공개성과 정치 지도자 선출』과 『페미니즘 정치사상사』(공역)등이 있다.
전쟁없는세상 8호 소식지에 실린 글을 약간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