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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이곳 마산에서도 설날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점심 먹는 시간이 좀 빨랐습니다. 저는 직장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을 둘러봅니다.
떡 방앗간이 보입니다. 하얀 김이 방앗간에서 뿜어져 나옵니다. 저는 방앗간 안으로 들어갑니다. 주인 아줌마가 뭘 사겠냐고 묻습니다. 저는 한번 씩 웃어 보입니다.
“구경 좀 할라꼬예.”
할머니가 작은 방망이로 잘 찌어진 쌀가루를 기계구멍에 밀어 넣고 있습니다. 주인아줌마는 기계 밑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떡을 받아내고 있습니다. 문양이 새겨진 넓적한 떡입니다. 주인아줌마의 왼손에는 가위가 들려있습니다. 떡을 손가락마디 만하게 자릅니다.
저는 주위를 둘러봅니다. 대야에 가래떡이 있습니다. 갑자기 먹고싶어집니다. 설날에는 아무래도 가래떡이 제일입니다. 꿀에 찍어 먹으면 맛이 그만입니다. 제 처가가 있는 경남 함양에서는 '기름장'에 찍어 먹기도 합니다.
저는 방앗간을 나와 시장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왠지 쓸쓸합니다. 을씨년스런 날씨 탓만은 아닐 겁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설 대목이라고 해서 장터 어디에 가든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정말이지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강정을 만드는 가게 앞에 섰습니다. 널찍한 판 위에 쟁반크기 만한 강정이 놓여있습니다. 할머니가 칼로 강정을 자르고 있습니다.
“할무이, 강정 잘 팔리요?”
“아이다. 통 안 팔린대이.”
할머니가 시큰둥한 표정을 짓습니다. 제가 ‘디카’를 들이대자 할머니가 부끄럽게 웃습니다.
“할망구는 찍어가 뭐할끼고?”
저는 ‘순대국박집’을 기웃거립니다. 점심시간인데도 손님이 없습니다. 사람 한둘쯤은 있을 법도 하건만 아무도 없습니다. 연탄 화덕 위에는 순대를 담은 양푼이 펄펄 끓고 있습니다. 먼지 때문인지 순대를 비닐로 덮어놓았습니다.
그때 무슨 소린가가 들립니다. 개조한 트럭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입니다. 트럭 안에는 양말이 가득합니다.
“무조건 한 켤레 500원, 500원입니다.”
이제 저는 막 재래시장을 벗어납니다. 그때였습니다. 채소를 파는 노점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무, 배추, 시금치, 양파, 당근, 고구마. 저는 채소 파는 아줌마를 바라봅니다. 아, 그때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누님의 파리한 얼굴입니다. 사진 속의 아줌마처럼 누님은 언제나 털목도리로 머리를 감쌌습니다. 몸이 뒤뚱거릴 만큼 옷을 두툼하게 입곤 했습니다. 누님은 그때 ‘회산다리’에서 채소를 팔고 있었습니다. 누님의 나이 갓 서른을 넘을 때였습니다.
저는 사무실을 향합니다. 걷다가 몇 번을 돌아봅니다. 채소 파는 아줌마는 웅크린 자세 그대로 앉아있습니다. 25년 전의 누님의 모습과 똑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