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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일즈맨의 죽음>
책 <세일즈맨의 죽음>
<세일즈맨의 죽음> 등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세계적인 극작가 아서 밀러가 10일 밤 9시경 그의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심장질환으로 운명했다고 <에이피 통신>과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11일 일제히 보도했다. 향년 89세.

마릴린 먼로의 마지막 남편이기도 했던 밀러는 수주 전 병원에서 뉴욕의 아파트로 옮겨졌으나 그의 요청으로 이번 주 초 그가 먼로와 함께 구입했던 코네티컷 록스버리의 18세기식 농장으로 옮겨져 눈을 감았다.

아서 밀러는 1915년 뉴욕에서 유태계 의류 제조업자 아버지와 전직 교사인 어머니에게서 3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30년 미국을 휩쓴 대공황으로 가계가 기울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세창고 짐꾼과 배달원, 접시닦이 등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다 미시간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미시간 대학 재학 중이던 1945년에 쓴 <포커스> 등의 작품으로 여러 개의 상을 받는 등 작가적 자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졸업 후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한 군수산업자와 아들간의 갈등을 다룬 <모두 나의 아들(All My Sons)>은 헨릭 입센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그를 극작가로 화려하게 데뷔시켰다.

그를 일약 세계적인 극작가로 만든 작품은 약관 33세의 나이였던 1949년에 6주 만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 <세일즈맨의 죽음>이었다. 그는 이 작품에서 개인이 미국식 자본주의의 희생물이 되어 가는 과정을 예리한 필치로 그려냈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그해 2월 엘리아 카잔에 의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져 격찬을 받은 데 이어 퓰리처상을 받았고, 밀러는 일약 미 연극계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이 후 수십년간 연극, 영화, 드라마 등으로 만들어 지는 등 끝없는 인기를 끌었다.

'매카시 선풍'에서 끝내 함구한 신념의 극작가

그러나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의 가혹한 체험담을 빗댄 1953년 작품이자 토니상 수상작인 <도가니(The Crucible)>였다. 이 작품은 17세기말의 살렘 마녀사냥을 주제로 1953년 당시 전 미국을 휩쓸었던 매카시 선풍을 풍자한 것이다. 그는 실제로 이 매카시 선풍에 휘말려 그의 친구들과 함께 친공혐의자로 고발되어 큰 곤욕을 치렀다.

당시는 소련과의 냉전이 막 시작되어 맹목적 반공주의 분위기가 미국 사회를 휩쓸고 있던 시절이었다. 붙들려온 혐의자들이 살기 위해 서로를 고발하던 상황에서 그는 10여 년 전 한 공산주의자 작가 회의 참석자들의 명단을 대라는 의회와 사법기관의 요구를 끝내 거절해 법정 모독죄로 기소 당했다.

결국 1957년 항소심에서 무혐의 판정이 나기까지 그는 심적 고통을 겪었으나 그가 보여준 의연하고 신념 있는 태도는 많은 지성인들의 찬사를 받게 되었다. 이 와중에서도 1956년 '세기의 미녀' 마릴린 먼로와 두 번째 결혼에 성공해 세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결혼 5년만인 1961년 그는 마릴린 먼로와 이혼하는 아픔을 겪는다. 먼로는 이혼 그 해 밀러 원작인 <부적응자들(The Misfits)>에 마지막으로 출연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밀러는 1964년 먼로를 모델로 해서 <전락 후에(After the Fall)>라는 희곡을 쓰기도 했다.

이밖에도 그의 유명 작품으로는 1955년 두 번째 퓰리처 수상작인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더 프라이스>(1969), <세상과 다른 비즈니스의 창조>(1972), <미국인의 시계>(1980), <마지막 양키>(1991) 등 30여 편의 희곡이 있다.

그는 1992년 한 프랑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마릴린 먼로를 가리켜 "극도로 자기 파괴적이었다“면서 "결혼생활 내내 모든 힘을 다해 그녀의 문제들을 해결해 보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고 밝혔다.

또 1987년에 발간된 그의 자서전에서는 "먼로가 섹스 심벌로만 여겨져 온 것은 한탄스러운 것"이라면서 "그녀는 길거리에서 몰려들어 자신의 옷을 잡아당기는 사람들에게 한 편의 시를 낭송해 주려 애쓰는 '시인'이었다"고 먼로를 변호하기도 했다.

밀러는 세 번째 부인인 사진작가 잉게 모라스(2002년 작고)와의 사이에 한 명의 딸과 두 아들을 두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발행되고 있는 시사-종합 주간지 <코리아 위클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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