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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파리를 출발하면서 하도 파리에서 길을 찾다가 고생을 하여 이번에 벨기에로 가는 길은 잘 찾아보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 지도를 붙잡고 한 시간을 넘게 씨름을 한 덕에 파리를 벗어나 북쪽으로 가는 고속도로에는 무사히 진입을 할 수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유럽의 도시들은 링이라고 부르는 내부순환도로들을 가지고 있다. 일단 링에만 진입하면 연결되어 있는 도로들은 번호가 붙어 있어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어렵지 않게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우리는 북쪽으로 향하는 A-1 고속도로를 무사히 올라탔다. 생전 처음 달려보는 유럽의 고속도로라 긴장이 되긴 했지만 여기나 거기나 길은 마찬가지여서 곧 적응이 되었다. 나중에 독일에 가서야 엄청난 과속을 하게 되지만 아직은 맨 끝차선에서 눈치 보며 살살 달리는 형국이었다. 파리에서 온종일 헤매고 다니느라 하루 브뤼셀을 방문하려던 일정을 변경하여 바로 부루게로 향하였다.

파리 시내를 벗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브뤼셀로 가는 이정표가 보였고 부루게로 가려면 일단은 브뤼셀 쪽으로 가야했기 때문에 브뤼셀 이정표만 보고 가다가 결국 브뤼셀 시내 쪽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우리 나라도 지금은 대부분의 도시들이 외곽순환도로를 가지고 있어서 그 도시의 시내를 방문하려는 것이 아니면 진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처음 달려보는 유럽의 고속도로가 익숙지 않아서 운전에만 몰두하는 사이 우리 차는 브뤼셀 시내쪽으로 진입하고 만 것이다. 일방통행이라 일단 시내 쪽으로 들어가서 차를 돌린다는 것이 방향감각을 잃어 헤매기를 한 시간여 결국은 고속도로를 타지 못하고 국도로 한참을 달리다가 고속도로와 겨우 다시 합류하였다.

▲ 부루게 가는길에 점심을...
ⓒ 유원진
경유하는 도시의 이정표를 보고 가다가 그 도시가 나오면 바로 그 다음 도시의 이름을 기억했다가 방향을 잡아야지 잘못하면 경유하는 도시로 들어가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고속도로의 이정표는 영어로 표기가 안 되어 있어도 로마자 표기라 그 모양새만 보고도 알 수 있으니 영어표기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물론 옆에 앉은 조수가 운전면허와 함께 경력도 있다면 좋겠지만 이제 중학교 일학년인 우리 아들은 지명과 도로번호를 맞추어 보느라 에어컨 앞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애를 쓰는데도 길은 자꾸 어긋나고 급기야는 필자도 짜증을 내고 말아 분위기가 아주 머쓱해지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그럴 것까지는 없었는데 성질 급한 아버지와 능력 이상의 일을 책임지게 된 어린 아들이 좌충우돌 빚어낸 에피소드였던 것이다. 속이 좁기는 하지만 그래도 또 분위기 잡는데는 일가견이 있어서 오래 끌지 않고 슬며시 달래주곤 하였는데 가족여행에 있어서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공동책임으로 하여야지 한쪽에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원칙을 다시 한 번 새겨두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우리 부자는 길을 찾느라고 몇 번을 옥신각신하기도하고 삐치기도 하고 투덜대기도 했지만 앞으로도 어디를 자동차 여행을 한다면 누구를 조수석에 앉힐 것인가에 대해 필자는 일초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둘째는 능력 이상으로 책임감과 열정으로 자기 일을 다 했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운전까지 잘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 부루게 운하
ⓒ 유원진
프랑스에서 만큼은 아니지만 하여튼 예상 시간보다 늦게 부루게에 도착하여 보난자 캠핑장을 찾았다. 일단은 시 외곽의 캠핑장에 차를 두고 자전거나 버스, 혹은 예쁘게 꾸며져 있다는 기차를 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난자 캠핑장에 자리가 없다며 바로 이웃해 있는 다른 캠핑장을 소개해 주었다.

우리야 캠핑장을 찾는 목적이 오직 잠자는 데만 있었으므로 보난자 캠핑장에 잘 되어있다는 편의시설에는 별로 애석한 마음이 없었다. 두어 바퀴를 돌아 찾아간 작은 캠핑장도 예약을 안 했다고 하자 자리가 없다며 오히려 그 쪽이 울상이 되었다. 지금도 유럽 한 달 여행 동안 얼굴까지 뚜렷이 기억나는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파리 볼로뉴 캠핑장의 네덜란드 학생들과 부루게 캠핑장의 금발머리 여자아이가 그중 기억에 남는다. 아이라고 하는 까닭은 아무리 이국인의 눈으로 보아도 14∼15살로 밖에 안 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예약을 안 했으니 자리가 없는 것은 그네들 책임도 아니련만 거의 울상이 된 아이는 매니저에게 눈총까지 받아가며 만사를 제치고 이리저리 뛰며 수소문한 끝에 우리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나중에 텐트가 작은 것을 보고 처음부터 스몰텐트라고 말하였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활짝 웃었을 땐 나이가 비슷하다면 친구하자고 하고 싶을 정도로 살갑게 굴었다.

그 이후에도 친절한 유럽인들을 몇 명 보기는 했지만 많은 곳에서 불쾌한 일을 당했어도 그 아이 때문에 불친절한 유럽인들 소리를 못하게 되었으니 친절한 마음씨는 보석같이 빛나서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날 그곳을 떠날 때 한국의 전통북 모양의 작은 기념품을 감사의 뜻으로 그 아이에게 주었는데 '코리아'라고 새겨진 태극문양을 보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오히려 주는 기쁨을 우리가 만끽하였다. 선물을 어떻게 주고받아야 하는 것인지 모범답안을 본 셈이다. 출발하기 전에 여행에서 만나게 될 미지의 친구들을 위하여 작은 기념품들을 준비했었다. 마음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그 아이의 책상 앞에 걸려 있을, 머나먼 극동에서 온 작은 북 하나가 추억의 연결고리가 되지 않겠는가.

▲ 선물로 사갔던 기념품
ⓒ 유원진
텐트를 치고 주위를 둘러보니 파리의 볼로뉴 캠핑장과는 달리 하나같이 대형텐트들로 가득하고 우리 같은 텐트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그 아이가 텐트의 크기를 물어보지 않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 이후로는 어디를 가든 우선 프론트에서 ‘스몰텐트’ 라고 크고도 분명한 소리로 강조를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이후로는 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없어서 발길을 돌리거나 노숙을 하지는 않았다. 순전히 우리가 원해서 차숙(?)을 하기는 했지만.

어려서부터 안데르센 동화를 듣고 자라고 바비 인형을 안고 잠들었던 우리네의 편향된 시각이 역사의 질곡과도 무관치는 않겠지만 우리나라 인형들을 보면 하나같이 커다란 눈에 금발 그리고 늘씬한 다리, 그야말로 서양식 인형 일색이다. 그나마 그에 대한 비판이 얼마 전부터 있어서 다양해졌다고는 하나 예쁜 인형의 이미지는 아직도 파란 눈의 금발 아가씨 인 것이다. 동화라고 말하는 순간 떠오르는 이미지도 마찬가지리라.

하여튼 부루게로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시계는 정지하고 눈앞에는 파스텔 톤의 동화속 나라가 펼쳐지게 된다. 설마 하고 갔는데 진짜 동화의 나라가 눈앞에 마법처럼 '짠' 하고 나타난 것이다.

▲ 마르크트 광장에서
ⓒ 유원진
물론 서울랜드나 롯데월드에 가도 예쁜 성과 다리 그리고 갖가지 소품들로 우리의 아이들을 설레게 하는 동화속 나라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이야기를 꾸며놓은 것에 불과할 뿐이라 설렘은 한 시간으로 족하고 허전한 꿈만 남아 있게 된다. 용인에 있는 민속마을이나 남산 한옥마을도 당시의 전통가옥과 생활상을 재현해 놓았을 뿐 현재진행형은 아닌 것이다. 안동 하회마을은 실제 주민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어쩐 일인지 아직도 가보지는 못하였다.

부루게는 물론 관광객을 위하여 단장을 하기도 해 놓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생활하는 현재진행형의 도시였다. 마차가 다니는, 돌이 깔린 거리에는 여러 종류의 상점들이 있고 그곳에서는 생필품과 각종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예쁘장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 한 귀퉁이에서는 노인들이 체스를 두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고 건축자재를 가득 실은 배가 들려진 다리를 통과하고 있었다. 골목골목마다 이야기가 가득 들어 있어서 아무데나 앉아 기다리고 있으면 백설 공주가 나와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루 종일 해줄 것만 같았다.

▲ 부루게 뒷골목
ⓒ 유원진
여기에서 영화를 찍는다면 무슨 세트가 필요하랴. 현지인들은 옷도 전통적으로 많이 입었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관광과 연결된 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아 의도적으로 그리했을 것이다. 우리가 유럽하면 파리나 런던 그리고 로마를 말하겠지만 동화속의 아기자기한 예쁜 도시를 보고 싶다면 부루게를 권하고 싶다. 그렇지만 그 역시 하루면 족하리라는 것도 분명하다.

한국 사람들에게 부루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단체 배낭여행으로는 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기차가 가기는 하지만 자동차로 가면 기차가 닿지 못하는 북해를 볼 수가 있어서 또 다른 운치가 있다. 바닷가에 멋있는 카페가 있다는 소리는 들었으나 우리 부부의 코드와는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혹여 찾아 들어간다 해도 메뉴를 보고 기절할 아내를 생각해서 아예 포기하고 바닷가만 거닐고 왔다. 저기 저기로 계속 가면 북극이 나온다는 아들의 꿈같은 말에 갑자기 한여름의 더위는 사라지고 빙하의 바람이 바다에서 불어오는 듯하였다.

▲ 부루게의 바닷가-오른쪽이 북해
ⓒ 유원진
저녁에는 차를 가지고 대형마트에 장보러 갔다. 작은 도시인데 이렇게 큰 슈퍼마켓이 있나 의아하였으나 안에 들어가 손수레를 밀며 물건을 사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을 온 각지의 유럽인들이었다. 가격도 저렴하고 신기한 재료들이 많았으나 이 역시 안전제일주의 아내의 요리 방침에 따라 우리식과 비슷한 재료와 맛있어 보이는 맥주를 몇 병 샀다.

지금도 그 맥주 이름을 기억해놓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거니와 이 나이까지 술을 먹도록 맥주가 그토록 맛있다고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 이었다. 출출할 때 입맛 다시게 되는 소주와 삼겹살 의 느낌과는 또 다른 정말 맛있는 맥주였다. 후에 그 유명하다는 독일의 뢰벤 브로이의 맥주 맛도 부루게의 맥주 맛만은 못하였다. 순전히 내 입맛이긴 하지만.

유럽을 다니면서 매번 캠핑장에 주차해 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다녔는데 차를 시내 중심까지 가지고 간 도시가 몇 군데 있었다. 그렇긴 해도 그냥 지나가거나 어디 정차해서 잠깐 구경하고 가는 식이었다. 부루게에 오후 늦게 도착하여 저녁나절을 장보기와 휴식으로 소일하고 다음날 독일로 출발하면서 시내구경을 하였기 때문에 차를 가지고 가야했는데 주차환경이 비교적 잘 구비되어 있었다.

길가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주차권을 파는 곳을 찾다가 건물지하 주차장을 발견했는데 주차비가 서울의 절반 수준이었다. 단지 주차안내인이 있는 게 아니고 주차후 요금을 자판기 같은 기계에 먼저 내고 티켓을 받아서 나올 때 차단기에 넣는 방식이라 첨엔 조심했으나 이내 익숙해졌다. 대형 할인점에서는 물건을 사고 나면 계산대 옆에 보통 안내인들이 앉아서 영수증을 내밀면 주차 티켓을 주었는데 모든 곳이 다 똑같지는 않았다.

▲ 말 좀 들어라,말아-부루게에서 말타기
ⓒ 유원진
유럽 전역이 프라하를 빼고는 거의 셀프계산방식이었다. 미리 알아보려면 우리나라에도 많이 설치되어있는 셀프식 주차장에 가서 눈여겨 봐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차단기는 안 올라가고 뒤차는 빵빵거리는데 내려서 지하를 가로질러 되돌아가 계산하고 티켓을 받아오는 동안 식은땀깨나 흘리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필자가 혼이 난 스위스의 주차장에서는 차선이 세 개나 되는 대형 주차장이어서 필자가 비상등을 켜고 내려서 바로 뒤차만 차선을 바꾸어주자 이어져 오던 차들이 사태를 짐작하고 필자의 차선을 피해 큰 혼란은 없었다. 단지 족히 100미터도 넘는 거리를 뛰어 갔다 오는 동안 얼굴이 화끈거렸을 뿐이다. 사용방법은 간단하나 필자 같은 이를 위해서 적어보면.

1.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갈 때 티켓을 뽑는다(저절로 안 나오고 버튼을 눌러야 하는 것도 있다. 차단기 앞에 잠깐 서 있어도 티켓이 안 나오고 뭐라 중얼거리면 버튼을 누른다).

2. 차를 주차 시키고 일을 본다. 대형 할인점이나 기타 주차가 무료일 가능성이 있는 경우 꼭 안내데스크에 가서 주차권 제공여부를 확인한다.

3. 나올 때 차에 타기 전에 먼저 티켓을 가지고 정산기계앞으로 가서 티켓을 넣는다.

4. 계산되어 표시된 주차요금을 넣는다.(항상 동전을 준비하고 다니는 것이 좋다. 대부분 지폐 넣는 기계가 없다.)

5. 주차요금이 계산되면 넣었던 티켓이 나오는데 꼭 뽑아가지고 와야 한다. 있을 수 없는 일 같지만 실제로 돈만 넣고 나오는 사람도 진짜 봤다.

6. 차를 운전해서 나올 때 차단기 앞에서 이미 요금이 계산된 티켓을 넣으면 차단기가 올라간다. 그러면 나오면 된다.

하기야 나도 다 알고 갔는데도 한 번 실수를 했으니 아무리 조심해도 실수는 하기 마련인가 보다. 그리 치명적인 것은 아니니 크게 신경 쓸 필요까지야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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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으나 꿈으로만 가지고 세월을 보냈다. 스스로 늘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해왔으나 그역시 요즘은 '글쎄'가 되었다.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기는 해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이 고민한다. 오마이에 글쓰기는 그 고민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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