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 성묘가 좀 늦었습니다. 벌목으로 뒤엎어진 산길은 황토가 얼었다 녹으면서 신발에 들어붙어 걷기가 불편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조상들의 산소를 찾아 동생들과 질퍽이는 산등성이를 오르내리고 있는데 바람결에 상여소리가 실려왔습니다.
“설날 아침부터 뭔 상여소리다냐?”
“확성기로 틀어논 것을 본께 초상난 것은 아닌갑소.”
“소각장 반대헌디다 상여 갔다 놨드만 거그서 틀어놨는갑네요.”
“설날인디 집회를 허겄냐?”
“뭔 일 났는갑네요.”
처음 쓰레기소각장에 대해 들은 것은 지난 여름 무렵이었습니다. 순천시 서면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쓰레기 소작장이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나서 다른 지역의 신청을 받아 심사 끝에 순천시 주암면 구산리 일대로 선정을 했다는 소식은 언뜻 들었지만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유치신청을 했다고 해서 관심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주암댐 들어서고, 조계산을 파헤쳐 골프장을 만들고, 오성산에 또 골프장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하고, 새로 도로가 난다고 하고,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고향, 사람들의 마음도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돈에 길들어 이렇게 고향을 망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만 했지요. 그런데 뜬금 없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히어리를 살려 주십시오. 세계적 희귀식물로 환경부 보호수종인 히어리 군락지가 위험합니다. 지금 순천시가 추진하고 있는 주암면 구산리 금곡마을 쓰레기소각장 예정지는 히어리 군락지입니다. 히어리가 위험합니다. 히어리를 살려주십시오.”
꽃편지를 통해 히어리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온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분이 보내온 메일이었습니다. 그 메일은 또, 쓰레기 소각장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크다는 것도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뿐, 쓰레기 소각장에 대한 그 이후의 정보에 대해서는 더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먹고 사는 일에 묶여 있어서 적극적으로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틈이 없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입니다.
한가위, 고향 다니러 가서 쓰레기 소각장에 대해 어머님께 여쭤봤습니다.
“쓰레기 소각장 유치를 신청하려면 주민들이 동의를 해야 하는데 어머님께는 안 왔어요?”
“쓰레기소각장이란 말은 코빼기도 안 비치더라. 어떤 젊은이들 둘이 와서 패때기를 피어놓고는 여그 찬성에다가 도장을 찍으믄 앞으로 존 일이 많이 생긴다고 험스러 도장을 받아갔재. 쓰레기소각장이란 말만 했으믄 미쳤다고 찬성을 헌다냐?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 그래쓰꺼시다. 순전히 나쁜 놈들이어야.”
“환경센타라고 허데. 자네도 알다시피 댐 막고는 강이 안 죽어부렀는가? 환경센타라고 허기래 그 강물도 살리고 환경도 좋게 허는건지 알았재, 쓰레기소각장인지 어찌게 알겄는가? 완전히 촌사람들 디꼬 사기친 것이여.”
그렇습니다. 내가 아는 순천시 쓰레기소각장은 그렇게 주민들을 기만하는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소각장 유치를 추진한 쪽은 주민들의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 방법으로 주민들을 속인 것입니다.
지난 겨울, 틈을 내어 반대운동을 하는 주민들이 소각장 예정지 입구에 비닐하우스를 지어놓고 농성을 하고 있는 감시초소에 다녀왔습니다. 차를 세우고 사진기를 들고 내리자 초소 안에서 몰려나온 주민들이 앞을 가로막고 의심의 눈초리부터 보냈습니다.
“뭣허러 왔소? 신문사에서 왔소? 사진기는 뭐 찍을라고 갖고 왔소?”
다행이 잘 아는 분들이 몇 분 있어서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봉변은 면했지만, 고향이 주암이라는 것, 시인이며 소각장 건설에 반대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주민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사진 몇 장을 찍겠다고 했을 때도 처음에는 그러라고 했다가 다시 사진 찍는 것을 거부하고, 다시 설명을 하고 허락을 받는 과정을 통해 겨우 사진 몇 장을 담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한 차례 필요한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주민들의 제지를 받고 설명을 하고 허락을 받는 과정이 반복되었습니다.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치열한 투쟁이 언론과 외부로부터 외면당한데서 오는 반감과 불신 탓이었습니다. 직접 찾아가서 알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만큼 순천시 쓰레기소각장 반대운동에 대한 정보는 외부와 차단되어 있습니다.
서둘러 성묘를 마치고 차를 몰아 상여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갔습니다. 주암면 소재지인 광천리에 들어서자 네거리에서 부터 차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집회는 네거리 면사무소 앞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주민들과 공무원으로 보이는 사람들, 경찰병력, 차량들이 뒤엉킨 면사무소 앞의 집회는 이미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있었습니다.
집회에 참가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 설날 집회가 열린 까닭을 물어보았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금곡마을하고 선산마을 입구에다 감시초소를 지어놓고 지키고 있었단 말이시. 근디 그저께, 섣달 스무 아흐렛날 저녁에 어떤 놈들이 감시초소를 작살을 내부렀네. 새벽 1시까지 사람들이 있다가 들어갔는데 그 뒤에 말이여. 그래서 지금 항의집회를 허고 있는 것이여.”
“어디 초소 말인가, 금곡?”
“아니, 선산 앞에 있는디를 그래부렀어.”
“경찰에는 신고를 했어?”
“했재. 그런다고 잡아 주겄는가? 경찰들이.”
“면직원이나 시 직원들이 직접 허던 안 했겄재, 그래도 어떤 놈들이 했는지 뻔허니 안 보인가?”
그러니까 설을 앞둔 2월 8일 새벽 무렵, 쓰레기소각장 반대운동을 하는 주민들이 소각장건설예정지 입구에 세워놓은 감시초소용 비닐하우스를 누군가가 부숴버려서 항의집회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각장 건설을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만세삼창을 부르고 면사무소 앞 집회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대열을 정비한 주민들은 트럭에 실은 상여를 앞세우고 상여소리와 함께 소재지 거리를 한 바퀴 돌고나서 광천다리를 건너 구산마을을 향했습니다. 설날 성묘 길에 나섰다가 집회 때문에 밀려있던 차량들이 주민들을 따라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차를 몰고 길을 우회해서 행렬을 앞질렀습니다. 부서진 선산마을 앞 감시초소 사진을 몇 장 찍고 돌아왔더니 벌써 구산마을 앞 도정공장 옆에서 집회를 마무리 한 주민들이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집회에 사용했던 징이며 꽹과리 같은 굿물들을 챙기고 있던 선산마을 이장에게 다가가 찬성하는 주민들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소각장 건설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비율로 따지면 한 10% 될 것이그만. 양쪽의 갈등도 적지 않재, 그래서 저 쪽에다가 찬성하는 주민 1000명을 모아라, 우리는 반대하는 주민 1000명을 모을테니까 한번 토론을 해보자고 했더니 마다고 허데.”
“물 좋고 산 좋던 주암 땅이 주암댐 막고나서 물도 죽어불고 안개 때문에 농사 짓기도 힘든디가 되어부렀습니다. 거그다가 지금 다 만들어놓은 복다 골프장에다가 또 행정리에 골프장 들어선다고 허고, 고속도로며 사방으로 난 국도며 지방도로로 만신창인디, 인자 쓰레기소각장까지 들어서면 어찌게 되불겄습니까?
안개상습지역에다가 소각장 굴뚝 올려놓으면 다이옥신이니 뭐니 허는 독성물질들이 안개 따라서 그대로 아래로 내려올 것이고, 죽어라고 농사 지어봤자 누가 주암서 난 농산물 사 묵겄어요? 광주사람들 식수로 쓰는 주암호는 또 온전허겄어요? 농산물시장개방이야 뭐야 당장 죽고 싶어도 비닐하우스며 이것저것 해가며 고향땅 지킬라고 애쓰는 젊은 농사꾼들 나라가 도와주던 못 허드라도 요러케 죽일라고만 허믄 안되재요.”
잠시 들러서 반대운동에 앞장서고 있다는 선산마을 이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옆에 있던 젊은 여성농민회원이 다가와 눈물을 글썽여가면서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을유년,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은 설날 아침 울려퍼진 상여소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