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은 1월26일 칼럼 ‘야고부-허구’란 기사에서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는 중간중간 실존했던 인물들의 이름이 거명되고 다큐멘터리 영상까지 동원돼 단순히 픽션이 아님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가뜩이나 과거사에 너무 많은 인적·물적 자원이 집중되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들이 많은 시점이”란 점을 언급하며 <그때 그사람들>은 현대인들을 감동시킬 ‘진정한 허구’는 아니라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광화문 현판 교체
1월23일 문화재청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로 쓰여진 광화문 현판을 조선 정조의 글씨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과 유홍준 문화재청장 간에 공개적인 서한이 오고가는 등 논란이 일었다.
<매일신문>과 <영남일보>는 1월27일치에 김 의원의 공개서한을 <연합뉴스>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유 청장이 보낸 답신은 다음날 <영남일보>만이 <연합뉴스>을 인용해 보도했다. <매일신문>은 “광화문 현판을 갑작스럽게 바꿔치기 하려는 의도에 대해 모두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김 의원의 주장만 보도했을 뿐, 이에 대해 “광화문 현판 교체는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97년 경복궁 복원 계획 속에 들어 있던 것”이라는 유 청장의 답신은 싣지 않았다.
<매일신문>에서는 유 청장의 답신을 보도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 청장은 광화문 현판 교체 논란의 당사자이고 또 교체를 반대하는 쪽의 서한을 보도했으면 그에 대한 답신을 실어주는 것이 공정한 언론의 태도가 아니었을까.
뿐만 아니라 <매일신문>은 칼럼을 통해 현판과 영화 문제를 “권려과의 거리 좁히기”, “문화혁명식 광기”라고 비판했는데 그런 이유로 인해 유 청장의 답신을 보도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매일신문>은 1월27일 ‘야고부-대통령 친필 懸板 논란’이란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지난해 노 대통령을 만나 정조대왕과 닮았다고 말한 바 있다…어떤 ‘정치적 저의’와 연계된 움직임이라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으며 더 나아가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 이어 인혁당 사건, 언론 통폐합,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소재로 한 영화들도 만들어지고 있다니 문화계가 ‘권력과의 거리 좁히기’ 행보는 아닐는지 아리송해질 수밖에 없다.”
또 1월31일 수암칼럼 ‘첨성대를 허물어 버려?’에서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운동권 출신의 문화재 책임자가 멀쩡한 현판이나 뜯어내는데 정신을 팔고 있(고)… 개혁 세력 집권 이전의 모든 과거는 다 싫고 내 표 덜 찍어준 꼴통 백성과 '그때 그사람들'은 다 밉고. 보수들이 만든 것은 글씨까지도 깎아내고 뜯어내고 지워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문화혁명식 광기”
국정원 과거사 조사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원회)는 2월3일 우선 조사 대상을 선정, 발표했다. 칼기 폭파, 민청학련․인혁당, 동백림 간첩단, 김대중 납치, 정수장학회, 중부지역당, 김형욱 실종 사건 등 그 동안 의혹이 제기되었던 7건을 본격적으로 조사하기로 했다.
<매일신문>과 <영남일보>는 같은 날 이 사실을 <연합뉴스>을 인용해 보도했는데 기사의 출처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많이 달랐다. ‘국정원 과거사 조사’를 바라보는 각 사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남일보>는 1면 머릿기사로 이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국정원 과거사 우선 조사대상 7건 선정’이란 제목의 이 기사는 진실위원회에서 우선 조사 대상 7건을 선정했다는 내용과 더불어 앞으로의 조사 방침과 조사대상의 선정 배경 등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매일신문>은 동일한 <연합뉴스>기사를 1면의 2단 기사로 줄여 보도했는데 우선 조사대상 7건이 선정되었다는 내용만 간략히 보도하고 있다.
또 <영남일보>는 같은 날 3면과 4면을 할애해 우선 조사 대상 7건에 대해 기존에 알려진 사건 기록과 더불어 제기되고 있는 의혹 그리고 각 사건이 일어나게 된 당시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민청학련·인혁당 사건의 경우, “국제 앰네스티도 한국 관계 보고서에서 조작의혹을 제기했으며…이 사건을 조사한 의문사진상규명위는 당시 피의자 신문조서와 진술조서가 위조됐다는 결론을 내렸으며…이 사건은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이 힘을 얻자 박정희 정권이 이를 용공으로 몰아 일소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관련자들은 물론 당시 재야단체 등의 중론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공안부 검사들마저도 피의자들의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기소장 서명을 거부하는 ‘항명파동’이 일어났고 그 중 3명은 사표를 던졌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나 <매일신문>은 동일한 <연합뉴스>기사를 같은 날 3면에 줄여서 보도하면서 기존에 알려진 사건 기록만 간략히 보도했다. <연합뉴스>기사의 뒷부분에 해당하는 유가족이나 시민·사회 단체의 의혹과 사건이 발생하게 된 당시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았다. 또 우선 조사 대상 7건 가운데 김대중 납치 사건은 빼버리고 6건만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진실위원회에서 우선 조사 대상이 선정되고 난 뒤 국정원의 보존된 관련 자료가 부실해서 진실규명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주장이 천용택 전 국정원장과 안병욱 진실위원회 간사 그리고 익명의 전·현직 국정원 관계자에 의해 제기되었는데 이런 사실을 <영남일보>는 이후 ‘김대중 정부 출범직전 안기부자료 대거 소각’(2월5일)과 ‘관련기록물 폐기 논란’(2월7일), 그리고 ‘과거사 규명 산넘어 산’(2월14일) 등의 기사를 통해 꾸준히 보도했다.
하지만 <매일신문>은 <연합뉴스>에서 제공된 위의 기사들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매일신문>은 우선 조사대상 선정 보도에서도 부실한 모습을 보였고 이후 추가 보도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보도태도가 매일신문사의 현 시대 인식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매일신문>은 2월5일 사설 ‘한나라 낙동강 전선 무너지는 소리’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집권 세력은 과거사 문제·국가보안법 대공세로 총선 이후 지금까지 한나라당을 파김치로 몰아붙인데 이어 DJ 납치·민청학련·김형욱 실종 사건에다 정수장학회 건(件)까지 한나라당의 ‘아킬레스’를 끊임없이 건드리려 한다.”
<매일신문>은 일련의 과거사 문제를 특정 정당을 탄압하려는 정치적 의도로 편협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이런 자사의 입장에 따라서 자의적으로 기사를 줄이거나 삭제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만약에 그렇다면 <매일신문>은 언론의 본령에서 한참 벗어나게 된다.
언론부터 이성을 찾아야
과거사 문제와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는 집단들은 일련의 과거사 규명을 정치적 의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는 집단들 속에도 이런 의도가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과거사 규명의 뿌리와 줄기는 굴절된 우리의 현대사를 바로잡아 희생자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후세에 교훈을 남겨주자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들은 곁가지를 붙잡고 견강부회하고 있다. 냉정하고 공정한 보도로 논란을 바로잡아야 할 언론들이 오히려 이성을 잃고 있다. 각 언론사의 입장에 따라 기사를 취사 선택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언론의 태도는 진실규명과 화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과거사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집단들의 의도를 막을 수도 없다. 오히려 정치적 분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언론이 먼저 이성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참언론 참소리>
참언론대구시민연대는 대구에서 처음으로 결성된 언론개혁운동단체다. 지역사회 민주주의가 안착되기 위해서는 법제도적 장치 마련과 더불어 지역사회를 정비하고 발전시킬 참언론의 존재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참언론 참소리>칼럼은 기존의 <참언론 대구시민연대 언론신경쓰기 칼럼>을 확대 개편했다. <참언론참소리>칼럼을 통해 개혁을 거부하고, 기득권층과 유착 그들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언론의 그릇된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사회 주요 이슈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제공할 예정이다.
안태준님은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언론모니터팀장입니다.
자세한 문의 : 053-423-4315 / www.chammal.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