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영화 <사랑과 영혼>의 도예 장면이 떠오르다
Oh, my love my darling
I've hungered for your touch
A long lonely time
And time goes by so slowly
And time can do so much
Are you still mine
I need your love
I need your love
……………
(오, 사랑하는 그대여.
정말이지 오랫동안 당신이 그리웠어요.
너무나 외로운 긴 시간이었어요.
시간은 너무도 안 가더군요.
하지만 그런 시간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당신은 아직도 날 사랑하나요.
난 당신의 사랑이 필요해요.
난 당신의 사랑이 필요하다고요.
…………… )
- 라이더스 브라더스 '언체인드 멜로디'
이 노래는 영화 <사랑과 영혼>의 주제곡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10여년 전 피카디리극장에서 본 이 영화에서 주인공 도예가 몰리 젠슨(데미 무어 분)이 이 음악을 배경으로 물레질을 하는데 그의 연인 샘(패트릭 스웨이지 분)이 포옹하는 바람에 빚던 도자기가 망가지는 장면이 아직도 진하게 머리 속에 남아 있다. 아마도 이 장면에 매료되어 도자기를 빚게 된 이도 많았을 것이다.
도예가 서성덕(40)씨는 1986년 대학 공예과에 입학하여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였다. 그는 어느 날 대학 도예실에서 물레를 돌리는 게 너무 신기하고, 땀을 흘리며 작업하는 교수의 모습에 반하여 다음 강의 시간도 잊었다. 그리고 그는 다음 학기부터 자신의 전공을 바꿔서 도예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고운 꿈을 엮어가던 배움터
요즘 온종일 글밭을 간다고 컴퓨터 자판기만 두드리는 내가 안 돼 보였는지, 아내가 바람이나 쐬자고 했다. 가까운 치악산 부곡 계곡에 주차간산(走車看山)하고 돌아오는 길목에 한 초등학교 폐교가 보여서 마음이 아팠다. 며칠 전, 한 신문의 머리기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6개 초교‧분교장 또 폐교
3월 1일자로 인근학교 통합…도내 농어촌교육 황폐화 가속
15년간 초‧중 309개교 사라져/ 정부 각종 교육정책 문제 노출
경제논리를 앞세운 정부의 교육정책이 강원교육의 황폐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10일 도교육청에 따르면 오는 3월 1일자로 횡성 봉덕초교와 양구 광덕초교 등 2개 초교와 춘천 가산초교 품걸분교장 등 4개 분교장이 폐지돼 인근 학교로 통합된다.
1990년 이후 15년간 도내에서는 초교 304개교(분교장 포함), 중학교 5개교 등 309개교가 정부의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초교는 15년간 1600개 학급이 감소했다.(이하 생략)
-<강원일보> 2005년 2월 11일자
차를 멈추고 잠시 언저리를 살폈다. 폐교가 된 초등학교 운동장 옆 나무에는 ‘한국공예문화교육원’이라는 플래카드와 함께 ‘도자기 체험/ 다도예절 교육/ 자연체험학습/ 수련회 각종 캠프’라는 팻말이 학교 어귀에 서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랴” 호기심 많은 나그네가 어찌 그냥 이 폐교를 지나칠 수 있겠는가. 교문도 담도 울타리마저 없는 학교는 고즈넉하기 짝이 없었다. 학교 어귀 팻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담겨 있다.
횡성군 강림면 강림리 212번지에 자리 잡은 이곳은 삼백예순날 웃음소리와 노랫소리로 메아리치던 옛 가천초등학교가 자리했던 곳으로, 이 나라에 내일을 짊어질 미래의 동량들이 오순도순 고운 꿈을 엮어가던 배움의 요람이었습니다.
곧고 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익혀 사회 각계각층에서 당당히 제 몫을 다해가고 있는 졸업생들의 큰 뜻이 살아 숨쉬는, 이 고장사람들의 마음에 고향이었기에 우리 모두는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1964년 12월 21일 개교하여 24회에 걸쳐 643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농촌인구 감소에 따라 1994년 3월 1일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학생도 선생님도 없는 학교
내가 운동장에서 사진을 찍으며 가마터에 기웃거리자 주인이 인기척을 듣고는 가까이 다가와서 인사를 청했다. 그는 이 폐교를 임대받아서 한국공예문화원으로 꾸민 원장 서성덕씨라고 했다. 굳이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작업장을 구경시켜 주고, 다도실로 안내한 뒤, 손수 대나무차를 끓여 내놓았다.
은은한 차를 마시며 이곳에 자리 잡게 된 연유를 묻자, 이 마을이 당신 고향으로 이 학교를 1980년에 마친 제12회 졸업생이라고 소개했다. 더욱이 이 학교 터는 당신 할아버지 서상길씨가 나라에 기증하였다고 했다. 당신이 귀향하여 폐교가 된 이 학교를 도예작업실로 꾸미고자 횡성교육청에서 임대해서 쓰고 있다면서 이 학교와 깊은 연분을 이야기했다.
대학에서 도자기공예를 전공한 뒤 서울 홍익대 앞 한솔공방에서 7년간 도예 일을 하다가 문경대학으로 내려가 4년 동안 후학을 가르치던 중, 폐과가 되어 2003년에 늘 그리던, 언젠가는 돌아오고 싶었던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의상디자인을 전공한 아내가 다소 귀향을 반대했지만, 다행히 이제는 아내도 이곳 생활에 잘 적응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도예가의 길은 생각보다 힘들고 까마득하기에 당신은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겸손해 했다. 그렇지만 당신이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도예의 길에 들어선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강원도와 서울 경기 일대의 유치원생, 초등학생, 일반 동호인의 도자기 체험 실습장으로 개방하고 있다는데, 횡성군 보건소에서 보내준 정신지체장애인들의 실기교육 겸 재활치료 교육도 맡아서 하고 있다고 했다.
자급자족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웃기만 하다가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말끝을 흐렸다.
마치 깊은 산속에서 만난 나무꾼처럼 마냥 어질고 착해 보이는 이 무명의 도예가를 내가 도울 수 있는 길은 기사라도 잘 써 주는 일인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강림 천문인마을, 통나무학교가 바로 이웃이고, 토지 세트장과 명승지 치악산 부곡지구가 바로 엎어지면 무릎 닿는 곳이라 테마 자연학습장으로 아주 안성맞춤이다.
가까운 곳에 있는 강림 순댓집으로 가자고 하는 것을 우리 내외는 이미 점심을 먹었다고 간곡히 사양하고는 폐교를 떠났다. 가난한 도예가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젊은이에게 신세질 수 있으랴.
“선생님, 월말에 꼭 오세요. 그때 가마에 불을 지필 거예요. 밤에 보는 불은 황홀하지요. 그 불에 구워먹는 고기 맛도 별미지요. 꼭 오세요.”
“예, 연락 주세요”라고 대답은 했지만 그때 가봐야 알겠다.
“제 도예실이 문을 닫더라도 다시 학교 종이 울렸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모교를 지키는 그가 믿음직하다. 그의 앞날에 행운을….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학생도 선생님도 없는 학교는 마냥 쓸쓸하기만 하다. 이 폐교가 된 초등학교에 학교 종이 땡땡 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릴 날은 그 언제일까?
덧붙이는 글 | 한국공예문화교육원 문의 : 033-344-8590 또는 011-446-85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