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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내린 마을 뒷동산
눈내린 마을 뒷동산 ⓒ 노태영
뒷동산에 대한 추억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뒷동산이 정겨운 사람도 있고, 가슴이 시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뒷동산만 생각하면 즐거운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슬픈 감정이 북받쳐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뒷동산은 삶의 중요한 시계추 같은 역할을 한다. 마음이 허전하고 고달플 때 뒷동산은 나를 동화의 세계로 이끌어 주기도 하고, 내가 앞으로 가야할 길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언제가 나의 시에서 “뒷동산이 눌러 앉아 있는/내 삶에 어울리는/방 하나 있으면 정말 좋겠다”(방 하나 있었으면)라고 언급한 것처럼 뒷동산은 도피처와 안식처로 나에게 항상 다가온다.

소설가 박완서는 그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나는 외로울 때마다 동무보다는 시골의 뒷동산을 더 많이 그리워했다”고 쓰고 있다. 이처럼 시골의 뒷동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고 우리의 어렸던 시절의 생활과 생각이 녹아 있는 곳이다.

뒷동산에 우뚝 솟아 있는 소나무를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은 소나무가 되고 뒷동산의 푸른 숲을 생각할 때면 난 어느새 고향 언덕마루에서 뒹굴며 동네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뒷동산에 올라보면 온 동네가 다 내려다 보인다. 그래서 마음이 답답할 때 뒷동산에 올라가 풀숲에 누워 있으면 온갖 풀벌레들이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 달개비가 그리움이 가득한 눈망울로 이야기를 해오고, 강아지풀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정겨운 인사를 한다. 풀밭에 누워 하늘을 보면 하얀 구름이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연신 동쪽으로 동쪽으로만 달려간다.

이렇게 어린 시절의 뒷동산은 나에게 슬그머니 다가왔다가 조용히 물러가곤 한다. 뒷동산은 단순한 동네의 배경이나 부속물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였다. 우리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뒷동산에서 놀기도 하고 동생들을 돌보기도 하고, 소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 소를 데리고 다니곤 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많은 어린시절의 추억은 상당히 많은 부분은 바로 뒷동산과 관련이 있다.

봄이 오면 아이들이 제일 먼저 올라가는 곳이 뒷동산이다. 바로 참꽃(진달래꽃)이 피기 때문이다. 진달래꽃이 피면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도 상큼한 꽃이 피게 된다. 그리고 지천으로 널려 있는 참꽃을 따 먹다 보면 배가 부를 정도였다. 여름이면 뒷동산은 온갖 산열매와 풀벌레들이 가득 찬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신기하고 맛있어 보이는 것으로 그득하다. 그래서 아이들의 생활은 바빠진다.

그러나 우리 뒷동산을 대표하는 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소나무다. 소나무가 빙 둘러싸고 있는 뒷동산은 포근하고 안락한 느낌을 준다. 많은 소나무가 만들어 내는 온갖 조형물 같은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런 소나무와 더불어 나도 컸고 내 마음과 내 생각도 컸다. 두꺼운 껍질을 뒤집어 쓴 소나무는 이렇게 수백년을 견디어 왔고 앞으로도 수백년을 견디어 낼 것이다. 이런 소나무들과 보낸 어린 시절은 나에겐 소중한 지적 자산이자 감성의 자산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백년의 세월을 이겨온 소나무
수백년의 세월을 이겨온 소나무 ⓒ 노태영
뒷동산의 소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듬직하다. 그리고 푸르름이 다른 나무에 비길 수가 없다. 소나무는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시사철 변함이 없는 소나무의 자태를 보면 우리 마음의 변덕스러움이 부끄러울 정도다. 무성한 솔잎을 머리에 이고 있는 소나무를 보면 수백년의 나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제 몸을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소나무의 너그러움을 볼 때면 우리 마음은 포근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넉넉해진다. 소나무 밑에서 내 것 네 것을 따지는 것은 정말 소나무를 욕하는 것이다. 소나무 아래서는 아무리 사소한 욕심도 질투도 삼가야 한다.

지금은 소나무가 대단히 사랑을 받고 있지만, 예전에는 소나무는 흔하디 흔한 나무였다. 요즘 우리 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나무가 소나무라고 한다. 조경수로 소나무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이렇게 소나무가 대접을 받는 것은 정말 다행이다. 소나무는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도 특성도 있다. 소나무는 사군자에 들어 있지는 않았지만 이들보다 더 민중적이고 민족적인 정서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나무는 우리 나라의 생활과 민족의 혼을 가장 아우를 수 있는 나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나무다.

이렇게 훌륭한 소나무를 어렸을 때 무던히 괴롭혔다. 소나무를 타고 올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리고 작은 소나무 가지에 걸터 앉아 흔들고 밀치고 잡아 당기고 지금 생각해 보면 소나무에게 미안한 짓을 많이도 했다. 심한 아이들은 낫으로 소나무에 상처를 내기도 하고, 소나무 가지를 잘라내기도 하고, 솔방울을 맞추기 위해 돌을 수없이 던지기도 했다. 아마 그땐 소나무가 무던히 아팠을 거다. 아니 등에 올라타 있는 나를 땅바닥에 부려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도 소나무는 잘 참아 주었다. 아이들의 못된 장난을 잘도 견디어 냈다.

하기야 그래야 소나무지. 아무나 소나무가 되나. 추운 겨울 하얀 눈을 아무리 뒤집어써도 오히려 더 푸른 빛을 내는 소나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리고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가지 하나 내놓지 않고 보호하는 것이 바로 소나무다. 작은 가지 하나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바로 소나무다. 뿌리채 뽑힌 소나무를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소나무는 홍수나 태풍이 아무리 거세어도 뿌리를 드러내지 않는다. 수백년 터줏대감이니 당연할 수밖에.

오래된 소나무일수록 더 진한 녹색을 머금는 솔잎을 보라. 바로 튼튼한 뿌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 많은 어려움과 괴로움을 겪었으니 겉모습이 바로 삶을 그대로 보여 준다. 특히, 소나무가 스스로 분재가 되기 위해 자신을 눌러 앉힌 모습에서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희생과 고행마저도 느낄 수 있다. 소나무는 이렇게 삶의 고난과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그래서 소나무는 늘 많은 말과 생각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소나무를 보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이다.

뒷동산에 있는 소나무는 대부분 동네의 역사보다 더 긴긴 세월을 지니고 있다. 요즈음이야 소나무가 정원에 심는 나무로 인기가 있지만 내가 어렸을 적엔 집안에 소나무를 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조선 시대 정원이 넓은 양반집에는 멋을 내기 위해 소나무를 많이 심었지만 말이다. 소나무는 경제성으로 따지면 별로였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조그만 뒤란 공간에도 유실수나 채소를 많이 심었다. 그래서 소나무는 결국 동네 밖 뒷동산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 천대 받고 주목 받지 못했던 소나무가 이제야 제대로 대접을 받는 것을 보면 세상일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예지자(叡智者)나 선지자는 타고나는가 보다.

언제나 푸르른 소나무
언제나 푸르른 소나무 ⓒ 노태영
소나무 없는 뒷동산을 우리는 생각할 수 없다. 뒷동산에서 소나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말해 준다. 봄이 제일 먼저 오는 곳이 뒷동산이고 가을이 제일 먼저 오는 곳이 바로 뒷동산이다. 그렇지만 소나무는 이들 봄과 가을과 쉽게 어울리고 그냥 하나가 된다. 심지어는 겨울과도 한 몸이 되어 추운 겨울에 깨끗한 여유와 부드러운 색의 묘미를 보여 준다. 눈 내린 하얀 겨울에 푸른 소나무가 없다면 단풍나무 없는 가을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 뒷동산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나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사실 동네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졌으니 당연하지만 말이다. 조용한 뒷동산은 동네를 더욱 적막하게 만든다. 고요만이 질펀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아이들이 사라진 뒷동산은 이제 마을의 장식품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우두커니 동네를 내려다 보는 소나무들이 있어서 뒷동산이 쓸쓸해 보이지는 않는다. 수백년을 지켜온 바로 그 자리에 오늘도 소나무는 그대로 서 있는 것이다. 수많은 세월과 생활의 껍질을 뒤집어 쓰고 세상의 모든 갈등과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솔잎은 언제나 무성하다. 무성한 솔잎 사이로 흐르는 바람은 푸른 샘물처럼 향기롭다. 아니 맑다. 그래서 소나무 밑에서 하는 묵상에는 향기가 나는 것이다. 솔잎 향기는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맑게 한다. 그래서 복잡한 마음이나 뒤틀린 정신이 생각을 혼란하게 만들 때, 소나무 숲을 거닐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특히 뒷동산 소나무는 나의 어린 시절을 훤히 알고 있기 때문에 소나무 아래서 난 정직해질 수밖에 없다. 나의 슬픔도 나의 기쁨도 나의 꿈조차도 알고 있는 뒷동산 소나무 아래서 난 한없이 작아지고 또 작아진다.

아버지의 귀향은 뒷동산을 내 생활 속으로 다시 데려왔다. 그래서 힘들고 외로울 땐 고향 뒷동산이 먼저 생각이 난다. 언제나 나의 친구가 되어 주었듯이 뒷동산은 나를 거부한 적이 없다. 세월을 무겁게 짊어질수록 짙어지는 소나무를 보면서 내 삶의 방향과 목표가 더 선명하게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더 무겁고 진솔한 삶을 꿈꾸고, 아무리 사소한 행동에도 소나무처럼 침묵과 느긋함을 실어 준다. 세월이 만들어낸 생각이 지혜가 되듯, 나도 수백년의 세월을 휘감고 있는 소나무가 되어 아무도 찾지 않는 외진 곳에서 나만의 빛을 내리라.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남성고 교사이고, 이 글은 http://family1004.netian.com에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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