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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책 표지 ⓒ 이국헌
세속적 지식의 전당 하버드와 종교적 사유의 대스승 예수, 이 두 함수 사이의 기묘한 관계가 다원화, 상대화의 길로 숨가쁘게 달려 나갔던 지난 20년간 밀월(蜜月)처럼 재회(再會)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하비 콕스의 책, <예수, 하버드에 오다>(문예출판사, 2004)에서 엿보게 된다.

<세속도시>로 유명한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하비 콕스는 1980년도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과 더불어 심각한 과제로 떠오른 모럴해저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학부생들을 위한 '윤리적 사유' 강좌들을 개설해야만 했던 하버드대학교의 시대적 요청에 따라 '예수와 윤리적 삶'이라는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20년간 1세기의 예수와 21세기의 예비 지성인들을 윤리라는 틀 속에서 스승과 제자 관계로 묶는 혁명적인 작업이 진행되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하버드와 예수의 함수도 그렇고, 1세기와 21세기는 또 어떤가? 이런 상식적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전혀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이 두 함수가 상호 연관성을 찾으면서, 새로운 사유와 행동의 원천이요 관심사로 떠오르는 기적이 세계문명의 중심에서 발생하였다.

그 기적은 그 두 함수가 가지는 절대적 연관성에서 기인한 것이기보다는 상대적 두 함수를 놀라운 통찰력으로 연결시켜 준 시대의 스승(하비 콕스)의 준비된 지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하비 콕스는 예수를 위대한 사유의 전통을 확립한 고대 이스라엘의 랍비 전통의 적자로, 그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시대적 통찰력을 읽게 하는 이야기로 소개 한다.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에 나타난 많은 기록들은 어떤 문화적 환경에도 적용할 수 있는 윤리적 사유의 틀을 제공하는 설화적 성격의 인식 도구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수와 복음서에 대한 그의 이해가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역사적 예수' 논쟁(예수의 이야기에서 신화적 부분을 제거하고 순수하게 역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 예수의 삶만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신학적 논쟁)이나 기독교 다원주의 사상 정도로 폄하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강의 도중에 근본에 충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학생들로부터 이런 도전을 수 없이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와 성경에 대한 그의 (신학과 역사, 철학을 넘나드는) 전방위적 이해는 그것들을 진부한 모더니즘의 유물 정도로 취급했던 많은 학생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사유와 인식의 도구로 받아들이게 하는 신성한 에네르기가 되었다.

책을 읽기 전 독자들은 복잡한 현대의 윤리 논쟁들이 어떻게 예수의 이야기와 가르침 속에서 해결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반문할 수도 있다. 마약과 폭력, 차별과 굶주림, 안락사와 인간복제 논쟁 등 오늘 우리가 당면한 윤리 문제들은 예수를 포함한 1세기의 어느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것들이다. 이러한 뉴 퀘스트(new quest)에 대한 현재적 답(now answer)을 2000년 전 예수에게서 찾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저자는 예수가 보여준 랍비 전통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다.

랍비 전통이란...인생을 살아가면서 당면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기존 전통에서 내려온 고정된 윤리 강령이나 지침을 그대로 되풀이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나 비유나 반대 질문 등을 통해 듣는 사람들의 고정 관념이나 인습적 관행을 뒤흔들어줌으로써, 그들 스스로 삶과 세계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갖도록 일깨워주는 것, 그리하여 이런 새로운 안목을 가지고 그들 스스로 자기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아내어 그들 스스로 결단하도록 해주는 방법이다. (475쪽)

하비 콕스는 성경에 나타난 예수에 관한 이야기들과 예수가 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그 이야기들의 근저에 들어있는 인식의 틀을 새롭게 제시하여, 청강자들이나 독자들로 하여금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전혀 새로운 삶의 해법 찾기에 나서도록 독려하고 있다.

어쩌면 그 자신이 랍비 예수를 소개하면서 그 랍비적 전통에 충실한 교육 방법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랍비 전통에 충실했던 예수에 의해 제시된 1세기의 윤리적 해법들이 랍비 전통을 계승한 21세기 선생, 하비 콕스의 지도 하에 하버드 교정 곳곳에서 윤리적 사유의 풍요로움을 이끌어 내면서 새로운 사회 비전을 창출해 낸 것이 이 책이 보여주는 희망의 메시지다.

이 책에는 단순히 하비 콕스의 사상의 편린들만이 넘쳐나지 않는다는 것이 또 하나의 매력이다. 그는 종종 강의실에서 소개된 학생들의 의견이나 과제로 제출된 논문의 내용들을 소개한다. 그것들은 바로 우리 시대에 살아 펄떡거리는 젊은이들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어서 더 흥미롭다.

다양한 인종과 언어들, 세계관과 가치관들을 가진 그야말로 다원주의의 산실인 하버드의 학생들이 생생하게 들려주는 자신들의 윤리적 사유와 그 뜨거운 논쟁들을 충실하게 보여준 저자의 노력 속에서 이 책이 더욱 더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독자들은 체험할 수 있다. 다소 두꺼운 분량으로 책이 출판된 것은 아마 이런 생생한 현장을 소개하고자 한 저자의 의도 때문일 것이다.

20년 전 시작되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하버드의 새로운 윤리적 사유와 그 뜨거운 논쟁들이 이 책을 통해 한국 사회에도 전달되어 그 논쟁에 동참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울러 그 활발한 사유의 결과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윤리적 아젠다들에 대한 해법이 마련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이것이 나를 포함해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가지는 작은 바람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하비 콕스 / 예수, 하버드에 오다 / 오강남 번역 / 문예출판사 / 2004


예수 하버드에 오다 - 1세기 랍비의 지혜가 21세기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하비 콕스 지음, 오강남 옮김, 문예출판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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