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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육능풍의 질문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항상 그랬다. 이 노인네는 겉으로 보기에 어리숙해 보이지만 그 속은 아마 팔뚝만한 능구렁이가 수십마리는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구파일방 외의 무공은 사용된 흔적이 없습니다. 또한 본 보의 형제들 것 외에 많은 양의 출혈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상대도 무사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구파일방의 인물들이라는 말이다. 그 말에 육능풍은 재차 질문했다.

“이곳에 있는 본 보의 인원은 곡첩을 비롯해 모두 열명이었네. 그렇다면 상대는 몇 명이었을 것 같은가?”

“최소 다섯명. 많으면 일곱명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청년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듯 재빨리 대답했다. 육능풍의 앞으로 기운 고개가 끄떡거렸다. 마치 머리가 너무 무거워 목이 견디지 못해 흔들거리는 것 같았다.

“옳게 판단했군. 그렇다면 이제 같이 생각해 보도록 하지. 본 보의 형제보다 적은 인원으로 이토록 빠른 시각에 깨끗하게 살해할 인물이 구파일방에 얼마나 있을까? 더구나 곡첩을 몇 십초 만에 죽일 정도의 인물이 소림 내에서 몇 명이나 있을까? 심홍엽을 검으로 저 지경 만들 정도로 매화검법을 익힌 화산의 인물들은 몇 명이나 있다고 생각하나? 또 할까? 점창 내에서 분광십팔검을 익혀 조한을 죽일 자는 얼마나 되지? 철무당(鐵武堂) 사령 다섯명을 죽일 정도의 인물이 종남파에 있었나? 곤륜파에 있었나?”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토록 빠른 시각 안에... 그것도 이토록 깨끗하게...? 그렇다면 또 하나 물어 보지. 자네 말대로 구파일방에 그 정도의 인물들이 없는 것은 아니야. 그렇다면 그들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정보를 들은 적이 있나? 그렇다면 장안에 나타난 것으로 보고된 화심검(和心劍) 화웅(樺雄)이나 종남파(終南派)의 창룡신검(蒼龍神劍) 유은비(劉殷譬)를 생각하고 있는 겐가?”

청년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의 잘못은 분명 보이는 대로 보았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원인까지 밝혀냈지만 그 구체적인 상대를 놓쳤다는 사실이었다. 막연하게 생각하기는 쉽다. 또한 구파일방의 저력은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 힘을 발휘한다. 보이는 인물보다 파악되지 않는 인물들이 더 무섭고, 파악했다 하더라도 그 진실된 내력을 모르는 자들이 언제나 있었다. 그래서 자신들이 파악하지 못하는 인물이 있을 것이라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이 데리고 나온 화산삼영(華山三英)과 종남칠수(宗南七秀)가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화심검 화웅이나 창룡신검 유은비는 분명 고수다. 화웅이 손을 썻다면 섬도 심홍엽은 패했을 것이다. 유은비만 하더라도 형무당의 사령들은 당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화산과 종남의 후기지수 중 가장 뛰어난 인물들인 화산삼영과 종남칠수가 있었다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토록 빠른 시각 안에 승부를 볼 수는 없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문제는 그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상대가 다섯명에서 일곱명 정도였다. 결국 그들은 아니라는 결론이다.

“자네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겐가? 아니면 자신의 생각을 옳다고 끼어 맞추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질책이었다. 청년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미리 준비도 안된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대답했던 것을 후회했다. 청년은 고개를 숙이며 포권을 취했다.

“제자가 불민하여 판단이 짧았습니다. 화심검과 창룡신검이라면 이토록 신속하게 상황이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은 언제나 육능풍을 뛰어 넘을 수 있을까?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그는 또 한번의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그래도 많이 좁혀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직까지 자신은 육능풍의 그늘 안에 있었다.

“그렇다면 자네는 이토록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누구를 생각할 수 있겠나? 물론 이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구파일방의 인물 중에서 말일세.”

“화산에서 꼽으라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인물은 파옥노군(破玉怒君) 규진(揆桭)이고 종남에서는 치검(癡劍) 태을자(太乙子) 정도라면 가능했을 것입니다.”

파옥노군 규진은 화산의 현 장문인 개화검(開花劍) 우태현(瑀太賢)의 사숙으로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전대 장문인 자하진인(紫霞眞人)의 사제다. 과거 성격이 불같아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그로 인해 산문을 나서지 못하는 금족령이 내려졌지만 그의 검만큼은 아직까지 중인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또한 치검 태을자는 종남파의 장로이나 검에 미친 자로 검 외에는 관심이 없는 인물이다.

“그들이 나섰을 가능성은 있는가?”

아닐 것이다. 파옥노군이나 태을자는 이미 세상 밖 일에 관심이 없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나섰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없습니다.”

청년은 명확하게 답했다. 여지를 두면 변명이라도 하기 쉽지만 육능풍은 그런 애매한 대답을 제일 싫어했다. 더구나 이미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한 터라 그는 솔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본 보의 형제들을 이 지경으로 살해한 자들은 구파일방의 인물들인가? 아니면 다른 인물인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제서야 왜 육능풍이 이들을 죽인 것이 누구인지 물어 보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누구나 이 상황을 보면 구파일방의 인물들에 의한 것이라 대답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대답이다. 구체적으로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궁색해진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 정도의 판단으로 일을 해결하려 든다. 하지만 애매한 정도의 판단력을 가진 자는 오히려 사건을 해결하는데 걸림돌이 될 경우가 많다.

청년은 잠시 대답을 하지 않고 신중하게 생각했다. 이제 결론을 내야할 때가 온 것이다. 지금까지 육능풍의 질문은 이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었고, 청년은 그 질문 속에서 깨달은 해답을 내 놓아야 했다.

“구파일방의 인물 중 이 사건을 벌일 만한 인물은 없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구파일방의 인물들 중 지금까지 알려진 인물 중에서는 찾아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두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청년이 신중하고 차분하게 대답을 하기 시작하자 육능풍은 고개를 다시 끄떡였다. 그의 대답은 육능풍 자신이 원하는 대답일 터였다. 이래서 이 아이는 가르칠 만한 즐거움이 있었다.

“한가지는 구파일방이 비밀리에 키운 인물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절대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고 파괴적이고 실전적인 무공만을 골라 가르쳤다고 봐야 할겁니다. 또 한가지는 구파일방의 무공을 훔쳐 배운 타 문파의 인물일 가능성입니다. 과거의 예를 보더라도 구파일방의 무학을 훔쳐 배운 인물들은 꽤 있었고, 오히려 한 두가지를 집중적으로 익힌 터라 본래 문파의 제자보다 더 뛰어난 자들도 간혹 있었습니다.”

“그 두가지 중 어떤 쪽이라고 생각하고 있나?”

청년은 다행히 육능풍의 의도에 맞는 올바른 대답을 했다고 느꼈다. 또한 이제 결론은 한가지였다.

“상처나 흔적으로 보아 후자보다는 전자가 가능성이 높습니다. 구파일방으로서는 확고히 무림을 장악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본 보에 대한 경계심도 그러한 욕구를 충동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구파일방이 키운 인물들입니다.”

그때였다. 언제부터인지 정신을 차리고 힘없이 눈을 뜬 섬도 심홍엽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노조... 소보주(小堡主)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들의 복장은 기이했지만 심법(心法)이나 초식에 있어 분명 정통적인 구파일방의 무학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모든 정황을 파악하고 있는 육능풍은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험으로 비추어보아 다른 가능성도 열어 놓고 있는 게 현명한 처사였다.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에 따라 모든 일을 추진하다가 만에 하나 그 결론이 틀렸을 경우에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육능풍은 심홍엽을 바라보다가 그의 옆을 지키고 있는 무표정한 인물에게 말했다.

“추관(錘貫)....! 이 친구를 황약원(璜藥院)으로 데려가는 데 얼마나 걸릴까?”

참으로 육능풍은 기이한 사람이었다. 질문이 아니면 도대체 말이 안되는 사람이다. 지금 질문은 질문이 아니었다. 쉽게 섬도를 황약원으로 데려가는 말이었고, 최대한 빨리 가라는 말이었다. 헌데 이미 습관이 되었는지 추관이라 불리운 무표정한 사내는 이미 섬도의 혼혈을 짚었다.

“속하가 여덟시진 내로는 반드시 황약원에 뉘여 놓겠습니다.”

그 말에 육능풍은 손짓으로 어서 떠나라 하고는 다시 시선을 청년에게 돌렸다.

“헌데 왜 저 친구는 숨을 붙여 놓은 것이지?”

그 물음은 다른 사람에게 물은 것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 던진 중얼거림과 같은 물음이었다. 섬도가 살아 있었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자신들과 부닥치지 않으려 하다보니 촉박한 시각 때문에 실수를 했을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과연 전 인원의 죽음을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급박했을까?

아니면 고의로 숨만 붙여 놓았을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였을까? 구파일방의 무학을 사용하고 상대가 구파일방임을 확인시키도록 하는게 목적이었을까? 구파일방의 행사이니 정중히 물러나 달라고 무언의 표식을 남기고 싶었을까? 구파일방의 행사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물론 철혈보와의 관계가 물과 기름과의 관계와 같지만 이토록 전원을 몰살시키는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 무슨 말씀이온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묻는 청년을 보며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렇게 명백하게 보이는 상황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믿을 것이 못된다. 자신들이 파악하지 못하는 뭔가가 도사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니야.....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의 말에 섬도가 소보주라 일컬었던 청년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이곳을 빨리 수습하고 풍철한이 있는 신검산장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현 무림에서 단일방파로는 가장 강한 문파인 철혈보의 소보주, 철혈보주의 아들인 독고상천(獨孤祥天)의 대답을 들으며 육능풍은 그가 아직도 더 닦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신검산장으로 향한 것은 맞을 것이다. 하지만 독고상천은 한가지 명백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만약 이곳의 흉수들이 구파일방의 인물들이라면 번거롭게 신검산장으로 풍철한을 찾아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신검산장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아주 간단하고 너무나 명백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은 독고상천이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미였다. 주위의 정황과 정보 만으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직까지 경험이 부족하고 사려가 깊지 못하다는 의미였다. 좀 더 혹독하게 훈련시킬 필요가 있었다.
(31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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