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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토지를 바탕으로 하여 기계화된 영농으로 수출 위주의 작물을 단작 재배하는 방식은 현대의 지배적 농사법이다. 즉 인간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분야에도 국제분업과 자유무역에 기초한 세계화된 경제전략의 사고가 그대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의 농업은 각 지역의 민중들이 스스로의 먹을거리를 생산한다는 전통적 개념보다는 철저하게 경제적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초국적 자본의 거대 곡물메이저들이 추구하는 농법은 극심하게 지역민을 수탈하고 지역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이윤추구 대상으로서의 현행의 관행화된 농업은 근본적으로 대규모 석유화학자원에 의지하고 있다. 그러나 오직 단기적으로 최대의 작물생산량을 생산해내기 위해 다량의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방식의 농법은 초기의 희망찬 기대와는 달리 생산성 향상에도 지속적인 효과를 거둘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농토의 황폐화와 생태계 파괴라는 심각한 문제점을 초래하고 있다.

▲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 들녘
이런 점에서 볼 때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요시다 타로지음, 들녘)은 새로운 농법에 대한 신선한 시사점을 주는 한편 요즘 들어 증대되고 있는 식량이나 환경문제, 그리고 유기농업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시각을 제공해 주고 있다.

쿠바의 경이로운 도시농업은 애초 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경제봉쇄로부터 시작되었다. 외국에서 들여온 대규모 석유화학자원을 기반으로 국제적으로 비교우위에 있던 사탕수수 위주의 수출용 작물만을 재배하던 쿠바의 농업이 예측하기 어려운 세계의 경제상황에 취약하리라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책에서도 나오듯이 쿠바의 도시농업은 이러한 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출발하였다.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권 국가의 붕괴와 미국의 경제봉쇄로 쿠바의 기존 관행 농업은 급속하게 붕괴되며 이에 따라 쿠바국민들은 당장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된다. 쿠바에서 기존 농업은 외부에서 공급되는 석유화학자원에 의지한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지속가능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구나 그 자원이 자국 내에서 자체적으로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농업은 외부상황의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쿠바가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는 호기심 이상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벌써부터 관행화된 농업방식으로는 더 이상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수 없으며 돌이킬 수 없는 환경파괴도 초래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한 지금,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모색해야할 근본적인 농업기술은 무엇인가라는 시급한 물음에 쿠바의 도시농업은 적절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식량 자급률이 20%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가 과연 예기치 않은 국제사회의 변화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과 관련해서도 쿠바가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쿠바의 도시농업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혁명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농업을 도시로 끌어왔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의 농업의 개념에서 본다면 농업은 도시외곽에서 대단위 토지와 기계화된 자본을 바탕으로 규모의 이점을 살리면서 도시민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방식을 근간으로 하고 있었다. 쿠바의 도시농업은 바로 이러한 근대농업의 개념을 뒤엎어 버렸다. 도시와 농촌이라는 이분화된 공간적 개념을 '도시 속 농업'으로 탈바꿈시켜버린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외부의 강제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것이지만 그 의의는 무시할 수 없다. 이전의 농업 개념에서 본다면 농촌에서 생산된 작물은 장거리 운송수단을 통해 도시로 이송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에 따라 농산물의 가격이 상승하는 동시에 환경오염의 문제도 유발된다.

그런데 도시농업으로 인해 이러한 문제점이 일거에 해소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도심 속 농사에 기인한 다양한 환경적 효과 또한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렇게 본다면 전통적 의미에서의 농촌과 도시의 기능은 혁명적으로 재조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지역 내 자원을 이용한 농산물의 생산과 소비라는 측면에서의 변화이다. 우리나라의 전통농법은 지역 내 자원의 재순환 과정을 토대로 하였다. 거기에는 외부에서 투입되는 자원은 거의 없으며 철저하게 지역 내 자원을 활용하고 재생하는 방식으로 농업이 이루어진다.

이는 농업생산뿐이 아닌 농산물의 소비에서도 동일하다. 지역 내 생산, 지역 내 소비가 전통농업의 핵심이었다. 물론 이러한 전통농법에서 생산성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이를 '적정기술'을 토대로 해결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전통농법은 지금 이 시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쿠바의 도시농업에는 바로 이러한 지역 내 자원을 활용한 농업생산과 적정기술의 이용이라는 두 가지 주요한 핵심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그들이 선택한 영농방식은 기존의 대규모 국영관영농업에서 소규모 가족농업과 유기농업으로의 전환이었다.

이는 외부로부터 석유나 기타 화학자재를 도입하여 대규모로 작물을 생산하기 보다는 안정적이면서도 환경친화적인 지역 내 자원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관행농법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원거리 외부자원을 바탕으로 하는 농업은 결코 지속성을 가질 수가 없으며 이를 바탕으로 하는 기존의 관행농법으로 유발되는 환경파괴문제는 더더욱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초국적 거대 곡물메이저들의 힘이 나날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쿠바에서와 같이 소규모 가족농을 통한 노동집약적 농업방식과 지역 내 자원을 활용한 유기농법은 자국의 농업을 자주적으로 관리하면서도 생태적으로 건강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쿠바의 도시농업, 유기농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다. 여기에는 대규모 국영관행농업에서 가족농으로의 전환이라는 토지정책, 농산물 유통시스템의 개선, 전통농업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유기농 기술의 개발 혹은 토질개선과 같은 기술적 측면과 아울러 무엇보다 국가 전체적으로 밑으로부터의 참여와 활발한 지역커뮤니티 운동 및 문제해결을 위한 자발적인 상호 협력이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 아니었나 한다.

즉, 쿠바의 도시농업혁명은 단지 기술적인 부문에 국한되지 않고 NPO(비영리기구)나 지역내 주민이 민주적이며 자주적인 의사시스템 하에서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고 적극 참여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기술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정치적 문제였다.

쿠바의 도시 농업은 분명 또다른 문명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수천년간 농촌을 기반으로 유지되던 근대 이전의 문명이 도시문명에 의해 교체되었다면 자연에너지 개발, 친환경적 교통수단의 도입, 수도의 대규모 공원화를 동반한 쿠바의 도시농업은 또다시 새로운 문명을 탄생시킬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쿠바의 도시농업은 현대의 관행농업이 유발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거리인 환경파괴와 식량주권 문제에 유효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본다.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요시다 타로 지음, 안철환 옮김, 들녘(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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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기자'라는 낱말에 오래전부터 유혹을 느꼈었지요. 그렇지만 그 자질과 능력면에서 기자의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많은 시간을 망설였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일단은 사회적 목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생각도 이야기 하는 게 그나마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치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습니다. 그저 글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고 책임감있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는 글쓰기 분야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상의 흔적을 남기고자 자주 써온 일기를 생각할 때 그저 간단한 수필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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