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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보내신 이메일을 먼저 엽니다. 이메일을 여는 순간 신나는 노래가 들려옵니다. '너를 준비했어 따끈한 미역국~' 귀엽고 조금은 낯선 생일 축하곡이었습니다. 컴퓨터 화면에는 플래시 파일로 제작된 카드 메일이 재생됩니다.
순간 어머니가 보내신 메일 내용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들! 생일 축하해. 미역국이라도 끓여줘야 하는 건데, 메일로 대신한다. 다시 한 번 축하해."
며칠 전부터 어머니는 생일인데 고향에 내려오지 않겠냐고 몇 차례 전화를 하셨습니다. 1년에 한 번 있는 생일인데 미역국도 끓여주지 못 하시는 것이 못내 섭섭하셨던 모양입니다. 또 객지에서 생활하는 아들이 미역국 한 그릇 챙겨먹지 못할 것이 안쓰러우셨던 것 같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내용이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한 메일이었지만 다른 이메일보다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요즘 흔히들 '인터넷 세대', '디지털 세대'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인터넷 세대', '디지털 세대'라는 용어들은 어느새 '2-30대 젊은이'와 동의어가 된 듯하고 인터넷 문화는 4-50대에게는 조금 낯선 문화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언젠가 "내가 컴퓨터를 켤 줄은 아는데 끌 줄은 모른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소위 '아날로그 세대'는 디지털적인 문화보다는 아날로그적인 습성에 익숙하게 살아오신 세대입니다.
그런 세대인 50대의 어머니는 사무실에서도 컴퓨터는 늘 남의 몫이라 생각하셨습니다. 컴퓨터는 항상 어머니의 책상이 아닌 다른 책상에 올려져 있었고 그 컴퓨터로 해야 하는 모든 일들 역시 남의 몫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도 컴퓨터를 배워야겠다"고 하셨습니다. 때론 방문교육 서비스를 이용하고 때론 컴퓨터 구입할 때 덤으로 얻은 교육에도 참석하셨습니다. 그러나 별 흥미를 못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한두 해전에 새 컴퓨터를 장만하시면서 '이건 내 거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컴퓨터도 못 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어머니는 부지런히 컴퓨터를 배우셨습니다.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기 위해 더블 클릭하는 것도 어머니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저는 인터넷 창을 여는 방법과 이메일 로그인 방법만 알려드렸습니다. 어쩌면 인터넷을 처음 접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야생동물들의 천국'에 홀로 남겨진 '초식동물'의 마음과 같았을지도 모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어머니는 인터넷 문화에 빠르게 적응해 가셨습니다. 사실 어머니가 인터넷을 좀더 빠르게 배우실 수 있었던 것은 <오마이뉴스> 기사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전화를 거셔서 '네 메일 주소가 뭐니?'하고 물으신 어머니는 바로 메일 한 통을 보내셨습니다.
요즘은 출근하시면 하루 일과를 컴퓨터를 켜고 여기 저기 친구분들과 아들인 저에게 메일을 보내는 일로 시작하십니다. 메일 보내는 양이 어찌나 많으시던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적어 수십명의 친구분들에게 보냅니다.
저에게는 전화로 하면 빨리 전할 수 있는 내용까지 하루에 서너 통씩 메일을 보내 전하십니다. 저는 "메일 보내는 솜씨는 거의 스팸수준"이라고 농담을 하면서도 그런 어머니가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오늘 비록 생일임에도 불구하고 미역국 한 그릇 먹지 못했지만 어머니가 보내주신 '사이버 미역국'은 저를 충분히 감동시켰습니다. 어머니가 끓여주신 미역국 못지않게 따뜻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창간 다섯 돌을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