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황태자', 2005카타르청소년축구대회에서 맹활약한 박주영 선수에게 지역의 한 일간지가 바친 칭호다. 이번 대회전까지만 해도 '차세대'에 불과(?)했던 박주영, 카타르에서 황태자에 봉해지는 영광을 안았다.
물론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박주영이 축구계의 황태자가 되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언론의 이러한 호들갑은 사실 여부를 떠나 유망한 한 선수를,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축구를 뒷걸음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
박주영 원맨쇼?
'박주영, 해트트릭 원맨쇼'(1월18일), '알제리전 혼자 2골…한국 결승 진출'(1월24일), '박주영 발 아래 일본도 없었다'(1월27일) : 이상 <매일신문>
'박주영 있어 축구 본다'(1월24일), '박주영 원맨쇼 빠~져 봅시다'(1월26일), '박주영 발에 반도는 잠깨고 열도는 잠들고'(1월27일) : 이상 <영남일보>
2005카타르대회를 보도한 <매일신문>과 <영남일보>의 기사 제목들이다. 박주영 선수 혼자서 북도 치고 장구도 쳤다는 식이다. 물론 4경기에서 9골을 넣은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
하지만 그가 골을 넣기까지 도움을 준 선수들의 처지에서는 너무 한 선수에게만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서운함이 들 것이다. 특히 청소년대표팀에서 박주영 못지 않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김승용 선수의 경우 그 서운함은 더 클 것이다.
김승용은 이번 대회에서 박주영이 넣은 9골 가운데 3골을 도왔다. 그리고 일본과의 결승전에서는 결승골을 넣고 도움 1개를 기록하는 등 우리 팀의 3:0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청소년대표팀 박승화 감독도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날 경기 후 "결승전의 실질적인 MVP는 김승용이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김승용은 지난해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세계청소년축구대회의 출전권이 걸려 있던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선제골을 넣어 우리 팀의 2:1 승리의 견인차가 되었다. 이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피파(FIFA)가 선정한 2005세계청소년축구대회 때 주목할 선수로 박주영과 함께 뽑히기도 했다.
하지만 언론은 그런 김승용 선수를 외면했고 급기야 그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더듬이춤(리마리오)' 골뒤풀이를 선보였다. 2005카타르대회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최근 모 방송사의 코미디 프로에서 유행하는 '리마리오의 더듬이춤'을 추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골뒤풀이) 이후 주영이게만 집중되던 인터뷰가 나에게도 요청이 왔고 팬카페나 홈페이지를 찾는 사람들도 엄청 늘어났다"며 자신이 별난 골뒤풀이를 한 속내를 내비쳤다.
박주영 선수에게만 치중한 언론의 보도 태도로 인해 자칫 대표팀의 분위기를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스타 선수만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면 팀 내에 위화감이 조성될 수도 있고 이는 대표팀의 경기력 저하로도 이어질 수 있다. 경기마다 주도적인 역할을 한 선수에게도 언론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박주영, 더 이상은 없다
박주영은 세계의 축구신동인 또래의 웨인 루니(잉글랜드),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포르투칼), 호비뉴(브라질)와 비교해도 실력이 앞설 정도다"(매일신문 1월28일 '야고부-우리들의 괴물')
'걸출한 한 사람의 힘을 생각하게 한다…신은 너무 많은 재능을 그에게 주신 것이 아닌가 싶다'(영남일보 1월31일 '문화산책-아름다운 청년')
칭찬을 아낄 이유는 없지만 지나친 칭찬은 오히려 선수의 성장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한다.
국제대회에서 경기마다 2~3골을 넣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박주영이 상대한 팀들의 수준을 살펴 보면 그렇게 놀랄 정도는 아니다.
우선 지난해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부터 살펴보면, 우리 나라가 21위에 오른 피파 순위(국가대표) 2005년 2월을 기준으로 44위인 이라크에 0:3으로 패했고, 4:0으로 대승을 거둔 예멘은 123위에 불과하다. 또 80위인 태국에는 졸전 끝에 1:1 무승부를 기록했고 8강 상대였던 우즈베키스탄은 48위, 결승 상대인 중국은 55위였다.
준결승 상대였던 일본이 18위로 우리 나라보다 앞선 팀이었다. 그리고 이번 2005카타르대회에서 새롭게 만난 우크라이나는 49위, 알제리는 75위였다.
그리 대단치 않은 팀들이었다는 얘기다. 물론 국가대표팀의 순위이기 때문에 청소년대표팀의 전력과는 동일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전반적인 축구 실력이 우리 나라보다 낮은 나라들의 청소년 대표팀이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팀들을 상대한 결과를 가지고 세계 3대 빅리그 가운데 하나인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의 명문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는 웨인 루니와 호나우두, 그리고 현재 브라질 국가대표팀으로 활약하고 있는 호비뉴 등 세계적인 축구 신동보다 낫다거나 신이 너무 많은 재능을 줬다는 식의 찬사는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칭찬이다.
우리 나라는 일찍이 아시아의 축구 스타를 많이 가졌었다. 차범근, 최순호, 김주성, 황선홍, 이동국, 고종수…. 하지만 이들 가운데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선수가 된 이는 아직까지 차범근뿐이다.
차범근은 1972년 사상최연소로 국가대표가 되었으며, 당시 유럽 빅리그 가운데 하나인 독일의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11년 간이나 활약했다. 그는 당시 외국인(비독일선수)으로는 최초로 300경기 이상 출전했으며, 98득점이라는 외국인 선수 최고 득점을 기록했다.
또 그는 1986년에는 분데스리가 MVP에 올랐으며 1980년과 1988년에는 각각 다른 팀에서 UEFA의 우승컵을 안는 기록도 남겼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런 활약으로 인해 세계축구전문가들이 뽑은 '20세기 아시아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이런 차범근조차도 '신이 너무 많은 재능을 주셨다'는 식의 극찬은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갈색 폭격기'일 뿐이다. 언론의 상찬이 유망한 한 선수를 자만에 빠지게 할까 우려된다.
축구 황태자(?) 박주영을 기다리며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박주영의 재능과 인기를 깎아내릴 생각은 조금도 없다. 누구보다도 그의 재능이 꽃을 피워 최고의 선수가 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의 재능은 아직 제대로 검증을 받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가 지금껏 상대한 팀들은 축구로 치면 중·후진국에 속하는 팀들이다. 또 그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뛰어본 경험도 없다. 냉정히 말해 박주영의 현 주소는 아시아에서 그것도 청소년 팀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선수일 뿐이다.
이런 점을 외면한 채 그의 실력을 과장하는 것은 자칫 한 선수의 성장에 치명타를 입힐 수도 있다. 특히 그는 아직 주위의 지나친 관심에 큰 부담을 느끼는 어린 선수다. 또 지난해 7월 아시안컵 대비 국가대표팀 엔트리에는 포함되었지만 최종 명단에는 들지 못했을 때도 '굉장히 낙담했다'는 박주영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박주영 선수만 언론이 주목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팀내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고 급기야는 팀 전체의 경기력 저하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올 6월에 열리는 세계청소년축구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조직력을 다지고 마지막 칼끝을 벼려야 할 때이다. 언론의 좀 더 세심한 보도가 있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 ※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언론모니터팀이 공동으로 작업했으며, 안태준기자가 최종 정리했습니다.
자세한 문의 : www.chammal.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