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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에 올라갑니다. 눈이 정강이까지 빠집니다. 바람이 쓸어다 놓은 언덕 밑은 허리춤까지 빠질 것 같습니다. 올 들어 처음입니다. 축사 중앙 통로에 눈이 가득 휩쓸려 들어와 쌓였습니다. 축사 밖 콩깍지를 덮은 포장이 군데군데 벗겨져 사방 콩깍지가 흩어져 있습니다. 빈 사료부대와 빗자루가 어지럽게 널려 있습니다.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입니다.
밤새 심술을 터트린 동장군이 간간이 칼바람을 내 산을 뒤흔듭니다. 밭이며 들에 무릎까지나 쌓인 눈이 소나무 위에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바람 때문입니다. 이 정도 적설량이면 온 천지가 하얗게 변해야 하는데, 바람의 힘을 빌려 눈을 털어 낸 나뭇가지들은 ‘휘잉’ 바람의 장단 맞추기에 급급합니다.
우수가 지나며 봄소식이 언뜻언뜻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아직 겨울 세상입니다. 겨울이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섣부른 봄 타령에 본때를 보인 것입니다. 다가온 봄기운이 낮 한때 조금은 겨울을 녹일 수 있겠지요. 겨울이 말합니다. ‘오늘 밤 꽁꽁 얼어붙게 하고 말 거야!’
오랜만에 만끽한 설원의 풍경들입니다
아침상을 물리고 카메라를 챙겼습니다. 어제 구입한 디지털 카메라입니다. 어제 저녁 내 사용설명서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한 겨울에 한두 번 정도나 볼 듯 말 듯 한 이 설원 풍경을 그냥 놓칠 수는 없습니다.
다리 난간을 따라 제각각 매달린 고드름 가까이 가 봅니다. 아니, 벌써 봄기운이 접근했나 봅니다. 한 방울, 한 방울 녹아내립니다. ‘휘잉’ 작은 눈보라를 일으키던 겨울이 또 말합니다. ‘오늘 밤 녹은 만큼 또 얼어붙고야 말 걸?’
바람의 심술이 미치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이름 모를 들풀들과 나뭇가지 위에 솜이불처럼 내려앉은 눈이 보기 좋습니다. 말라버린 꽃망울들이 눈을 덮어쓰고 마치 제철 꽃인 냥 우쭐댑니다. 풀줄기가 얽히고설킨 위로 눈옷이 입혀지자 들짐승들이 숨기 좋은 눈 집을 만들어 냅니다.
잠시 놀러 왔던 봄기운에 속아 섣부른 싹틔움을 준비하던 두릅나무는 겸연쩍은 듯 눈 모자를 머리에 얹었습니다. 그리곤 속삭입니다. “그래, 그래, 겨울아. 아직 네 세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