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해간 우리의 교육계에서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목소리가 높았다. 해마다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사교육비 경감대책' 등의 대책을 수없이 발표해 왔다.
'공교육의 위기'가 거론된 것은 불과 한두 해의 일은 아니며 해마다 발표된 대책들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두었는지 의문이다. 우리의 교육은 매년 같은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필자는 방학이면 꽤 여러 명의 고등학생들에게 '과외지도'를 해 왔다. 필자의 경우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3조'에 해당하는 대학생의 신분이기에 법적으로 허용된 과외였다.
과외교사로 과외지도에 임할 때에는 여러 감정과 의문이 복합적으로 발생한다. 그러한 복잡한 감정 속에서도 '내가 그들에게 과연 왜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앞서기도 했다.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필자가 지도했던 학생들에게 '과외를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들 중에는 "방학까지 보충수업이란 이유로 학교에 가기는 싫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또 일부 학생들은 "혼자 있으면 공부를 안 한다"고 솔직히 밝히며 "숙제를 많이 내달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필자가 고등학생 A를 지도할 때의 일이다. 필자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입시교재를 과외지도에 사용했는데, 주1회 2시간 수업으로 1달만에 교재를 끝마치는 기염을 토했다. 주1회 수업이었으니까 책 한 권을 끝내는 데 딱 8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이와 같이 '속성'으로 과외를 지도하기 위해서는 학생의 '충실한 숙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처음 수십 쪽의 과제를 주며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이 많은 과제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 다행인지 불행인지 학생은 숙제를 충실히 해서 과외수업에 임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 많은 숙제를 언제 다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해당 학생은 예체능계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으로 방학 중에는 약 오후 2시까지 학교에서 시행하는 보충수업을 들었다. 그 수업이 끝나면 실기시험에 대비를 위해 곧장 학원에 가서 밤늦도록 실기 준비에 임하고 있었다.
필자는 마지막 과외수업 때 "그럼 언제 그 많은 숙제를 했냐?"고 물었다. 그 학생은 방학 중 보충수업시간표를 꺼내 보였다. 이어 그 학생은 "내가 입시에서 필요한 수능과목은 언어, 사탐, 외국어 등 3개 영역이다. 학교 수업 중에는 내게 전혀 필요 없는 과목들이 많다"라며 "예를 들어 수학이나 과학 분야 과목의 시간에는 과외 교재를 펴놓고 과외 숙제를 한다"고 말했다.
또 그 학생은 예체능계 학과에 응시할 학생들이 많은 학급의 경우에 수업시간에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일은 더 이상 낯선 광경은 아니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필자에게 "그래도 필요 없는 과목이라고 엎어져 자는 학생들보다 다른 과목이라도 공부하는 학생이 낫지 않은가?"라고 되물었다. '붕괴된 교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학생의 고백이었다.
사정이 이러한진대 실제 대부분의 고등학교 수업 방식은 종래의 방식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일선 고등학교에서 담임교사를 맡고 있는 현직 교사 B씨는 "2006학년도 대학입시는 수능 반영방법이 보다 다양화된 경향이 많다. 이렇게 수능 반영방법이 다양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학생들에게 모든 수업을 강요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2006학년도 대학입시에서는 전국 201개 4년제 대학이 2명 중 1명꼴인 전체 모집정원의 48.3%를 수시모집으로 뽑는다. 또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은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대학이 언어·수리·외국어 영역에 탐구영역을 더한 '3+1', 또는 계열에 따라 언어·외국어·사회탐구나 수리·외국어·과학탐구를 반영하는 '2+1'을 적용한다.
이와 같은 수능 영역별 반영은 입시제도의 측면에서 효율성을 더할 수 있다. 또 수험생의 측면에서는 전 영역을 반영하던 과거 수학능력시험에 비해 보다 수월하고 능률적인 수능 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학능력시험 반영방법과 비율이 점차 다양화되는 가운데 학교 수업 운영체계는 종전과 크게 변함이 없어 많은 학생들이 교사가 진행하는 수업이 아닌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현상들이 빚어지고 있다. 교사와 학생의 새로운 '동상이몽'이 교실 속에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된다.
따라서 교육인적자원부와 각급 단체에서는 변화되는 입시정책에 따른 효과적인 수업 방식 개발에 충실을 기해야 할 것이다. 점차 입시제도는 세분화 다양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률적인 수업 편성은 '교실 붕괴'의 또 다른 원인은 아닌지 고민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