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 100주년, 해방60주년을 맞아 친일파 청산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피해 등이 사회적 관심으로 떠오른 가운데 불교계의 친일인맥을 파헤친 책이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바로 임혜봉 스님이 쓴 <친일승려 108인-끝나지 않은 역사의 물음>(아래 <친일승려 108인>, 청년사 발행)이 그것이다.
<친일승려 108인>은 '불교계의 친일'을 화두 삼아 십수년을 정진해 온 성과와 번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은이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십여년 동안 일제 침략 당시의 불교 신문과 잡지, 일반 신문 등에 보도된 기록과 여러 승려들의 자서전과 전기 등을 샅샅이 뒤졌다. 워낙 왜곡되고 감춰져 있었기에 1차적인 사료를 열람, 발췌해 친일 승려들의 반민족적 행위를 밝혀내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님의 열정적 연구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불교계의 이단아 취급을 받아온 혜봉스님의 오랜 작업이 얼마나 외롭고 고단하였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말한다. 이 한 권의 책이 나오기 위해 겪어야 했던 참으로 오랜 산고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친일 문제는 역사이자 현재진행형이다"
<친일승려 108인>은 친일 승려 108인의 친일 행적을 사료에 기반해 과장이나 왜곡 없이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지은이의 말처럼 왜 "친일 문제는 역사이자 현재진행형"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초기와 중-일 전쟁기, 대동아 전쟁기로 나누어 각 시기마다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던 승려들의 친일 행적을 들춰내고 있다. 또 친일 승려의 행적을 '독립운동 뒤 변절한 자', '학병과 징용 등 강권한 자', '일제 전쟁 돕기 위해 군수품을 생산·헌납한 자', '언론과 예술, 종교 등 문화기관을 통해 친일한 자' 등 7가지로 분류해 정리했다.
이 책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초기, 한일병합으로 온 겨레가 분노와 슬픔에 휩싸인 상황에서 불교계의 최취허, 이보담, 이회명, 이회광, 김용태 등은 자진해서 적극적인 친일 행위를 일삼았다. 최취허는 1911년에 일본 왕과 조선총독 데라우치의 식민 통치를 찬양했으며, 조선불교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일선융화를 표방한 불교운동을 일으켰다.
일제가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뒤, 노골적인 수탈을 자행하던 시기 친일 승려들은 이른바 '탁발보국'이란 명목으로 비행기 등 군수품과 위문금 헌납을 벌여나갔다. 이들은 또 1940년부터 실시된 창씨개명에 적극 호응했으며, 1941년 7월엔 친일 승려들과 조선총독부의 야합으로 적극적인 친일 종단인 조선불교 조계종이 설립됐다.
친일 승려들은 1941년 대동아 전쟁이 발발하자 징병제를 옹호하였고, 적극 홍보하였다. 1943년 10월 일제가 학도병 징집을 시작한 뒤엔 학도병에게 "역사적 사명"이라 강권하고, "제 발로 걸어 나가 죽는 것이 조선 청년 승려들의 시대적 사명"이란 주장을 펴기도 했다. 당연히 해군기 헌납을 위해 고액의 국방헌금도 마다하지 않았다.
친일 승려들 해방 후, 오히려 애국자로 둔갑
일제강점기 군대와 경찰, 언론, 예술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반민족행위를 자행했던 친일파들이 해방된 조국땅에서 오히려 애국자로 둔갑한 일이 많음은 이미 공지의 사실이다.
<친일 승려 108인>은 해방된 후 자신들의 친일 행적을 왜곡하고 은폐해 오히려 애국자로 대접받는 친일 승려들의 문제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은이는 왜곡 정도가 심각한 승려들로 차상명, 최범술, 허영호, 박영희, 이종욱 등을 꼽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때 항일활동을 했지만 모두 변절해 일제의 앞잡이가 됐는데, 한때의 항일 기록만 남고, 친일 행적은 모두 은폐된 채 항일투사로 둔갑해 '국가보훈처의 애국지사 인정'을 받았다는 점이다.
우선 지은이는 친일 승려 차상명이 건국공로 대통령표창과 건국공로훈장 애족장을 받았으며, 최범술은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허영호는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 박영희는 독립운동 유공자가 되어 대통령표창과 건국공로훈장 애족장을 받고, 죽은 뒤엔 대전 국립묘지에 묻혔다.
지은이는 또한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승려로만 알려져 있던 이종욱의 친일행적을 파헤쳐 일본제국주의와 야합해 조선불교 조계종을 만든 장본인이자 불교계 최고의 친일 인물이라 평하고 있다.
이종욱은 해방된 뒤 정부에서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받았고,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더구나 이른바 '이종욱 연구회'가 설립돼 연구기금 지원과 장학회, 학술세미나 등을 통해 그 '업적'을 기리고 있다.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업보라고나 할까.
'불교계의 친일' 화두로 삼은 임혜봉 스님
경기도 설봉산에 있는 지족암 주지인 임혜봉 스님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으로 활동하며, 불교 근현대사와 차 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저술하고 있다.
스님은 이미 1993년에 <친일불교론>(상·하권, 민족사)이란 책으로 유독 친일 역사를 반성하지 않고 있는 불교계의 보수적 성향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한 바 있다.
임혜봉 스님이 불교계의 친일문제를 화두로 삼게 된 건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행하던 시기에 북한산 태고사에서 일제시대 승려들의 의식 교과서 격인 <승문규범>이란 책을 본 것이 계기였다.
"1938년에 나온 <승문규범>에 일본천황과 황실을 위한 추도문이 적혀 있는 걸 보고, 불교계의 친일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산을 내려온 스님은 그 길로 각종 도서관과 서고를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불교계에서 나온 신문은 물론 총독부 기관지와 각종 신문, 잡지 등에서 불교 관련 기사들을 다 뒤지면서 다녔는데,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불교계에서 추앙받는 승려들의 수많은 친일행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때 당시에 밝혀진 내용을 정리한 게 <친일불교론>이었다. <친일불교론>이 불교계의 친일 행적을 개괄한 '총론' 격이라면, 이번 책 <친일 승려 108인>은 승려들의 구체적인 친일 행각을 담은 '각론'격이다.
이 외에도 스님이 쓴 책에는 <윤회의 실상> <일제하 불교계 항일 운동> <다성(茶聖) 초의선사와 대둔사의 다맥> <불교사 100장면> 등이 있다.
임혜봉 스님은 "친일 1세대는 죽었지만 다음 세대들이 그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며 "불교계가 진심으로 참회한다면 한국불교사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건 물론이고 친일 과거 청산이라는 과제의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과연 불교계가 '친일'의 백팔번뇌를 끊고 거듭나는 모습을 보일 날은 언제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신문[참말로](www.chammalo.com)에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