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토가 한참 겨울의 중반을 넘어 봄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일월의 끝자리 즈음 남쪽나라 제주에서 시작된 봄은 그렇게 조용한 혁명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마을 언저리 돌담 밑에서는 수선화가 너무 태연하게 꽃 봉우리를 간지럽게 흔들어대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시작된 것 같은 제주의 봄은, 수줍은 처녀 비바리를 꼭 닮아 뭇 사내의 가슴을 흥분시킵니다. 알 수 없는 자연의 조화라고 하면 맞는 말일까요?
바닷바람에 가까이 있는 노란 유채꽃은 졸음처럼 따뜻한 환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마치 부모를 잃어버린 불쌍한 아이처럼 계절을 잃어버린 슬픔에 빠져 있는 것도 같습니다.
제주의 봄 기운은 육지에 오르지 못하고 동해를 비껴 돌아 울릉도에 먼저 내리고 말았습니다. 울릉도에는 눈이 녹고 있었고 맑은 물을 바다로 흘려 보내고 있었으며 부지런한 자연은 봄처녀를 맞이 할 준비를 바삐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울릉도에서는 눈 속에서도 자란다는 울릉도만의 약초 나물들이 추위에 감추어진 식욕을 바짝 돋구고 있었습니다. 한 움큼 아무렇게나 뜯어 흐르는 물에 적당히 씻어 내리고 입 속 가득 자근자근 씹어 봄의 냄새와 맛을 느끼고 싶어졌습니다.
울릉도의 봄을 알려주는 전령은 약초와 나물들입니다. 전호와 부지갱이라는 나물들이 이른 아침부터 씻겨져 가게 앞에 놓인 모습은 그 모습만으로도 봄의 싱그러움을 가장 잘 표현해주고 있었습니다.
머지않아 육지에도 봄이 올 것입니다. 봄을 노래하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 봄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고 노래한 한 시인을 떠올리며 한 겨울의 추위보다 더 시리고 한 겨울의 차디 찬 낭만보다 더 차가운 우리네 인생 들녁에도 과연 봄은 오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 1월의 제주도 봄오는 소리와 2월 울릉도의 봄오는 소리를 여행중에 카메라에 담아 놓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