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전후, 히틀러가 즐겨찾던 휴양지이자 나치 수뇌부의 주요 회합장소였던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의 오버잘츠베르크(Obersalzberg)에 특급호텔이 들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세계적 호텔 체인인 인터콘티넨탈 호텔은 총 공사비 5천5백만 달러를 들여 오버잘츠베르크에 138개의 객실, 대형골프장, 온천을 비롯한 제반시설을 갖춘 특급호텔을 완공, 올 3월 1일 개장에 앞서 지난 목요일(24일) 언론에 호텔을 공개했다.
히틀러가 즐겨 찾던 오버잘츠베르크에 호텔을 세우는 것은 2001년 7월 공사가 시작될 무렵부터 적지 않은 논란을 가져왔다. 베를린과 함께 나치정권의 주 활동무대였던 이곳에 특급호텔을 건설하는 것이 과연 적합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
오버잘츠베르크는 어떤 곳?
빼어난 자연경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남독일 바이에른주 알프스 산맥 베르히테스가덴에 소재한 오버잘츠베르크는 히틀러 정권의 주요무대가 되기 전까지 폐병을 앓는 어린이를 위한 요양소 외에 50여 가구의 주민이 살았던 작고 평온한 농가마을이었다.
특히 독일의 음악가 슈만, 클라라를 비롯해 토마스 만(1929년 노벨문학상 수상), 심리학자 프로이트 등이 즐겨 찾던 여름 휴양지로 알려졌다.
그러나 193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수백 년째 대를 이어 살아오던 작고 평온한 농가마을은 더 이상 그 평온함을 지킬 수 없었다.
1921년 어린이요양소를 설립, 운영했던 소아과 의사 아빠와 함께 이곳에서 19살 때까지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브리기테 라이몰트(87)씨는 “히틀러에 의해 1937년 가족들과 함께 마을에서 추방되었다”고 2월24일자 <쥐트도이체짜이퉁>과의 인터뷰에서 증언했다.
히틀러는 50여 가구를 몰아낸 뒤 이 곳을 자신을 위한 휴가지로 이용했고, 나치 수뇌부를 위한 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이후 1933년 나치 수뇌부와 그들의 가족이 이곳에 거주하게 되면서 오버잘츠베르크는 나치 수뇌부의 ‘비버리힐스’ 로 자리잡았고 자연스레 베를린 다음의 업무중심지가 되었다. 곳곳에는 폭격에 대비한 지하벙커가 설치되기도 했다.
히틀러와 나치 수뇌부는 무엇보다 이곳에서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2차 대전, 특히 유태인학살 등을 집중적으로 계획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치문화전문지 <시세로> 2월호에 따르면, 히틀러는 살아있을 당시 “이 곳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와 이곳은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이곳에서 지낸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였다, 중요한 계획과 결정은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 후반부도 이곳에서 집필되었다.
패전 후 미군의 휴양지에서 특급호텔로의 변신
히틀러 수뇌부의 ‘비버리힐스’는 2차 대전 때 연합군에 의해 거의 파괴됐다. 그후 이 곳은 50년간 미군과 그들의 가족을 위한 휴양지로 사용되다가 1996년 독일 바이에른주에 반환됐다.
이후 바이에른주 정부는 이 곳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역사 청산 차원에서 나치 문서보관소를 설립해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는 것과 호텔을 건립할 것을 계획했으며, 나치 문서보관소를 호텔 건립을 위한 선행 조건으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1999년 나치문서보관소가 설립되었으며 이어 2001년, 호텔 건설이 시작됐다.
그러나 2차 대전 종전 6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2차대전 및 유태인 학살 등이 계획된 이곳에 휴가를 즐기기 위한 특급호텔이 들어서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호텔사업 통해 나치망령 없앨 수 있다"
"몰역사성의 극치... 왜 하필 호텔인가"
바이에른주 재무장관 팔트하우저는 독일의 시사전문 TV채널 'N-24' 와의 인터뷰에서 몇몇 외국 언론을 비롯해 국내외에서 제기되는 호텔에 대한 비판을 의식,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의 하나인 오버잘츠베르크의 관광자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이곳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히틀러는 직접적 관계가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그는 호텔 인근에 있는 나치문서보관소에 현재까지 60만명 가량의 방문객이 다녀갔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호텔이 들어서게 될 경우 더 많은 사람들이 나치문서보관소를 방문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독일 역사를 알릴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호텔 대표 뵈켈러는 지방언론 <베르히테스가덴>과의 2월 27일자 인터뷰에서 “히틀러가 20년가량 거주했던 이곳에 호텔이 세워진다면 많은 외국관광객이 몰려올 것”이라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오버잘츠베르크에 특급호텔이 들어섬으로써 이 지역이 세계적으로 더욱 알려질 수 있으며 앞으로 국제예술가들의 만남, 국제학술대회,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만남 같은 국제행사를 유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호텔 측은 덧붙여 호텔이 들어서는 장소가 역사적으로 매우 민감한 곳인 만큼 이를 고려해 호텔을 운영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투숙객들이 나치역사에 대해 질문해 올 것에 대비, 150여명의 호텔직원들을 대상으로 역사교육을 실시하고 객실마다 오버잘츠베르크와 나치의 역사에 대한 책자를 비치해 과거는 결코 잊혀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
이와 관련 호텔직원의 교육을 담당한 나치문서보관소 폴커 담 박사는 2월 25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인터넷판과의 인터뷰에서 “보통사람들의 일상적 삶이 유입됨으로써 이곳에서 나치 역사의 망령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며 호텔의 역할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동시에 호텔이 들어서는 것에 대한 반대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유태인 출신 작가 랄프 지오다노는 독일 공영방송 ‘ARD’ 1월 16일과의 인터뷰에서 “그것은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를 가리는 행위”라며 “그들은 오버잘츠베르크라는 곳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거나, 그 곳이 어떤 장소인지 알면서도 그런 행위를 하고 있다”고 호텔 건립을 비난했다.
독일 유태인협회 전 부대표 미하엘 프리드만도 ‘N-24’와의 인터뷰에서 “화려한 호텔이 들어서는 순간 기억해야 할 어두운 역사는 점점 멀어질 것”이라며 “호텔 건설은 이 장소에 대한 몰역사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독일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은 2월 1일자에서 “특급호텔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휴식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히틀러의 ‘기’를 지울 수는 없을 것이라는 미국일간지 <뉴욕타임스>를 인용 보도하기도 했다.
호텔건설을 비판하는 측에서 제기하는 또 다른 우려는 신나치즘이다. 히틀러의 휴양지였던 이 장소가 나치추종세력들에게 히틀러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소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 실제 신나치주의자들의 활동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은 이들에게 설득력을 실어주고 있다.
독일의 공영방송 ‘ARD’는 1월 16일자에서 “잔인한 전쟁과 6백만 유태인 학살을 계획했던 그곳에서 오늘 우리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휴가를 즐길 수 있는가”라며 “그리고 왜 하필 호텔이어야 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지고 있다.
"원소유자들에게 돌려줘라, 아니면 교육센터를!"
히틀러 정권에 의해 고향에서 쫓겨났던 브리기테 라이몰트는 <쥐트도이체짜이퉁> 2월 24자에서 “전쟁 후 왜 정부가 쫓겨난 사람들에게 다시 그 땅으로 돌아가도록 해주지 않고 미군들의 휴양지로 사용케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분노를 나타냈다.
이와 관련 <쥐트도이체짜이퉁>은 2월 24일자에서 오버잘츠베르크에서 쫓겨난 주민들의 삶을 집중보도하며 원래 소유자였던 그들이 소송을 제기하고자 시도했으나 전후 나치 잔존세력에 의해 실패했다고 전했다.
공영방송 ‘ARD’ 보도에 따르면 1933년 히틀러에 의해 해당 지역에서 쫓겨난 사람 가운데 아무도 다시 그들의 땅을 돌려받지 못했다.
특히 현지 언론들은 최근 공개된 호텔 건축 양식, 내부 시설의 일부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것은 객실의 욕실 천장에 달려 있는 샤워꼭지. 바이에른 TV 문화 프로그램 <카프리치오>는 2월 26일자 방송을 통해 욕실 천장에 달려 있는 샤워기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설치되었던 가스실의 천장에 설치되었던 가스유입구를 연상케 한다고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유태인협회 전 부대표 프리드만은 2001년 호텔공사 시작이 발표되었을 당시 “호텔이 아닌 젊은이들을 위한 국제센터를 마련해 젊은이들에게 산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부 바이에른TV 문화프로그램 <카프리치오>는 나치에 의해 파괴된 폐병어린이환자를 위한 요양소 재건립, 청소년국제센터 등과 같은 교육 목적을 고려한 장소를 왜 건립하지 않는가에 대해 비판했다. 방송은 위와 같은 시설이 들어설 공간은 충분하다며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