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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려서는 육식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칡넝쿨이나 풀을 뜯어다 키우던 토끼 고기나 새벽에 일어나 모이를 줘서 키우던 닭고기뿐 아니라 밭고랑에다 ‘싸이나’라 부르는 청산가리를 뿌려서 잡은 꿩고기조차도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너, 꿩고기가 얼마나 쫄깃쫄깃허고 맛있는 줄 알어?"
꿩고기를 먹어본 친구들이 무슨 특별한 경험이라도 해본 양 으스대기도 했지만 고기라면 입맛이 전혀 동하지 않는 것을 어이하랴.
그렇게 입이 짧고 비위가 약한 내가 먹게 된 최초의 고기는 어이없게도 쇠고기도 아니고 돼지고기도 아닌 고양이 고기였다.
초등학교 4학년 5월이었다. 당번이었던 나는 혼자서 교실 청소를 끝내고 늦은 귀가를 서둘렀다. 집까지는 5리가 약간 넘는 길이다. 논 가운데로 난 신작로를 따라서 터벅터벅 걸어갔다. 지금은 광주호 물 속으로 가라앉은 길이다.
집까지 1km쯤이나 남겨뒀을까? 어느 순간 갑자기 두 다리가 마비돼버린 것이다. 걸을 수도 일어설 수도 없게 돼 버렸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사방을 둘러봤지만 사람의 그림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별 도리가 없었다. 난 다리가 저며오는 아픔에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땅바닥을 기어갔다. 그야말로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였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일까. 집에 도착해보니 온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고 무르팍은 다 까져서 피가 철철 났다.
할머니와 고모들이 놀라서 뛰쳐나왔다. 다음날 난 택시에 태워 아버지가 살고 있던 광주 양동 집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돌고개에 있는 "양민의원"이라는 곳에 가서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병명을 ‘주네다비’라고 하더니 그 병엔 고양이 고기가 특효라는 거다.
병이 나을 때까지는 학교에도 가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양동 아버지 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약이랍시고 한 끼도 빠짐없이 고양이 고깃국(?)을 먹어야 했다.
워낙 고기를 싫어하기도 했지만 고양이 고기는 냄새도 고약할 뿐더러 목으로 넘기기조차 역겨웠다. 나중엔 바라보기만 해도 꾸역꾸역 욕지기가 났다. 아버지 몰래 들창문을 열고 광주천에다 버리기 일쑤였다.
그때 어찌나 질려버렸던지 40년이 흐른 지금에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구역질이 날 정도다. 그렇게 석 달이 흘러 가고 나서야 난 다시 예전처럼 걸어다닐 수 있었다.
이후로는 그렇게 큰 병을 앓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병이라고 해야 기껏 감기 몸살 따위였다. 가장 가까운 약방이래야 십리나 떨어진 고서 면소재지나 가야 있었기 때문에 죽을병이 아닌 다음에야 약을 지어다 먹는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어쩌다 배가 몹시 아프거나 몸살로 끙끙 앓을 때면 할머니는 발만 동동거리셨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속수무책으로 가만히 앉아 계신 것만은 아니다. 광목에다 쌀 한 됫박 가량을 싸서 내 배를 살살 문지르시는 거다.
그냥 배만 문지르시는 게 아니다. "쌔쌔에~ 잡귀야 물러가라" 하고 크게 주문을 외시며 허공에다 대고 손사래를 치신다. 지독한 몸살에 걸려 온몸이 불덩이같이 달아오르는 밤엔 방에다 세숫대야를 들여놓고 수시로 수건을 찬물에 적셔서 이마에 올려놓으시며 밤새 내 머리맡을 지키셨다.
그렇게 불덩이처럼 앓고 나면 난 정신적으로 훌쩍 커버린 자신을 느끼곤 했다. 할머니가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분이신가를 사무치게 깨달았다. 몸이 무거워지면 영혼도 덩달아 무거워지고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사람들은 몸에 조금만 열이 나도 참아내지 못한다. 사람들은 쪼르르 약국으로, 병원으로 달려간다. 그들이 정말 앓고 있는 병은 조급증이란 병이다.
젊은 엄마들은 여기서 한술 더 뜬다. 아이가 감기 몸살 기미가 눈곱만치라도 비치면 지체 없이 병원으로 데려가는 거다. 그리고 약을 지어 먹이고 돌아서면 그야말로 "에미 임무 끝"이다.
아이 곁에서 걱정스런 눈빛으로 지켜보거나 밤을 새는 엄마는 드물다. 그것은 어쩌면 아이에게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뜨거움을 가르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어머니 스스로 놓쳐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항생제 등 지나친 약 남용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약에 대한 내성도 문제지만 아이가 제대로 아플 틈을 주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아이들은 아프면서 자란다. 호되게 아프고 나야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진다. 이렇게 애들이 아플 틈이 없어서야 어디 애들이 정신적으로 성숙할 틈이 있을는지 걱정이다.
죽을병이 아니라면 아이들에게 병을 견디는 법을 배우게 해주면 좋겠다. 아이 스스로 병을 이겨내며 육친이라는 존재의 뜨거움을 느끼고, 정신적인 깊이를 키울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어떨까 싶다.
대나무는 스스로 매듭을 만들면서 자란다. 그리고 그 속에다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간직한다. 아이들이 제 스스로 삶의 매듭을 만들 줄 알고 마음 속에 아름다운 소리를 간직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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