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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유배당한 사람들에게 제주는 저주의 땅이었던가? 지금이야 제주도가 국제자유도시로 지정돼 평화가 넘실대지만, 역사의 뒤안길에서 생각해보면 제주는 한양에서 유배당한 사람들의 마지막 정착지였다. 지금은 제주도가 계절마다 상춘객들이 몰려와 꿈과 낭만을 펼치는 곳이지만, 한때는 권력다툼에서 밀린 관리들의 유배지이기도 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특히 관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좌천이나 유배는 자신의 명예가 한순간에 떨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쩌면 유배당한 사람들에게 제주는 저주의 땅으로 인식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예나 지금이나 선비들은 나라님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얼마나 발버둥쳤을까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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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을 그리는 조천포구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12번 도로를 타고 30분 정도 가노라면 조천마을에 접어든다. 이 마을에서 바다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길 끝에서 포구를 만난다.

조천포구. 섬사람들에게 포구는 늘 그리움의 터이지 싶다. 포구를 연상할 때 만선의 꿈을 안고 떠나는 배를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조천포구는 아주 특별함이 있다. 섬과 뭍을 연결하는 곳. 그 옛날 교통이 단절되었을 당시 제주인들에게 뭍으로 향하는 바다 길은 아주 특별했으니 말이다.

3월의 조천 포구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포구의 언저리에 줄을 맞춰 서 있는 서너 대의 배가 잔잔한 바닷물결 위에 떠 있고, 방파제 끝에는 키 작은 등대가 보일 듯 말 듯 외로움에 지쳐 있는 봄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 포구는 심심하지 않았다. 포구와 말벗이 되어 줄 정자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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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을 사모하는 정자

연북정(戀北亭). 연북정은 언뜻 보아서는 여느 마을 한가운데 있는 정자와 비슷했지만, 그 의미에는 아주 아픔이 배어 있는 곳이다. 연북정이란 '북쪽을 그리워하는 정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제주에서 북쪽은 곧 '한양'을 뜻한다. 그리고 그 '한양'이 주는 의미는 '임금님'을 뜻하는 것으로, '임금님을 사모한다'는 의미가 깃들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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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북정은 1590년(선조 23) 당시의 조천관(朝天館)을 다시 짓고 쌍벽정(雙壁亭)이라고 하였다가 1599년에 다시 건물을 짓고 연북정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이것은 유배되어 온 사람들이 제주의 관문인 이곳에서 한양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면서 북쪽의 임금에 대한 사모의 충정을 보낸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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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북정은 제주도 유형문화재 3호로,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기둥의 배열과 가구의 배열방법이 모두 제주도 주택과 비슷했으며 지붕은 합각지붕이었다. 그리고 축대 북쪽에는 타원형의 성곽이 둘러싸여 있어 혹자들은 연북정이 망루의 용도로 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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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마을에서 14자의 높이는 마을의 동산 같은 의미를 주었다. 14자의 축대 위를 밟고 올라가는 계단은 그리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좀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주변보다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정자에 올라서니 갑자기 기분이 우쭐거렸다. 사방이 확 트였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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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의 풍경은 한때 뭍으로 연결하였을 바닷길이 수평선으로 가로막혀 있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풍경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 마디로 표현하지면 적막하다고나 할까? 그러나 빨강, 파랑의 색채를 띤 시골 지붕 끝에 병풍을 친 듯 제주의 오름들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풍경은 정겹게 느껴졌다.

戀北亭. 처마 끝에 새겨진 글씨를 읽는 순간, 당시 제주에 유배 온 사람들의 사모하는 마음이 얼마나 애절 했던지에 대한 감흥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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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사모할 임금이 있었으면….

'사모하는 임금'.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모하는 임금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러나 지금 내게는 사모할 임금조차 없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정자 마루에는 돗자리가 깔려져 있었고, 정자 기둥 사이로는 조천 포구의 풍경이 마치 여러 폭의 그림을 한 데 붙여 놓은 것처럼 보였다. 연북정 마루에 앉아 보았으나 계절 탓인지, 조천포구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의 찌꺼기 때문인지 아직은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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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북정에서 목을 빼고 북쪽 하늘을 바라다보니 보이는 것은 푸연 안개 속에 오름뿐이다. 백성에서 어진 정치를 펼치는 임금을 사모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러니, 사모할 임금조차 없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은 얼마나 암담하고 우울한 존재인가?

연북정을 뒤로 하고 14자의 축대 위에서 뚜벅뚜벅 내려오니 조천포구가 발걸음을 붙든다. 허나, 조천 포구에 앉아 북쪽의 그리운 소식 기다려 봤으나, 정자는 말이 없고 포구에는 물결만 인다.

덧붙이는 글 | 연북정 찾아가는 길은 제주시- 동쪽 12번도로- 조천- 조천포구- 연북정으로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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