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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우리 집 작은 연못 속 청둥오리
ⓒ 강재규
며칠 전 포항에 사시는 장인어른께서 저희 집에 다니러 오셨습니다. 장인어른은 지난 2월 17일에도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 참가차 내려오셨습니다. 그때 "키우던 청둥오리가 한 마리 남았는데 오늘 붙들어 오려다 서두르는 바람에 그냥 왔다. 다음에 내려오면 내가 가져올테니 자네 연못에 두면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도시 주택가 연못에 나타난 청둥오리

그런데 이번에 오시면서 그때 외손자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당신께서 기르시던 마지막 청둥오리 한 마리를 정말로 가지고 오셨습니다. 오리를 종이 박스에 넣어 버스에 싣고 오셔서는 집 앞 정원의 작은 연못에 풀어 두셨습니다. 말이 연못이지 좁은 정원을 꾸미기 위한 두 평 남짓한 작은 물 웅덩이에 불과합니다.

장인어른은 지금 포항에 사십시다. 재작년 장모님이 병환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시고 난 이후로는 처남네와 함께 지내십니다. 워낙 열심히 일하시며 사시던 분이라 지금도 가만히 계시지를 못하신가 봅니다.

건물을 짓기 위해 조성된 집 근처 빈 대지에 고추, 참깨, 무, 배추, 상추, 시금치 등을 길러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지나가는 이웃들에게도 나누어 드립니다. 고추와 배추, 무는 도시에 사는 자녀들이 김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수확을 하십니다.

비료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길러 그야말로 순도 100%의 유기농 농산물입니다. 장인어른께서 손수 기른 무와 배추로 담근 무김치와 배추김치의 맛은 대량으로 재배하여 시장에서 구입한 배추와 무로 담근 김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맛이 살아 있습니다. 물론 김장용 고추도 장인어른이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그 속에서 말린 순수한 태양초입니다.

또 언덕 아래 샘이 솟는 빈터에는 연못을 조성하여 미꾸라지를 양식하고 거기에는 닭과 오리, 토끼를 기르십니다. 미꾸라지를 기르는 연못에 오리를 풀어놓는 바람에 정녕 미꾸라지는 구경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이 처가에 가면 장인어른께서 손수 기르신 닭과 오리와 토끼를 잡아 동서들이랑 처남, 처제들과 어울려 잔치를 벌입니다. 직접 기른 동물을 먹는다는 것이 마음 아픈 일이기는 하지만 그 맛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비료와 농약 대신 깻묵 등을 삭힌 유기질 거름으로 기른 채소임에도 얼마나 야무게 영그는지 모릅니다. 경험 많으신 장인어른에게 당신만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모양입니다. 지금의 장인어른이 살아가시는 모습은 어쩌면 10년이나 20년 후의 저의 모습이 될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장인어른의 농사법을 슬쩍슬쩍 전수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농부의 아들이라 기본적인 농사법은 대충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습니다.

저는 요즘 생태주의적인 삶에 관심이 무척 많습니다. 무너지는 농촌의 현실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습니다. 내가 사는 곳은 중소도시라 서울이나 부산과 같은 대도시에 비하면 환경은 다소 나은 편입니다. 하지만 이곳 역시 무서울 정도로 급속하게 도시의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인구 60∼70만의 대도시가 되리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대도시 환경은 대기, 물, 주택, 교통할 것 없이 인간이 살아가기에 바람직한 환경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어떤 예측하지 못한 질병들이 우리를 괴롭힐지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생활하는 이곳에서 시민단체 활동 등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머지않은 시기에 도시와 농촌의 연대를 통한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도시 사람들과 농촌사람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생태주의 삶의 모습에 대해 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습니다.

농촌이 무너지면 낭패입니다. 우리가 먹는 양식은 모두가 1차 산업에서 나온 농수산물입니다. 물론 그것을 몇 차례 가공함으로써 모습이 달라지긴 하였지만 역시 원재료는 농수산물입니다. 이것이 오염되어 먹기 힘들거나 농수산업이 무너져 우리의 먹을 거리를 외국의 농수산물에 의존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면 그 땐 정말 큰 일입니다. 식량과 물이 무기화된다면 석유전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참담한 비극이 이 지구상에서 펼쳐질 것입니다.

▲ 강돌이와 청둥오리
ⓒ 강재규
강아지 대신 청둥오리 한 마리

우리 집에는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품종은 '미니피니'라고 하는데 이름은 아들의 성과 이름을 응용하여 '강돌이'라고 지었습니다. 아들의 이름이 '강한빛'이거든요. 이놈 역시 2, 3년 전에 외손자의 성화에 못이겨 장인어른께서 구해오신 녀석입니다.

강아지를 사달라고 떼를 쓰는 아들녀석에게 (도시생활에서 동물을 키운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라) 나중에 시골에 가서 살게 되면 사줄테니 지금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녀석은 포기하지 않고 외할아버지께 떼를 쓴 모양입니다.

장인어른께서 강돌이를 구해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온 뒤 며칠은 녀석이 강아지에게 먹이도 주고 목욕시키는 일까지 잘 거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강아지에 대한 모든 일은 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은 주택이지만 세 가구가 모여 살고 이웃집들도 옹기종기 붙어 있어 동물을 키우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강돌이는 주인을 제외하고 매일 같이 만나는 이웃들에게도 끊임없이 짖어댔습니다. 정이 들면 나아지려나 했습니다만, 원래 녀석의 습성이 그러한지 나아질 기미가 전혀 없었습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이웃집에서는 강아지 짖는 소리에 아이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등 많은 폐를 끼쳤습니다.

강아지를 외할아버지께 다시 돌려드리자고 아이를 몇 번 설득하였으나 이제는 정이 들어 아이의 마음을 좀처럼 돌려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아들이 학교에 간 사이 장인어른께서 강돌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나섰습니다.

우리도 정이 들어 많이 서운했지만 이 참에 정리를 해야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는 장인어른 뜻에 못이기는 척 동의를 해버렸습니다. 강돌이는 다시 원래 주인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간 셈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녀석은 강돌이를 당장 데리고 오라고 성화를 부립니다. 여느 아이들처럼 첫 마음과는 달리 강돌이가 집에 있을 때에는 무관심하더니만 그간 정이 많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평소 강돌이가 시끄럽게 짖을 때에는 귀찮은 듯 함부로 대하기도 했던 녀석입니다. 형제가 없이 혼자 크는 아들녀석의 마음에 어느덧 강돌이가 식구의 하나로, 아니면 동생으로 자리매김했나 봅니다.

그러나 이미 떠나버린 강돌이가 다시 돌아오기는 힘든 일이지요. 중학생이 된 지금은 조금 큰 탓인지 엄마 아빠의 설득에 수긍을 하는 눈치입니다. 이젠 외가에 갔을 때 강돌이가 자기를 기억하지 못할까봐 걱정을 합니다. 서운하기는 어른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강돌인 주인의 얼굴조차 잊게 되겠지요. 하지만 강돌이가 이후 우리를 만났을 때 아들녀석의 얼굴만이라도 기억해 주고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녀석은 많이 서운해 할 것입니다. 또 아니면 한때 주인이었던 저를 기억 못하는 머리 나쁜 녀석이라고 구박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 강재규
바깥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꼬리를 치며 반기던 강돌이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귀청이 아프도록 짖던 강돌이의 짖는 소리도 이젠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강돌이가 있던 빈자리에 자꾸만 눈이 갑니다. 그것이 정이런가 봅니다. 청둥오리 한 마리가 돌이의 빈자리를 지키고 있어 빈 마음 조금은 채워줘 그나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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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 법학과 교수. 전공은 행정법, 지방자치법, 환경법. 주전공은 환경법. (전)한국지방자치법학회 회장, (전)한국공법학회부회장, (전)한국비교공법학회부회장, (전)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전)김해YMCA이사장, 지방분권경남연대상임대표, 생명나눔재단상임이사, 김해진영시민연대감나무상임대표, 홍조근정훈장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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