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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에 닭장이 무너진 모습
폭설에 닭장이 무너진 모습 ⓒ 오창경
그 무렵, 산에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와는 전혀 차원의 다른 굉음이 들려왔다. 이미 무릎까지 쌓인 눈 때문에 우리 마을은 고립되고 말았고 굉음의 정체를 쉽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굉음보다 큰 여자의 처절한 통곡소리가 마을을 뒤덮었다.

무너진 닭장에서 폐사한 닭들
무너진 닭장에서 폐사한 닭들 ⓒ 오창경
겨우 살아 남은 병아리 한마리
겨우 살아 남은 병아리 한마리 ⓒ 오창경
양계장을 하는 이창원씨의 계사가 눈의 무게를 못 이겨 무너지고 만 것이었다. 부직포로 덮은 양계장의 지붕이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눈을 빨아들이다 못해 내려앉고 말았다. 이창원씨의 부인 한영자 여사가 눈밭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동안 이창원씨는 무너지는 닭장을 넋을 잃고 바라보기만 했다.

하나 둘 모여든 동네 사람들도 할 말을 잃은 채 닭장 한 채를 감쪽 같이 집어삼키는 눈의 위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얗고 깨끗한 눈에 그런 잔인한 속성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바로 눈앞에서 이창원씨네 양계장이 힘없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고서야 알았다.

처참하게 무너진 닭장 안에서 힘없이 앉아 있는 이창원씨
처참하게 무너진 닭장 안에서 힘없이 앉아 있는 이창원씨 ⓒ 오창경
그 후 뉴스는 폭설로 인한 피해 상황이 점령해 버렸고 그 중에서도 내가 사는 충청 지역의 시설 하우스와 축사들의 피해가 가장 심각하게 보도됐다. 헬기에서 내려다본 폭설의 피해 상황은 흡사 폭격을 맞은 듯했고 그 중에서도 시설하우스와 축사를 운영하는 농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노후를 즐겨야 할 나이인 65세 이창원씨는 보상금으로 다시 양계장을 지어야 할지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나가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다가 다시 용기를 내어 양계장을 짓기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작년 한 해는 이창원씨에게 고난의 연속이었다. 양계장을 다시 짓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고 땅을 구입하고 허가를 내서 건축하는 일까지 일사천리로 풀리는 일이 없이 이창원씨의 속을 까맣게 타들어가게 했다. 그 사이 이창원씨는 속만 탄 것이 아니라 손가락에 지문이 없어졌고 허리 디스크와 어깨 통증을 친구 삼아야 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이창원씨는 작년 12월이 돼서야 새 양계장을 완공할 수 있었고 올해 1월 31일에는 병아리들을 입주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닭장이 무너진 지 꼭 1년이 되는 날인 지난 3월 5일에는 새 닭장에서 키운 닭들을 무사히 첫 출하 시킬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닭고기 가격이 비싸서 지난 1년 동안 마음 고생, 몸 고생하며 조바심쳤던 가슴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 폭설에 양계장이 무너지고 꼬박 1년만에 이창원씨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온 것이었다.

폭설 1년 만에 새로 지은 이창원씨네 양계장
폭설 1년 만에 새로 지은 이창원씨네 양계장 ⓒ 오창경
작년에 이어 올해도 꽃 소식이 찾아 올 초봄에 거대한 눈꽃으로 찾아 온 폭설이 올해도 영동 지방과 부산 지역을 강타했다는 보도가 뉴스를 장식하는 것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은 마음에 작년 우리 동네를 기습했던 폭설 1주년을 되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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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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