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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산에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와는 전혀 차원의 다른 굉음이 들려왔다. 이미 무릎까지 쌓인 눈 때문에 우리 마을은 고립되고 말았고 굉음의 정체를 쉽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굉음보다 큰 여자의 처절한 통곡소리가 마을을 뒤덮었다.
양계장을 하는 이창원씨의 계사가 눈의 무게를 못 이겨 무너지고 만 것이었다. 부직포로 덮은 양계장의 지붕이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눈을 빨아들이다 못해 내려앉고 말았다. 이창원씨의 부인 한영자 여사가 눈밭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동안 이창원씨는 무너지는 닭장을 넋을 잃고 바라보기만 했다.
하나 둘 모여든 동네 사람들도 할 말을 잃은 채 닭장 한 채를 감쪽 같이 집어삼키는 눈의 위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얗고 깨끗한 눈에 그런 잔인한 속성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바로 눈앞에서 이창원씨네 양계장이 힘없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 후 뉴스는 폭설로 인한 피해 상황이 점령해 버렸고 그 중에서도 내가 사는 충청 지역의 시설 하우스와 축사들의 피해가 가장 심각하게 보도됐다. 헬기에서 내려다본 폭설의 피해 상황은 흡사 폭격을 맞은 듯했고 그 중에서도 시설하우스와 축사를 운영하는 농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노후를 즐겨야 할 나이인 65세 이창원씨는 보상금으로 다시 양계장을 지어야 할지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나가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다가 다시 용기를 내어 양계장을 짓기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작년 한 해는 이창원씨에게 고난의 연속이었다. 양계장을 다시 짓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고 땅을 구입하고 허가를 내서 건축하는 일까지 일사천리로 풀리는 일이 없이 이창원씨의 속을 까맣게 타들어가게 했다. 그 사이 이창원씨는 속만 탄 것이 아니라 손가락에 지문이 없어졌고 허리 디스크와 어깨 통증을 친구 삼아야 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이창원씨는 작년 12월이 돼서야 새 양계장을 완공할 수 있었고 올해 1월 31일에는 병아리들을 입주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닭장이 무너진 지 꼭 1년이 되는 날인 지난 3월 5일에는 새 닭장에서 키운 닭들을 무사히 첫 출하 시킬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닭고기 가격이 비싸서 지난 1년 동안 마음 고생, 몸 고생하며 조바심쳤던 가슴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 폭설에 양계장이 무너지고 꼬박 1년만에 이창원씨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온 것이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꽃 소식이 찾아 올 초봄에 거대한 눈꽃으로 찾아 온 폭설이 올해도 영동 지방과 부산 지역을 강타했다는 보도가 뉴스를 장식하는 것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은 마음에 작년 우리 동네를 기습했던 폭설 1주년을 되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