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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둘째의 돼지(?)를 잡았다. 동전 못지않게 ‘배추잎’이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형광색의 돼지 저금통을 뜯으니 대략 45만원쯤이 나왔다. 연초에는 큰애의 돼지를 잡았었는데 그때는 조금 더 많은 60만원쯤이 나왔다.
진짜 돼지도 내 집 돼지만큼 비싸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하니 저 별 볼일 없는 플라스틱 돼지가 여간 기특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결혼 전 삼십 평생 동안 나는 돼지 한 마리 제대로 키워 본 적이 없었다. 늘 돼지를 집으로 들이기는 했으나, 별로 먹이도 주지 않았을 뿐더러 실해지기도 전에 잡아먹었다.
그렇듯 진득하니 모으는 일 따위에는 애초에 재주가 없었던 내가 결혼 후 7년 동안 해마다 ‘살찐’ 돼지를 잡게 될 줄이야!(정확히 표현 하자면 남편의 돼지 잡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결혼 후, 얼마 안 되어서 남편은 동전을 처리한다면서 저금통을 하나 사오는 것이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쩔렁거리니 성가신 게로군’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천 원짜리도 넣고 가끔씩은 오천 원, 만 원짜리도 넣는 것이 아닌가.
“동전이 걸리적거려서 넣는다며?”
“동전도 동전이지만 가끔씩은 이렇게 밥을 많이 주어야 이 친구도 먹어도 먹은 것 같겠제.”
가끔씩 굶는 날도 있었지만 돼지는 무럭무럭 자랐다. 한 반쯤 찼을 때 나는 그만 잡아서 기념으로 통닭이나 한 마리 시켜 먹자고 했다.
“무슨 소리 하노? 아직 다 차려면 한참이나 멀었다.”
“그만만 해도 배부르다. 고마 잡아 묵자.”
“시끄럽다. 행여 나 없는 새 일 낼 생각 하지 마라, 경고한다.”
그래서 더 두고 보기로 하였다. 그 동안에도 나는 여전히 돼지에게 밥을 주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아 지갑에 동전을 잔뜩 가지고 있으면서도 별로 밥을 주지 않았다. 항상 남편이 구시렁거리면서 내 지갑의 동전을 싹쓸어 가 밥을 주곤 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돼지를 잡던 날, 무관심하던 그 동안과는 달리 나는 무척 흥분되었다. 그리고 그 돼지가 내 돼지도 아닌데 내가 키운 것 마냥 보람이란 게 느껴졌다. 가위로 갈라서 와르르 알곡들을 쏟아내니 푸짐하고도 푸짐하였다.
정확한 기억은 없으나 그 첫 번째 돼지는 약 30만 원 정도였던 것 같다. 물론 기간은 1년 정도 걸렸다. 생전 처음 살찐 돼지를 잡는 기분을 맛본 나는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옛말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백 원 이백 원 넣을 때는 우습게 생각했는데 그게 모이니 무시하지 못할 액수였다.
그렇게 시작하여 우리는 해마다 돼지를 잡게 되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첫째의 몫이라 생각하고 부지런히 먹이를 주었다. 명절 같은 때 시댁이나 친정에서 아이에게 주는 용돈은 무조건 돼지에게 주었다. 아이도 습관이 되어 할머니가 용돈을 주면 집에 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돼지에게 밥을 주는 것이었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는 내 집 돼지도 두 마리로 늘었다. 큰애, 작은애에게 각각 하나씩 분양해 준 것이었다. 물론 잡은 돈은 십 원 하나 착복하지 않고 내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아이들의 몫인 통장에 고스란히 들어갔다.
그런데 처음 돼지를 들일때, 플라스틱 돼지는 하나의 빈 통에 지나지 않으나 생각보다 값이 비쌌다. 사진에 보이는 형광색의 경우 대략 하나에 2천원이었다. 두 마리를 분양하다 보니 4천원. 매년 멀쩡한 그것의 배를 가르고 버릴 때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속의 알곡들을 생각하면 그것은 껌 값에 지나지 않기에 또, 배를 가르고 잡는 맛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아깝지만 할 수 없다 생각하였는데 남편은 아닌가 보았다.
“매년 느끼는 거지만, 배를 가르고 버리기엔 너무 아까워. 그렇다고 테이프를 붙여 다시 사용하는 것은? 급할 때마다 꺼내 쓰곤 하면 곤란해.”
“뭐, 그거야 나도 장담을 못(?)하지. 아이고, 50만원 60만원씩 벌어주는데 그냥 한 번 쓰고 버리자.”
“아니야, 그래도 너무 아깝단 말야.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렇다고 TV의 어떤 아저씨처럼 가스통에 넣을 수는 없고… 맞다!”
박수를 쩍 울리며 찾아낸 남편의 새로운 돼지는 생수통이었다.
“직원 중에 생수통에 저금한다는 사람이 있었거든. 그거 괜찮다 카더라. 내가 그 생각을 왜 이제껏 못했지.”
그렇게 해서 올해는, ‘생수통 돼지’가 우리 집에 왔다. 워낙 녀석의 덩치가 커서 한 번 잡으려면 몇 년을 기다려야 될 것 같으나 더 이상 멀쩡한 돼지를 버리지 않아도 되어서 나름대로 매력 있다. 로또복권은 꿈 깨고 나면 허망하지만 ‘플라스틱 돼지’는 배신을 때리는 법이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