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끝냈어?"
"음, 말끔히."
"뭘로?"
"물의 검, 불의검으로... 너무 쉽게 끝장나서 심심하던데."

출근하느라 버스를 탔다가 바로 뒤에서 남학생들의 이런 대화 내용이 들려왔을 때 처음은 도대체 이게 뭔 내용인인가 싶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나 찬찬히 다시 들어 보니 이 학생들은 한 롤플레잉 게임에 대한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이후로도 이 학생들은 거의 30여분동안 게임에 관한 얘기만을 나누다가 버스에서 내렸다.

게임키드, 디지털 시대의 청소년

위 사례에서 보듯 현재 한국 10대, 20대는 게임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30여분 동안 대화가 모두 게임에 대한 내용이다 보니 게임에 대해 모르면 대화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또래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도 게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런데 분명 게임에 관한 대화였지만 주의해서 듣지 않으면 무슨 조폭들이 싸움하는 장면이 연상될 정도로 쓰는 단어들이 자극적이다. '베어 버린다' '제거한다' '끝장낸다'는 식의 단어가 몇 번이나 들어가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하도 자주 들리다 보니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꼈던 나도 나중에는 익숙해져 어느새 별 느낌 없이 무덤덤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폭력적인 장면의 전자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은 공격적인 행동 및 비행행동과 정적 상관이 있으며, 실험실에서의 시각적으로 폭력적인 전자게임 노출이 공격적인 사고와 행동을 모두 증가시킨다"는 실험 결과(Anderson & Dill, 2000)가 생각나는 것 아닌가?

학원 폭력과 컴퓨터 게임의 상관관계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난 후 폭력 서클 '일진회'에 관한 뉴스 보도를 접했다. 그리고 지난번 '게임키드'들의 대화와 전자게임 이용자에 대한 폭력성 여부에 대한 연구 결과가 다시 생각났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자기편을 모아 커뮤니티를 조직하고 확장하는 방법도 그렇거니와 1:1 대결로 일명 짱을 뽑는 방법 등은 마치 게임 속에서 한쪽이 쓰러질 때까지는 다음 단계로 올라가지 못하는 형식과 매우 유사해 보인다.

혹 최근 청소년 폭력범죄가 대담해지고 흉포화하고 있는 요인에는 폭력을 화면 속 게임의 시뮬레이션처럼 자연스럽게 일상화 시키려는 심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마치 조폭 대화를 연상시켰던 평범한 게임키드들의 일상 대화처럼 말이다.

폭력의 일상화에 관해서는 이미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사람을 향해 총을 발사한 병사의 비율은 20%에 불과하였으나, 베트남 전쟁에서는 그 비율이 95%로 증가한 이유에 대해서 미군이 게임과 같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람을 총으로 죽이는 일을 좀더 '일상적'이며 '정상적'인 행위로 변질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미국 심리학자 그로스맨의 연구 결과에도 나타나 있다.

사실 컴퓨터 그래픽과 해상도의 발달은 보다 사실적이고 감각적인 사실적인 3D 그래픽 게임을 만들었다. 그 게임을 통해 목표에 도달하거나 승리하기 위해서는 게임 속 칼이나 또다른 무기들을 통해 많은 사람을 살해해야 한다는 게임 속 룰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금기사항으로 여기는 살인이나 폭력에 대한 일종의 면죄부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게임 속에서만큼은 폭력에 대한 심리적·도덕적 억압에서 해방되는 듯한 쾌감을 어느 정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게임에 지나치게 빠져 들어 일상화되다 보면 폭력적인 행위에 대해 어느 정도 무뎌지기 마련이다.

물론 몇몇의 연구 사례 만으로 늘어나는 청소년들의 폭력범죄의 직접적 원인이 전적으로 폭력적이고 잔인한 전자게임이나 온라인게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인 21세기에 우리 앞에 나타난 학원폭력의 실상은 늘상 음지에서 회자되던 공포스런 무용담 수준이었던 우리 시대의 학원 폭력에 비해 보다 조직적이고 구체적이며 끈질기기까지 하다. 혹 그것은 이들이 게임하듯 가볍게 폭력을 저지르기 때문은 아닐까?

게임키드의 역기능과 순기능

2005년 3월 일진회와 게임키드. 이 두 단어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둘은 아마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 있는 역기능과 순기능이 아닐까? 디지털시대의 기성세대와는 다른 사고와 패러다임으로 독창적인 문화와 정체성을 생산하고 있는 많은 게임키드들이 디지털시대의 순기능이라고 본다면 일진회와 같은 학원폭력은 게임키드로서 나타날 수 있는 역기능이라고 말이다.

디지털 시대의 바람직한 교육이라면 맹목적인 응징이나 금지보다는 순기능은 최대한 살리고 역기능은 최대한 감소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교육이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역기능과 순기능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연구와 함께 서로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함께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 분투기 49번째 이야기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