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무지하면서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상황에 대해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판단할 사고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이 의욕을 가지고 일에 덤빌 때 굉장히 비극적인 결말이 일어날 수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물론 그 결말이 일어나기까지 이 ‘무지하고 열정적인 사람’을 말릴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일본이 이렇지 않을까. 페리 제독의 ‘흑선’이 일본에 출몰한 이래 일본은 서양을 이겨보겠다는 열등감에서 출발, 서양에 대한 열렬한 모방과 증오감을 동시에 가지며 자국을 서구 국가들만큼 강하게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러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은 빠른 근대화의 성공을 전 세계에 화려하게 과시했고, 이 러일전쟁의 승리는 결국 일본을 자신의 능력에 대한 맹신과 극단적인 군국주의로 몰아가 자폭하게 한다.
서구에 대한 열등감은 조국에 대한 맹목적인 국수주의로 빠르게 변모해갔고 이 국수주의의 물결은 모든 것을 압도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무정부주의자, 좌익 세력들까지 국수주의의 물결에는 기꺼이 몸을 실었고 일본은 빠른 속도로 극단을 향해 치닫게 된다. 한번 가속도가 붙은 기차는 멈추기가 힘들어져서, 진주만을 기습할 당시에는 누구의 힘으로도-만일 천황이 원했을지라도-그 바퀴를 멈출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일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국가를 통제할 수 없는 광적인 상태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광기가 전 아시아를, 세계를 피로 물들였다.
패망 이후의 일본은 그야말로 어쩔 줄 몰랐다. 자신들의 전쟁 행위가 천황과 조국을 위한 신성한 일인 것으로만 알고 있던 일본인들에게 황당무계한 백지 상태가 찾아온 것이다. 신으로 섬겼던 천황은 갑자기 인간으로 밝혀졌고, 신이었던 천황이 악마로 비유되었던 서구인 맥아더에게 무조건 항복을 하며 비굴한 자세로 선상을 찾아갔다. 이제 어쩌면 좋단 말인가. 맥아더는 일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51년 맥아더는 일본은 현대 문명의 관점에서 12살짜리 소년과 같다고 비평하였다. 이는 그의 사고방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미상원의회의 합동위원회에서 이루어진 이 연설 내용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맥아더는 일본과 독일을 비교하고 있었다. 그의 연설에 따르면, 독일인은 ‘성숙한 인종’임에 반해 일본인들은 아직 ‘학습 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과학, 문화, 종교는 다른 서구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고도로 발달되었으며, 루터와 베토벤, 괴테를 배출한 독일의 문화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도 나치즘의 독소를 독일 사회에서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치 정권은 단지 독일 문화의 왜곡, 남용이었을 뿐이며, 나치 지도자들은 세계 지배의 야욕 때문에 잔학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일인들은 다른 문명의 방식을 학습 받을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맥아더가 독일 문화를 칭송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보기에, 독일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도 그렇게 했기 때문에 더 나빴다는 것이었다.…
망연자실 어쩔 줄 모르고 있었던 일본의 이후 역사는 전적으로 미국, 특히 총사령관인 맥아더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맥아더는 아이와 같이 무지하고 과격한 일본인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천황’이라는 존재가 존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고, 그로 인해 천황은 살아남았다.
히틀러나 괴링이 역사에 두고두고 극악무도한 살인마로 회자되고 있을 때 일본의 전시 천황 히로히토는 깔끔히 차려입고 각국의 영수들과 만나고, 악수하고, 세계 정책에 대해 논의하면서 기나긴 재위기간을 유감없이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도 히로히토를 히틀러와 동급의 전범으로 떠올리는 이는 거의 없지 않을까.
역사에 관심 있는 이라면 한번쯤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아이러니의 극치인 일본의 근대사. 이안 부루마는 그런 일본의 근대사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와 처음 만난 건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독·소전의 명저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을 읽다가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 책을 따라 갔더니 이안 부루마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 책은 일단, 어려웠다. 번역이 잘못된 것 같지는 않았는데 내용이 굉장히 지적이고 난해했다. 내용이 배경지식이 상당히 있어야 이해할 수 있었고 게다가 그는 언어를 최대한 지적으로 꼬아서 어렵게 사용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인 듯했다. 나는 30쪽 정도를 읽다가 포기할까 말까 망설였다. 너무 어려워서 읽고 있는 내용의 오십 퍼센트도 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전쟁에 관심을 두었다면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일본과 독일의 역사이다. 나는 일본과 독일인의 전쟁을 비교해놓은 그 책을 차마 내려놓지 못하고 꾸역꾸역 읽어나갔다. 80쪽 정도가 넘어가기 시작하자 비로소 책은 내게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렵게, 어렵게 해독해낸 그의 문장은 내게 고난도의 작업을 해낸 후에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쾌감을 주었다. 그가 주는 고도의 지적 쾌감에 힘입어 내 독서 속도는 조금씩 빨라져갔고 결국 나는 그 책을 소화해냈다. 사람을 만나서 소통하고 친밀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듯, 한 작가의 문체에 익숙해지는 데에도 시간과 노력이 걸린다는 걸 깨닫게 해준 값진 경험이었다.
이 책, <근대 일본>은 기본적으로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의 연장선상에 있다. 후자의 책이 2차 세계대전에서 주축국이었던 양대 국가의 양상을 비교 분석하는데 중점을 둔데 반해 이 책은 1853년 미국의 페리호가 출몰한 이래부터 1964년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리기까지 일본의 파란만장한 역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두 책을 읽고 나면 작가가 일본이라는 나라의 해괴한 역사에 대해 엄청난 흥미를 가지고 많은 노력을 들여서 서술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작가에게 신뢰가 가는 이유는 곳곳에서 그가 ‘발품을 판’ 흔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명쾌하고 때로는 냉소적으로 꼬아놓은 그의 문장들의 출발점은 모두 객관적인 자료들이다. 그는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를 이용해서 일본인의 역사와 사고를 추적해간다. 역도산의 일화로 시작하는 서문에서부터 사카모토 료마, 가쓰 가이슈, 도고 헤이하치로, 나쓰메 소세키 등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인물들의 일화를 읽다보면 도대체 이 작가의 시선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에 미쳐 있는지 그 광대함에 질투심까지 느끼게 된다.
일본에 대한 비정상적인 전후처리는 이후 아시아의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일급전범인 천황이 건재 하는 일본은 이후 진정한 의미에서는 결코 전쟁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았으며, 영원히 일어서지 못할 것 같았던 초토화된 그들의 국토는 한국전쟁이라는 천운을 만나 급속도로 살찌워지고 기름져 갔다.
지도층에 의해 맹목적으로 조정당해 ‘가미카제’를 외치며 목숨을 던졌던 일본 국민들은 여전히 같은 성향의 지도층에 의해 같은 교육, 왜곡된 교육을 받고 있다. 시간이 흘렀을 뿐 동일한 인물들에 의한 동일한 기운이 일본열도를 통과해 현재로까지 온 것이다.
1948년 크리스마스 이브, 카키색 낡은 유니폼 차림에 모자를 눌러 쓴 깡마른 중년의 남자가 스가모 교도소를 나왔다. 미국식 지프차에 올라타며 그는 얇은 입술에 치아를 살짝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 용의자로서 스가모에서 3년을 복역하고 막 출옥하는 길이었다. 그는 진주만 공격 당시 도조 장군 밑에서 상공대신을 지냈다. 그 이전 만주국에서는 산업분야의 황제였다. 사실상 그는 일본의 알베르트 슈케어(독일 나치당의 고위 간부)나 다름없었다.
이 기시라는 인물은 그로부터 10년이 채 되지 않아 일본의 총리가 되고, 기시와 함께 일본을 ‘일으켜 세웠던’ 정치 경제계의 고위급 관료들은 대부분 기시와 함께 교도소에서 복역했던 전범 출신들이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떤가. 일본의 현 총리인 고이즈미는 당당하게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자신의 소신이라고 밝혔고, 주목받는 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는 “일본은 정당한 전쟁을 한 것이었으며 이제는 전후의 일본이 워싱턴과 탯줄을 끊고 아시아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고 믿는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정서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것이다. 일본 국민들은 여전히 아이와 같은 상태로 정권이 조장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군국주의가 조금씩, 조금씩 부활하고 있다. 물론 양심 있는 일본의 일부 시민단체들은 끊임없이 반성하고 역사를 바로 알자는 움직임을 내비치고 있지만 일본을 압도하는 건 여전히 맹목적인 국수주의이다.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서로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안 부루마는 제 3자만이 가질 수 있는 객관성과 냉정, 그리고 열정적인 관심을 가미해서 일본의 근대사를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다.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에 비해 그리 어렵지 않은 문체에 풍부한 역사적 에피소드들이 풍요롭게 수록되어 있다.
일본의 근대를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지금 일본의 모습이 어떨지, 그리고 앞으로 그들의 모습은 어떻게 전개될지를 유추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