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의 이공명 작가는 학교의 이러한 행태를 일진회 단속이 아니라 입단속이라고 지적하고 있고, <국민일보>의 서민호 작가는 학생들의 입단속이 일진회 긴급대책회의라고 한층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고 있다.
학교가 폭력의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는 군대에서 그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군대에서 지휘관이 승진하려면 부대내에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간혹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부대 내에서 조용히 처리하는 게 일반적인 관례이다. 괜히 상부로 보고되어 경력에 먹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곪아서 사병들의 자살사건이 터지는 것이다.
사병들의 자살사건이 터지자 군대에서 구타와 얼차려를 금지했기 때문에 군기강이 해이해진 탓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학교폭력사태도 체벌금지 등 각종 규제로 인해 학생들의 기강이 해이해져서 생긴 일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조선일보>의 신경무 작가가 유일하게 이러한 시각으로 만평으로 그렸다. 좀 생뚱맞기도 하고 마치 ‘한국인은 맞아야 한다’는 식민지사관을 연상시켜 씁쓸하기까지 하다.
학교에서 발생한 문제를 군대에 빗대어보니 너무도 잘 이해가 된다. 아마도 우리사회에 군사문화의 잔재가 꽤 깊숙이 박혀있나 보다. 군사문화는 일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광복군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은 미군정은 일제시대의 경찰력과 군인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우리사회의 군사문화는 일본이 남기고간 식민잔재에 다름아니다. 이처럼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시도 때도 없이 곳곳에서 문제를 야기시키곤 한다. 한승조씨와 지만원씨의 발언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한겨레> 신문의 장봉군 작가는 한승조씨나 지만원씨 같은 친일인사들을 일진회 멤버들이 형님으로 떠받드는 모습으로 묘사하여 식민사관에 절어있는 사람들의 엽기적인 행각을 풍자하고 있다.
일진회의 문제는 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닌가보다. 국제사회를 보더라도 힘 센 놈이 약한 놈을 괴롭히기는 만찬가지이다. 특히 일본은 지금 우경화현상이 심해지면서 역사왜곡은 물론 독도까지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2차대전의 전범들이 처형당하지 않고 그대로 권력을 이어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해 <부산일보>의 손문상 작가는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제정을 사건을 통해 일본의 군국주의망령과 극우파를 일진회로 표현하는 센스를 발휘하고 있다.
흔히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거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문제는 곧 우리 사회의 문제라는 말이 된다. 즉, 청소년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문제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라는 것이다.
가장 많은 시사만화가들이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우선 <전남일보>의 정설 작가는 일진회의 행태를 사회생활에 앞선 선행학습으로 표현하여, 우리 사회의 배금주의 현상과 입시위주의 교육풍토 비판하고 있으며, 김경수 작가는 <매일신문>과 <내일신문>을 통해 부정행위와 인맥, 학연, 부동산 투기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바로 일진회의 모습으로 투영된 것이라고 보여주고 있다.
<경향신문>의 박순찬 작가도 청소년들이 하는 행동은 바로 어른들이 한 행동이며, 외국인의 눈을 통해 아이들의 행동에 충격받는 것 이상으로 우리사회가 충격 그 자체임을 표현하고 있다.
일진회 문제는 분명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나 10년 전처럼 청소년들이 만화책을 보고 따라한 것이라는 둥의 유치한 시각으로 애꿎은 만화를 희생양으로 삼거나, 단속을 강화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언뜻 상관없어 보일지는 모르지만 어른이 청소년들이 본받을 만한 어른의 모습으로 바로 설 때 비로소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거울이 깨끗하다고 해서 얼굴이 깨끗한 것은 아니다. 얼굴에 뭐가 묻었는데 거울만 닦는다고 얼굴이 깨끗해 질 수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www.bokmani.com에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