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지사에게 충성을 맹세한 일명 '오라회(吾羅會) 단합대회 시나리오' 문건이 공개된 이후 선거관리위원회가 모임 관련자를 대상으로 재조사에 들어가는 등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문건작성 당사자로 지목된 제주도체육회 사무처장이 '사퇴'를 표명하고 제주도지사가 "전혀 몰랐다"는 적극적인 해명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의구심을 증폭, 미궁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양상이다.
더욱이 사조직 결성 의혹을 뒷받침하는 추가 문건이 공개되면서 선관위 조사가 급물살을 타는 등 '문건' 후유증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줄줄이 기자회견…"몰랐다", "진실과 거리가 있다", "보지도 못했다"
사조직 의혹 파문이 번지자 이날 관련자들이 기자회견과 입장발표 등을 통해 줄줄이 진화에 나섰다.
15일 오전 11시 반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김태환 제주지사는 "오라회가 순수한 체육인 모임인 줄 알고 (창립대회에) 참석했다"며 "언론을 보고서야 (선거 사조직인지) 처음 알았으며 사전에 내용을 전혀 몰랐다"고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김 지사는 "오라회 모임에 두 차례 참석했지만 모두 우연히 들른 것"이라며 "선관위와 경찰이 수사를 요청해올 경우 적극 협조하겠다"는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김 지사의 해명에 이어 오후 4시께 '선거 사조직 결성' 의혹을 산 신석종 제주도체육회 사무처장(46)은 2005년도 제1차 제주도체육회 이사회가 열린 체육회관 회의실에서 신상발언을 통해 사무처장직과 이사직을 동시에 사퇴했다.
그는 "이번 사태의 중심에 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번 일과 관련해 체육회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언론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르지만 체육인으로서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진실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며 "선관위와 경찰 조사에서 충분이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다소 억울한 심정을 호소했다.
그러나 신 처장은 3분 가량의 신상발언을 마치기가 무섭게 취재기자들을 따돌리며 회의장을 떠나 오히려 의혹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인터뷰를 기다린 10여명의 취재진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날 체육회 회장인 김 지사는 이사회 시작 전 이사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잠시 신 처장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아무런 이야기가 오고 가지 않았다. 김 지사는 간단한 인사말을 마치고는 바로 자리를 떴다.
해명 불구 '불씨' 여전... 지난달 도지사 '표창 남발' 선관위 경고 조치도
신 처장은 ▲ 도지사의 '해명'에 대한 입장 ▲ 언론보도가 사실과 다른 이유 ▲ 문건 작성 배경과 이유 ▲ 시나리오 문건 작성 경위 등 갖가지 의문점을 남긴 채 '자신의 책임'만을 주장하며 의혹의 한 가운데서 교묘히 비켜갔다. 이후 신 처장과 일체의 연락이 두절됐다.
아울러 김 지사의 해명 또한 석연치 않은 대목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우선 핵심으로 지목된 신 처장의 경우 제주지역에서 지방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았던 '선거운동원'으로 알려져 있어 3번의 지방선거를 치른 김 지사가 '정말 몰랐을까'라는 점 때문이다.
심지어 김 지사는 '표창 남발'과 관련, 지난 2월 선관위로부터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행위로 경고조치를 받은 바 있을 정도로 내년 지방선거(5월 31일)에 마음을 두고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김 지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신 처장이 선거운동을 했던 사실도 모르고, 사전에 개인적으로 만난 일도 없다"고 일축하고, "신 처장이 언론에 (이에 대해) 얘기를 할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정작 신 처장은 언론을 피했다.
이어 30분 후 기자회견을 자청하며 체육회 기자실에 나타난 '오라회' 회장 양홍철씨(49)는 "언론에 보도된 문건은 본 적이 없고 특정인이 혼자 작성하고 표현했던 내용"이라는 요지의 발언으로 모든 책임을 신 처장에게 돌렸다.
양 회장은 "신 처장의 사퇴는 개인적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제 자신도 오라회 회장직을 연연해 하지 않고 포기하기로 마음을 비웠다"고 향후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양 회장 역시 "시나리오 문건에 대해서는 보지도 못했던 일"이라며 "행사 당시 사회자도 정치적 발언은 한 것 같지는 않다"고 총무 양아무개씨의 발언과 비슷한 어조로 일관했다.
'서로 꿰맞추고 있는 것 같다"... 선관위 "재조사 필요" 선회
이와 관련, 현재 조사를 진행 중인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졌다.
선관위는 이날 추가로 '시나리오' 문건이 공개되자 이를 시급히 확보, 관련자에 대한 재조사에 들어가는 등 '선거 사조직 파문' 규명 수위를 높이고 있다.
현재까지 선관위는 신석종 처장, 회장 양홍철씨, 총무 양아무개씨를 포함해 '오라회' 창립대회와 3차례에 걸친 모임에 참석한 회원 등을 불러 출석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선관위는 "어제까지 1차 공개문건(오라회 조직 및 활동 문건)만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는데 2차 시나리오 문건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재조사가 불가피해졌다"며 "2차 시나리오 문건은 1차 문건과 달리 파장과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도지사에 대해 직접 조사는 없었다"는 선관위는 "오전에 도지사의 해명이 있었지만 2차 문건으로 볼 때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 있다"며 "이는 도지사가 사전에 (창립) 행사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선관위 한 관계자는 "상당 부분 조사 대상자들이 이야기를 꿰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다시 처음부터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87조 8항 2호에는 '누구든지 선거에 있어서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한다)의 선거운동을 위하여 연구소·동우회·향우회·산악회·조기축구회, 정당의 외곽단체 등 그 명칭이나 표방하는 목적 여하를 불문하고 사조직 기타 단체를 설립하거나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연 '충성 맹세' 진행했나?... 도지사 '사전 인지' 의혹 열쇠
파문 관련자들이 해명성 발언과 책임성 사퇴가 잇따르고 있지만 여전히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다.
일부 언론이 '체육인들의 모임이 현직 지사에 대한 충성의 자리로 변질되면서 지방선거를 겨냥한 선거 사조직이라는 의혹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는 보도 또한 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 오라회 모임 결성 배경이 무엇인지, '충성 서약'이 담긴 시나리오대로 행사가 진행됐는지, 그리고 도지사는 어떤 자격으로 참여했는지 대한 의혹은 여전한 상태다.
신 처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홀연히 사퇴서를 내고 침묵하는 것 또한 의문으로 남는다.
체육계 한 인사는 "솔직히 행사 시나리오로 볼 때 도지사 참석을 감안해 만든 것 아니냐"며 "사전에 도지사가 인지하고 있었는지가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선거를 겨냥한 '사조직 결성' 의혹은 선관위의 사실 조사에 이어 사법당국의 수사가 기다리고 있어 조만간 진위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 | 3분만에 황급히 자리 뜬 신 처장... 왜 그랬나? | | | 前 지사 당시 '민우회'->'오라회'?...15년 몸담았던 체육회 떠나, 이사회는 '보류' | | | |
| | ▲ 담담히 사퇴의사를 밝히는 신석종 사무처장 | ⓒ양김진웅 | | 1990년 1월 제주도체육회에 들어온 신석종 사무처장(이사 겸)은 2002년 8월부터 사무처장직을 이어 만 15년을 한 곳에 몸담아 왔던 체육인.
15일 새 집행부 출범과 함께 열린 제1차 이사회때 제19기 사무처장 임명을 앞두고 있었지만 뜻하지 않은 '사조직 결성 문건'으로 돌연 사퇴에 이르렀다.
신 처장은 이날 사무처장 임명동의안이 상정되자 "언론 보도 때문에 체육회와 이사회, 체육인, 도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며 "선관위와 경찰이 현재 조사 중이지만 체육인으로서 도덕적 책임을 지고 사무처장 내정 건을 스스로 사양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제 자신이 떳떳하다고 느껴질 때 제주 체육을 위해 다시 한 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영광으로 생각하겠다"고 말하며 여지를 남겨뒀다.
이러한 의중 때문인지 도체육회 이사회는 이날 신 처장의 사퇴 의사와 상관없이 경찰과 선관위의 조사 결과 이후로 임명건을 유보, 다시 임명 동의안을 재상정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날 윤아무개 이사가 '이사회의 동의를 얻어 회장(김태환 지사)이 임명한다'는 자체 규약(제58조 3항)에 따라 회장에 일임하자는 발언을 제기했으나 다시 이사회를 열어 결정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하지만 문건 파문에 대한 책임을 느껴 사퇴한 인사를 이사회가 재결정한 데 대해서는 '제 식구 감싸기'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체육계의 한 인사는 "신 처장의 경우 민선 이후 지방 선거 때마다 당(黨)과 관계 없이 무려 3~4차례나 옮겨 다닌 사람"이라며 "이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오라회' 파문 역시 '선거 브로커'에 의존하는 기존 선거관행의 연장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체육 관계자는 "신 처장은 지난해 선거법 위반으로 지사직을 박탈당한 우근민 전 지사 시절에 선거운동을 했던 이른바 '민우회(우근민을 좋아하는 모임)'의 일원이었다"며 "이번 '오라회' 구성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관계자는 "신 처장은 95년 당시부터 신구범->우근민 전지사에 이어 지난해 6월 도지사 재선거때 열린우리당 진철훈(현 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 후보를 도왔던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이번 '오라회' 문건 파문 역시 현직 지사에 대해 과잉충성을 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상발언 후 3분만에 회의장을 떠난 신 처장의 거취. 이와 함께 차후 1년 남짓으로 다가 온 선거정국과 맞물려 이번 파문의 결과가 그 동안 관행 선거의 분위기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주목된다. / 양김진웅 | | | | |
| | '제주도지사... 결국 눈도장 찍다 '불똥'? | | | '경조사·행사 지사' 눈총 속...결국 '의혹' 휘말려 | | | |
| | | ▲ 기자 질문에 답하는 김태환 도지사 | ⓒ양김진웅 | 어쨌든 김태환 제주도지사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선거 사조직' 결성 의혹에 휩쓸리게 됐다. 이는 '행사 지사'라는 눈총을 받았던 그의 불가피한 결과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김 지사는 제주시장 재직시절 부터 '안가는 곳이 없다'는 평과 함께 유독 '경조사 지사'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한 때 자녀의 결혼식 하례객과 축의금 문제가 공직자 '처신'과 맞물리면서 도마 위에 오른 적도 있었다.
결국 그가 스스로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오해의 소지가 있는 민간 행사는 가급적 참석을 자제하겠다"는 입장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어떤 행사가 있으면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급적 참석 요청을 할 때마다 자리해 도민과 대화를 나눴으나 이번을 계기로 민간 행사는 줄여나가겠다"고 한 것이다.
민선 시대에 있어 제주지역의 특성상 '행사 돌아보기' 및 '경조사 참석'의 필요성에 대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없지 않다.
그 만큼 '민심'이 '표심'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현실 또한 간과하기 어렵다.
제주시장 시절부터 8년째 수행한 비서 홍아무개씨는 "현장 속에서 관계자들과 도민들을 만나며 의견을 듣고 여론을 수렴하는 등의 순기능이 적지 않다"며 "너무 부정적으로 보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당수 도민들은 김 지사의 행보에 대해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두루 일(?)을 잘 챙긴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번 파문 역시 "그러한 행적의 결과"이자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김 지사가 두 차례의 '오라회' 모임에 참석한 것에 대해서도 "모두 우연히 만났다"고 응답, 이전부터 논란의 싹을 키워왔다.
이번 사태를 지켜봤다는 강아무개씨(제주시)는 "사실 도지사는 TV나 신문에서 늘 보이지 않느냐"며 "사실이 어찌됐든 이번 파문을 계기로 각종 행사 및 경조사를 일일이 돌아보는 시간을 줄여 도정에 전념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 다음은 '의혹 해명' 기자회견 일문일답
- '선거 사조직 결성'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전혀 모르는 일이다. 솔직히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 뜻하지 않게 저와 무관한 일로 인해 도민들에게 누가 된 점을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 같은 행사에 3번 참석했다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다.
"세 번이 아니라 두 번 참석했다. 순수한 엘리트 체육인 육성을 위한 모임으로 알았다. 구체적으로 누가 저한테 보고를 해 주지도 않아서 (보도된)어제부터 언론보도를 보며 하나하나 알아냈다."
- 참석 요청은 언제쯤 누가 했나. 신 처장인가.
"아니다. 모임 결성 과정에 대해 들은 바도 없고 어떤 모임인지도 몰랐다. 기억으로는 행사장 1층에서 우연히 만났다. 얼굴과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회원 중 한 사람이 인사하고 가라고 해서 참석했던 것뿐이다."(1차 문건을 워드 작성했다는 오라회 총무 양 아무개씨는 14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1층에서 지사를 만나 직접 초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 소위 '충성 맹세'의 행사 진행 시나리오도 있었다. 시나리오대로라면 도지사에게 사전에 보고됐다는 것 아닌가.
"끝날 무렵에 잠시 인사만 했을 뿐이다. 사실 격려사를 했다면 개회, 축사 등의 의례적인 식순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오후 7시에 시작한 것으로 아는데 저는 9시가 돼서야 갔다. 앞으로 선관위와 사직당국에서 조사를 하는 만큼 그런 것은 충분히 밝혀질 것이다."
- 정말로 문건과 관련한 내용을 사전에 몰랐나.
"전혀 몰랐다. 보고를 받았다면 모든 것이 의도적인 게 된다. 그러나 정말 아니다. 내용을 사전에 알고 갔다면 내가 나쁜 사람이다. 호텔에서 한 창립행사에 갈 때도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잠깐 인사를 한 것뿐이다."
- 두 번째 모임까지 참석할 이유가 있었나.
"(제주도) 조여진 국장이 대학 석사학위를 받아 기념으로 축하하는 자리였다. 직원들과 회식하는 자리였는데 단지 장소가 겹쳤을 뿐이다."
- 진 처장을 비롯해 일부 회원은 선거 때마다 선거운동을 했던 사람들이다. 알고 있었나.
"전혀 몰랐다. 이전에도 전혀 만난 적이 없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진 처장이 언론에 대해 무엇인가 아야기를 할 것이다."
- 모두 우연히 참석했다는 건가.
"사실 행사 참석을 안 하면 섭섭히 생각들을 해서 또 안갈 수도 없지 않느냐.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민간인이 하는 행사에는 가급적 참여를 줄이겠다.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자제해 나가겠다."
- 선관위와 경찰에서 조사받을 의향은.
"선관위와 경찰에 출두해서 적극 협조하겠다. 조속히 해결되리라고 본다. 도민사회에 여론이 된 데 대해 죄송하다." / 양김진웅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