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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6 장 이간책(離間策)
신검산장 내 백양각(白楊閣)에는 철혈보의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단지 일곱명뿐이었지만 그들은 철혈보 전력의 이할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철혈보의 서열 이위인 일월신륜(日月神輪) 육능풍(陸凌馮)과 서열 오위의 냉혈도(冷血刀) 반당(班堂)이 있었다. 일륜(一輪), 일창(一槍), 일편(一鞭), 일도(一刀)라 알려진 철혈보의 네 개의 기둥인 사천주(四天柱) 중 두 명이 이곳에 있는 것이다.
우단사련(藕斷絲連) 만향지(滿香指) 진독수(秦獨秀) 역시 서열 칠위였고, 철인당(鐵人堂)의 부당주(副堂主) 추관(錘貫) 역시 서열 십구위의 인물이었다. 더구나 철혈보의 소보주 독고상천(獨孤祥天)까지 있는 관계로 만약 이들이 움직인다면 웬만한 문파 하나 정도는 없앨 수 있는 가공할 전력이었다.
육능풍은 커다란 의자에 몸을 비스듬히 뉘인 채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냉혈도 반당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보고를 듣고 있었다.
“자세히 설명을 하게. 상황을 정확히 알아야 판단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말을 한 인물은 비연호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만향지 진독수였다. 그의 앞에는 추관이 앉아 있었는데 그는 가볍게 세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서쪽 외곽에 은신해 있던 철인당 소속 원차운(袁次雲)이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발견된 시각은 묘시(卯時) 말이었고, 살해된 시각은 인시(寅時) 말에서 묘시 초 정도라 추정됩니다. 사인(死因)은 얼마 전 심홍엽(沈紅葉) 부당주가 당했던 매화십사식(梅花十四式)과 동일하며 원차운(袁次雲)은 몇초 견디지 못하고 당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그곳엔 그 혼자 있었다던가?”
진독수의 말에 추관은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수뇌 인물들과 달리 외부에 있는 수하들은 추관이 지휘하고 있는 철인당 소속이었다. 진독수의 말에는 왜 그를 혼자 그곳에 두었느냐는 질책이 섞여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는 좀 더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철인당 소속 삼십여명이 투입되었지만 그들의 움직임을 모두 파악하기 상당히 어려운 실정입니다. 더구나 십이시진 눈을 떼지 않으려면 지금의 인원보다 세배는 더 투입이 되어야 합니다. 이십여장 정도의 거리를 두고 한명씩 배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변명 같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간혹 윗사람들은 상황을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질책부터 하는 경우가 있었다. 더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이해했더라도 먼저 질책한 것으로 인해 여전히 잘못된 선택을 강요한다는 점이었다.
“이십여장 정도 떨어져 있었다 해도 근처에 배치된 다른 두 명은 최소한 그들의 병장기 소리라도 들었을 게 아닌가?”
그것도 사실 의문이었다. 새벽이란 언제나 밤을 새운 사람들에게 피곤이 몰려오고 경각심이 현저히 떨어지는 시각이라 해도 무슨 소리든 들었어야 했다. 더구나 추관은 현장을 직접 보았고, 발자국이 어지럽게 엉킨 것으로 보아 앉아 있다 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전혀 기척을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수하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분명 그들은 잠시 졸았다던가 아니면 오늘 아침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관계로 느슨한 마음으로 있었을 게 틀림없었다. 이미 추관이 그 두 명의 수하에게 상황을 보고 받을 때 그들의 당황하던 태도에서 짐작은 되었지만 그것은 탓하기에는 그들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벌써 이틀 동안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한 상태였다.
만향지 진독수 역시 그러한 상황을 모를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요한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실수를 한다는 것은 형제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인원으로 모자라 다시 보에 인원을 추가로 지원해 달라는 것도 염치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렇다면 짐작 가는 인물이라도 있는가?”
“이 근처에 화산의 화심검(和心劍) 화웅(樺雄)과 화산삼영(華山三英)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독 오른 독사와도 같습니다. 아마 며칠 전 종남의 교두라는 창룡신검의 처참한 죽음 때문이라고 생각되지만 걸치적거리는 것은 모두 벨 태세입니다.”
“원차운이 그들에게 재수 없이 걸렸다는 것인가? 헌데 유은비 건의 조사는 어떻게 된 거야. 아직 밝혀내지 못했나?”
“정확한 흉수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종남의 유은비와 화산의 화심검 화웅은 한 가지 사안(事案)을 조사하러 나왔습니다. 그들은 장안에 모습을 나타냈고 누군가를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사안을 조사하다니…?”
“장안의 부호 양만화에게 떨어진 초혼령과 관련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소림에서 해금령이 공표되자 화산과 종남에서 그를 도우러 제자들을 보냈는데 살해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흉수를 추적하고 있던 중 유은비와 종남칠수가 오히려 그들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화웅은 더욱 핏발을 세우며 추적하고 있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 흉수가 누군지는 알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추관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는 되도록 보고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 확인되지 않은 정보라도 보고하지 않으면 무능한 사람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는 사항이기도 했다.
“추정되는 자들은 청마수 호광과 흑마조 형가위라 보여집니다. 또한 독(毒)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오독공자와 그의 아내 적미갈까지 가세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시신을 살펴보지 못해 확인된 사항은 아니지만 은영전(隱影展)에서 보내온 내용입니다.”
그 말에 진독수의 시선이 독고상천의 옆에 앉아 있던 백의의 사내에게로 향했다. 그 인물은 체격이 왜소하고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어 본래의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듯 했다. 독고상천의 시선까지 자신에게 돌아오자 그는 다소 얇게 보이는 입술을 떼었다.
“추부당주의 보고 내용은 정확합니다. 문제는 유은비와 종남칠수의 사인인데 청마수와 흑마조에 의한 것이지만 일부 점창의 분광십팔검과 종남의 천하삼십육검에 의한 상처도 발견 되었습니다.”
은영전은 철혈보의 눈과 귀가 되는 비밀조직이었다. 그들은 철혈보의 영광 뒤에 가려진 음지에 있는 조직이었다. 그들 조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오직 은영전주와 철혈보주 만이 알고 있을 뿐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철혈보 내에 있는 은영전 인물은 고작 다섯 명이었다. 내력을 알 수 없는 은영전주와 사영(四影)이라 불리는 네 명이었다.
하지만 실제 은영전의 인물들이 몇 명이 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들은 천하 각지에 퍼져 있었고 마치 연체동물과도 같아서 다른 문파에 잠입한 은영전의 인물이 발각 되도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다리 하나 잘라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새살이 돋아나는 것과 같았다. 그 은영전의 사영 중 한 명이 바로 이 사내였다.
“그것은 의외의 일이었지만 곡당주를 비롯해 본 보의 형제들이 장안 외곽에서 당했던 흉수와 같은 자들이 아닐까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건에 대해서는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곧 결과가 나오리라 봅니다.”
“그럼 원차운을 죽인 흉수는 화웅 일행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인가?”
진독수의 질문에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성급하게 판단할 문제는 아닙니다. 원차운이 화웅의 일행과 마주치지 않았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비스듬히 몸을 뉘여 그 말을 듣고 있던 육능풍이 상체를 일으켰다. 그는 사내와 추관을 번갈아가며 보더니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추관. 원차운이 다른 곳에서 살해된 뒤 그곳으로 옮겨왔을 가능성은 없는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추관은 원차운이 살해되었던 현장을 머리 속으로 떠올렸다. 분명 서로 손속을 나눈 흔적이 있었다. 그리 많지 않아 몇 초식을 나누기 전에 당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발자국과 병기의 흔적, 그리고 원차운의 상흔은 분명히 그 현장에서 살해되었음을 보여 주었다.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만 모든 정황으로 보아 그곳에서 살해되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렇게 판단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원차운이 흘린 혈흔입니다. 다른 곳에서 그런 상처를 입고 옮겨져 왔다면 아마 그 주위에 흘린 피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혈흔이 이어진 흔적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자네 말이 맞군. 그렇다면 그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두 명의 수하들은 왜 그러한 기척을 파악하지 못했을까? 그들은 잠을 잔 것이 아닌가?”
추관이 아는 한 육능풍은 절대 세세한 곳까지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추관은 결국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철혈보는 상벌이 엄격한 곳이었다.
“속하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입니다. 그들은 잠시 졸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추관은 고개를 숙였다. 수하의 잘못은 곧 자신의 잘못이다. 그것을 변명해 보았자 더욱 비굴한 사람이 될 뿐이다. 하지만 육능풍은 대답을 듣고 나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이틀이나 잠을 자지 못했으니 졸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런 것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가 그들에게 미혼분(迷魂粉)을 소량 하독 했다면 그들은 졸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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