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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관의 뒤를 밟던 장판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관을 수상쩍게 여긴 자신의 직감이 들어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내관은 행궁 쪽으로 가지 않고 병사들의 막사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장판수는 거기서 뒤따르는 것을 멈추었다. 보는 눈도 많거니와 뒤를 밟는다는 사실을 금세 들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 놈이 구린 수작으로 날 이용할 셈인데 어림도 없다우! 그나저나 어명을 참칭할 정도라니.’

장판수는 당장 내관을 잡아 요절을 낼까도 싶었지만 뒷일을 생각한다면 결코 현명한 방법은 아닌 듯 했다.

‘만에 하나라도 정말 어명을 받들어 돌아다니는 일이라면….’

장판수는 고개를 흔들며 그러한 생각을 떨쳐 버렸다. 장판수는 멀리서 한 무리의 대신들이 몰려다니는 광경을 보고서는 서둘러 길을 비켜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아니 어찌 그런 짓을 해야 한단 말이오?”

앞서가는 대신은 예조판서 김상헌이었고 옆에서는 영의정이자 체찰사(전란시에 임금을 대신하여 군무를 관할하는 임시직. 보통 재상이 겸직함)인 김류가 네 다섯의 문신들을 대동한 채 당부조로 말을 걸어왔다.

“그런 짓이라니, 엄연히 선례가 있는 일이기에 그러는 것이외다. 다른 이도 아닌 청음(김상헌의 호)이 예판이기에 드리는 말이외다.”
“조광조가 중종폐하께 조석으로 소격서를 혁파할 것을 건의하였고 선조께서는 이를 완전히 혁파한 마당에 성황신에게 제사를 올리라니 이 어찌 가당한 말씀이오?”

김류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우뚝 서서 따라오는 문신들을 먼저 보낸 후 김상헌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청음에게는 앞 뒤 설명을 해 주어야 할 것 같소. 이리로 좀 따라 오시겠소?”

김상헌은 평소에도 김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척화를 주장하던 대신들이 남한산성에 온 이후에는 은근히 주화에 기우는 모습을 보였고 그런 태도의 중심에는 김류가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김류가 김상헌을 데려간 곳은 무기고 뒤편의 단아한 기와집이었다.

“아침에 주상전하를 배알하고 오는 길이었소만 어성(御聲 : 임금의 말)이 평안치 않았고 용안에 근심이 서려 있었소. 비록 헛된 일로 보일지 모르나 옥체를 보존케 하기 위해서 성황신에게 제사를 드린다면 전하는 물론이거니와 성안의 사람들도 편히 의지할 것이니 나쁘지 않다는 것이외다. 이것은 다른 대신들도 동의하는 바이니 청음께서는 괘념치 마시오. 게다가 사람들이 이곳을 두고 이르기를 백제 온조왕의 왕궁터라 하니 제사를 지낼 곳으로 적당하다 여겨지오.”

김상헌은 여전히 내키지 않았으나 김류의 말이 과히 틀린 것은 아니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공의 뜻이 정 그러하시다면 내 이 길로 가서 주상전하께 주청을 드리겠소이다.”

김상헌은 김류에게 양해를 구한 뒤 행궁으로 먼저 향했다. 김류는 힘겨운 표정을 지으며 마루에 걸터앉았다.

‘김상헌은 사소한 일에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구만!’

김류가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려는 사이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영상 대감!”

김류는 그 목소리를 금방 알아듣고서는 주위를 살폈다.

“여긴 영상 대감과 저 외는 아무도 없나이다. 틈나는 데로 뒤지고 있습니다만 이곳에는 찾으시는 특별한 물건이 없는 듯 하오이다.”

김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놈이 끝까지 거짓말로 우리는 능멸했었다는 것인가?”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리고 믿을만한 자를 엮어두었으니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자가 간 후 김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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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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